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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 창비 | 2007년 10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6 리뷰 494건 | 판매지수 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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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40위 | 국내도서 1위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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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7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7쪽 | 324g | 145*210*20mm
ISBN13 9788936433598
ISBN10 893643359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10년전의 이른 봄, 작가는 한 여자가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 『내 여자의 열매』를 집필하였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이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작가가 2002년부터 2005년 여름까지 쓴 이 세편의 중편소설은 따로 있을 때는 일견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합해지면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기는 장편소설이 된다.

올해로 등단 13년째를 맞는 작가는 작품 속에 단아하고 시심어린 문체와 밀도있는 구성력이라는 작가 특유의 개성을 고스란히 반영시켜 놓았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는 지금까지 소설가 한강이 발표해온 작품에 등장하였던 욕망,식물성,죽음 등 인간 본연의 문제들을 한 편에 집약해 놓은 수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바라보는 그의 남편 '나'의 이야기이다. '영혜'는 작가가 10년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희망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단편 속의 주인공과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길 꿈꾸는 영혜는 연관고리를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욕망과 예술혼의 승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던 2부 『몽고반점』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전체 줄거리에 연결되면서 소설의 텍스트를 더욱 확장시킨다. 상처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인 상상력에 결합시켜 아름다움의 미학에 접근하고 있다.

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단편과 한국문학에 대한 선입관을 깨는 식물적 상상력의 변주.
- 이민정(ladyinred@yes24.com)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모으는 친구에게 그 중에 꼭 한권만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선뜻 『몽고반점』이란다. 왜냐는 질문에 ‘야하니까’라는 다소 싱거운 소리를 내뱉는다. 형부와 처제의 정사라는 소재만 보면 이 싱거운 소리가 수긍이 갈 법도 한데, 무미건조하고 존재감을 내뿜는, 그러면서도 지극히 탐미적인 문체를 읽다보니 그저 주인공 영혜의 차가운 손발과 드러낸 상체가 주는 담담한 해방감,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채의 화려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에 강렬히 사로잡힌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 좋았어. 근데 왠지 이야기가 더 있을 거 같아.” 라고 대답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몽고반점을 포함한 연작소설 전체가 담긴 『채식주의자』가 출간되었다.

『채식주의자』는 10년 전 저자의 단편 「내 여자의 열매」의 변주로, 식물적 상상력을 궁극의 경지까지 확장시킨 인물, 영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부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각에서 아내가 점차 육식을 거부해 가는 과정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본인과, 사회,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는 처제의 몸에 남아있다는 몽고반점에 욕정을 느끼고, 이 욕정을 평소 머리 속에 그리다 못해 각인된 관능적 이미지와 결합시켜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작업으로 전환한다. 3부인「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녀는 떠나버린 남편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계의 부담, 동생의 부양을 몸으로 겪어낸다. 또한 점점 나무가 되려고 하는, 세상의 시선에서는 점점 구제할 수 없이 미쳐가는, 영혜의 모습을 담아낸다.

몽고반점을 덮으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주인공 영혜가 왜 육식을 거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점이었다. “꿈을 꿔서……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몽고반점」중에서)” 1부인「채식주의자」에서는 그 꿈과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채식주의자」중에서)

세 단편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을 버리려고 하는 영혜와 대립되는 주변인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평범하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욕망과 몽고반점을 모티브로 한 관능적 이미지와 색채로 표현되는 예술에 집착하는 형부, 삶에 내부가 말라가면서도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언니. 이 대립성에서 식물로 대표되는, 인간이 잃어버린 태고의 순수성에 대한 동경과 어쩔 수 없이 욕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동물적인 욕망이 함께 쏟아진다.「몽고반점」에서 영혜는 육체에 바디 페인팅으로 꽃을 담으면서 욕망이 배제된 식물을 지닌 육체가 되고, 그 식물성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또한 역설적으로 지독히 동물적인 욕망의 행위로 태고의 순수성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영혜의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갈망은 남을 해치지 않는 소극적인 면에서 -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채식주의자」중에서) 궁극적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지지하며 소멸하는 회귀로 발전해 간다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나무 불꽃」중에서)

삶에 치이는 순간순간, 일상의 끈을 놓아버리고 궁극적으로 소멸에 가까운 자연으로의 회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또한 지독히 세속적인 욕망으로 삶에 집착하고 조용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영혜는 그 극단에 서 있고, 우리는 범인으로 그 중간을 헤맨다. 작가 한강의 연작소설은 하나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히 완결적이며, 연작이라는 형식으로 소설의 폭을 다시 확장하고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완결 작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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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없었을까. 두고두고 그녀는 의문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 없었을까. 남편이 피흘리는 영혜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간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영혜를 제부가 냉정히 버린 것을 말릴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이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 일을 돌이킬 수 없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 「나무 불꽃」 중에서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채식주의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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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상처, 욕망, 그리고 죽음


『채식주의자』의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인 ‘나’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어린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힌 영혜는 어느날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에 사로잡혀 육식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영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처가 사람들을 동원해 영혜를 말리고자 한다. 영혜의 언니 인혜의 집들이에서 영혜는 또 육식을 거부하고, 이에 못마땅한 장인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영혜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다.

2부 「몽고반점」은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아티스트 ‘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동생을 측은해하는 아내 인혜에게서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다. ‘나’는 영혜를 찾아가 비디오작품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청한다. 벌거벗은 영혜의 몸에 바디페인팅을 해서 비디오로 찍지만, 성에 차지 않은 ‘나’는 후배에게 남자 모델을 제안한다. 남녀의 교합 장면을 원했지만 거절하는 후배 대신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 영혜와 교합하여 비디오로 찍는다. 다음날 벌거벗은 두 사람의 모습을 아내가 발견한다.

