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과 한국문학에 대한 선입관을 깨는 식물적 상상력의 변주.
- 이민정(ladyinred@yes24.com)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모으는 친구에게 그 중에 꼭 한권만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선뜻 『몽고반점』이란다. 왜냐는 질문에 ‘야하니까’라는 다소 싱거운 소리를 내뱉는다. 형부와 처제의 정사라는 소재만 보면 이 싱거운 소리가 수긍이 갈 법도 한데, 무미건조하고 존재감을 내뿜는, 그러면서도 지극히 탐미적인 문체를 읽다보니 그저 주인공 영혜의 차가운 손발과 드러낸 상체가 주는 담담한 해방감,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채의 화려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에 강렬히 사로잡힌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 좋았어. 근데 왠지 이야기가 더 있을 거 같아.” 라고 대답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몽고반점을 포함한 연작소설 전체가 담긴 『채식주의자』가 출간되었다.
『채식주의자』는 10년 전 저자의 단편 「내 여자의 열매」의 변주로, 식물적 상상력을 궁극의 경지까지 확장시킨 인물, 영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부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각에서 아내가 점차 육식을 거부해 가는 과정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본인과, 사회,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는 처제의 몸에 남아있다는 몽고반점에 욕정을 느끼고, 이 욕정을 평소 머리 속에 그리다 못해 각인된 관능적 이미지와 결합시켜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작업으로 전환한다. 3부인「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녀는 떠나버린 남편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계의 부담, 동생의 부양을 몸으로 겪어낸다. 또한 점점 나무가 되려고 하는, 세상의 시선에서는 점점 구제할 수 없이 미쳐가는, 영혜의 모습을 담아낸다.
몽고반점을 덮으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주인공 영혜가 왜 육식을 거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점이었다. “꿈을 꿔서……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몽고반점」중에서)” 1부인「채식주의자」에서는 그 꿈과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채식주의자」중에서)
세 단편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을 버리려고 하는 영혜와 대립되는 주변인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평범하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욕망과 몽고반점을 모티브로 한 관능적 이미지와 색채로 표현되는 예술에 집착하는 형부, 삶에 내부가 말라가면서도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언니. 이 대립성에서 식물로 대표되는, 인간이 잃어버린 태고의 순수성에 대한 동경과 어쩔 수 없이 욕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동물적인 욕망이 함께 쏟아진다.「몽고반점」에서 영혜는 육체에 바디 페인팅으로 꽃을 담으면서 욕망이 배제된 식물을 지닌 육체가 되고, 그 식물성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또한 역설적으로 지독히 동물적인 욕망의 행위로 태고의 순수성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영혜의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갈망은 남을 해치지 않는 소극적인 면에서 -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채식주의자」중에서) 궁극적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지지하며 소멸하는 회귀로 발전해 간다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나무 불꽃」중에서)
삶에 치이는 순간순간, 일상의 끈을 놓아버리고 궁극적으로 소멸에 가까운 자연으로의 회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또한 지독히 세속적인 욕망으로 삶에 집착하고 조용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영혜는 그 극단에 서 있고, 우리는 범인으로 그 중간을 헤맨다. 작가 한강의 연작소설은 하나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히 완결적이며, 연작이라는 형식으로 소설의 폭을 다시 확장하고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완결 작을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