세상에는 탐나는 것들도 많고 아름다운 것들도 많다. 하지만 인간적인 것들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우러나오는 정, 부부 사이에서 빚어 나오는 사랑, 친구 사이에서 솟아나는 우정, 이웃과 나누는 인정 속에서 우러나오는 세상 사는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들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건강하고 수중에 돈 좀 있다 싶으면 인간적인 것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것들의 가치를 깨닫는 때는 죽음이 임박해서이다. 그때야 비로소 돈은 허무한 것이며 진정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살아 숨 쉬는 것과 인간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는다.
--- p.16, 「인간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다」 중에서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별 볼 일 없는 인간 취급해도 나만은 나를 별 볼 일 없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나마저 나를 외면하면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것이 되고 내가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남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보다도 내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 남들이 다 나를 별 볼 일 없는 인간 취급해도 나만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하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지만, 남들이 다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추켜세워도 내가 나를 한심한 사람으로 비하하면 나는 한심한 사람이 되고 만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만은 나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아직 젊다’ ‘나는 아직 가치가 있다’ ‘나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고 인정해야 희망도 생기고 용기도 생기고 살아갈 의욕도 생긴다. 내가 한심해 보이면 보일수록 더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세상 그 누구의 인정보다도 나에게는 내 인정이 필요하다. 세상 사람 백 명이 인정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되고, 세상 사람 천 명이 다독이는 것보다 내가 나를 다독이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
--- p.31, 「내가 나를 인정해야 나의 존재 가치가 빛난다」 중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저 부담 없이 만나서 차 한잔, 술 한잔 마시기 편한 인연이면 그냥 그대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을 맛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깊은 인연도 필요하지만 가벼운 인연도 필요하다. 맨살을 맞대며 사랑을 나누는 인연도 필요하지만 떨어져서 존경하고 감사하는 인연도 필요하고, 가까이 살면서 자주 찾아주는 인연도 필요하지만 멀리 떨어져 살면서 가끔씩 찾아주는 인연도 필요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이다. 만나야 할 이유도 없지만 만나면 반갑고, 서로에게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서로를 존경하고 아껴주는 인연이라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거기에다 뒤끝까지 깔끔한 인연이라면 평생을 두고 상대해도 손해 볼 일이 없다.
--- p.58, 「어설픈 인연을 만들지 않는다」 중에서
많이 가지고 형편이 넉넉해지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인심이 후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많이 가질수록 남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면서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되고, 사는 형편이 넉넉해질수록 오히려 내 것 네 것을 분명히 따지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우리 사회에 인정이 사라진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보리개떡 하나라도 나눠 먹던 인심이 사라진 것도 내 것 네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담 때문이 아닐까?
나눔의 정신이 정말로 필요할 때는 못살 때가 아니라 잘살 때이다. 못살 때는 나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나누면서 살게 되지만, 잘살 때는 나눔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나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가 고개를 쳐든다.
--- p.156, 「인정을 베풀면 행복이 배가된다」 중에서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뜻이 확실히 서서 남의 의견에 부화뇌동하거나 불의에 아부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번 정한 소신과 원칙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바꾸거나 깨지 말아야 한다. 소신과 원칙은 정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작은 소신이라도 끝까지 지켜낼 때 체면이 선다. 한 번 정한 원칙에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딱 한 번’ ‘이번만’이라는 단서에 속아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 원칙은 반드시 깨지고 만다. 펑크 하나가 자동차를 주저앉히고, 두더지 굴 하나가 댐을 무너뜨리듯, 한 번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두 번 세 번 인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원칙까지 무너뜨리게 된다.
무소신, 무원칙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고, 자기의 중심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소신도 원칙도 없이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혹과 농간, 청탁과 압력에 휘둘리며 줏대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차라리 죽음보다도 못하고 패배보다도 더 불명예스럽다.
--- p.209, 「소신과 원칙에는 예외가 없다」 중에서
죽으면 다 짊어지고 갈 것처럼 집착하고 집착하여 그만 챙겨도 될 사람들이 더 챙기려 허겁지겁 달려가고, 미련 없이 놓아 버리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도 될 만한 사람들이 더 높은 자리를 탐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매달리고 또 매달려 재물과 권세와 명예에 몸과 마음을 가두어 놓고 고달프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는 죽음 앞에 그것들이 무슨 가치를 가질까?
값진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죽음을 바로 보고 죽음을 긍정할 줄 알아야 한다. 긍정하든 하지 않든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맞게 되는 죽음이지만, 죽음을 긍정하고 살아갈 때 삶의 자세가 진지해지고 숙연해지며 집착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삶,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 p.238, 「공수래공수거, 인생의 덧없음이여!」 중에서
욕심 많고 자신만 알던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면 그때부터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생사의 기로에서 저승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로 하여금 ‘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바로 ‘언젠가 나도 다 놓아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죽음의 긍정인 것이다.
허무하고 덧없는 죽음들을 보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영원한 진리마저도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죽음이 임박해지면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된 인생을 깨닫고 눈물 뚝뚝 흘리는 사람들, 더 늦기 전에 죽음을 긍정하고 진지한 생을 추슬러야 하지 않을까?
--- p.239, 「空手來空手去 인생의 덧없음이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