3부 「나무 불꽃」은, 처제와의 부정 이후에 종적없이 사라진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가족들 모두 등돌린 영혜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인혜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영혜가 입원한 정신병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인혜는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아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를 만나고, 영혜는 자신이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려는 의료진의 시도를 보다못한 인혜는 영혜를 큰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한다.

영혜를 둘러싼 세 인물, 영혜의 남편?형부?언니의 시선으로 구성되는 3부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가족 모임에서 영혜가 손목을 칼로 긋는 장면이다. 아내의 육식 거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남편으로서는 그 충동적인 행동이 그저 끔찍한 장면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피를 흘리는 처제를 들쳐업고 병원에 간 형부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비디오작업이 송두리째 모멸스럽고 정체 모를 구역질을 느끼고 그후로 전혀 다른 이미지(바디페인팅)에 사로잡힌다. 어린시절부터 가까이서 본 동생 영혜가 죽음을 불사하고, 식물이 되기를 원하는 것을 알게 된 언니는 그 장면을 안타깝고 원망스럽게만 기억한다.

동일한 장면을 다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영혜’와 ‘아버지’에게서도 발견된다. 어린 딸의 다리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다니다 죽이는 아버지에게는 개의 살육이 그저 부정(父情)의 실천이었을 뿐이겠지만, 모두에게 ‘불분명한 동기’인 영혜의 육식 거부가 실은 그 어린시절의 끔찍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육체적인 욕망과 예술혼의 승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수작으로 극찬을 받으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2부 「몽고반점」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전체 줄거리에 연결되면서 이 소설의 차원을 확장하고 심화한다. 각 부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조명되는 욕망의 근원은 결국 영혜라는 주인공의 상처와 기억의 문제로 수렴된다.

숨막힐 듯한 식물적 상상력의 궁극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작가가 10년 전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내 여자의 열매』, 창비 2000 수록)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궁극의 경지까지 확장시킨 인물이다. 희망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내 여자의 열매」의 주인공은, 어린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와 통한다.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나무 불꽃」 중에서

단순한 육식 거부에서 식음을 전폐하는 지경에 이르는 영혜는 생로병사에 무감할뿐더러 몸에 옷 하나 걸치기를 꺼리는, 인간 아닌 다른 존재로 전이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더 나아가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채식주의자」)라고 믿는 영혜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고, 공격받지 않는 순결한 존재가 되는 듯하다.
반면 영혜 주위의 인물들은 육식을(영혜 남편), 혹은 영혜의 몸과 몽고반점 그리고 자신의 예술혼을(영혜 형부) 지독하게 욕망한다. 그들의 욕망은 결국 누군가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고 끔찍한 기억을 남긴다. 인간의 욕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생명이 있는 한, 그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욕망할 수밖에 없는 동물적인 육체로 살아가야 하는 정체성을 포기한 영혜는 결국 죽음에 이르는 길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영혜로 표상되는 식물적인 상상력의 경지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소설 미학이며, 이야기로서든 상상력으로서든 감각으로서든 우리 소설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존재의 숙명적 상처와 세상의 근원적 어둠에 대한 처연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식물적 상상력으로 그에 대응해온 작가가 도달한 이 새로운 미적 차원은 놀랍고 신선하다. 상처와 어둠의 극한까지 밀어붙여 존재의 처음과 끝, 그 신비로운 근원을 엿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도달한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는 우리 소설을 일상과 탐욕의 저잣거리로부터 끌어올려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황도경 (『문학사상』 2005년 2월호)

작가는 상처와 치유의 지식체계를 오랜 시간 동안 기록해온 신비로운 사관(史官)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은 일상의 트랙을 벗어나 증발해버린 타인을 찾아나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그린다. 이런 여러 탐색담은 대상을 찾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들을 찾아나선 ‘정상적’인 인물들은 스스로 감추었거나 잊었던 트라우마와 조우한다. 마치, 애초에 그들이 그토록 닿으려 했던 목적지가 그 깊은 상처였던 것처럼.
― 허윤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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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주간우수작 고통과 불안 속에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꿈*왕 | 2017.05.26 | 추천8 | 댓글0 리뷰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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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과 불안 속에서

[서평] 한강 저 <채식주의자> (창비, 2007)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p.197)

<채식주의자>책은 연작소설로, 1부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 3부 < 나무불꽃>으로 이루어졌다. 10년 전, 한강의 작품 <내 여자의 열매>의 후속작격이다. 2016년 5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여 더 관심을 받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한강은 고통과 불안이 존재하는  삶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실존과 주체성을 늘 주제의식으로 자신의 소설속에서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영혜는 책속에서 늘 대상화되었다. 1부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이 화자가 되어 어느 날부터 육식을 거부한 채 점점 말라가는 영혜을 바라보며 답답함과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가족들의 반응이 담겼다. 2부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의 시각에서 소설이 시작된다.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예술혼과 성욕을 불태우며 영혜의 몸에 꽃을 직접 그리고 서로 몸을 섞어 정사까지 나누며 예술와 욕망사이에서 갈등하며 열정을 불태우는 형부의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인혜(영혜의 친언니)가 두사람의 정사신이 담긴 비디오를 보므로써 결국 예술이 아닌 파멸로 끝이 난다. 3부 <나무불꽃>에서는 인혜의 시각에서 시작된다. 결국 남편은 떠났고, 가족들과 연이 끊긴 채 자신마저 친동생을 버릴 순 없어서 영혜를 정신병원에 수감시켜 보호자로 살아간다. 또한 그녀에게는 아들이 있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하루 삶을 견뎌나간다. 하지만 영혜는 서서히  미쳐가며 죽음의 문턱에 서게된다.

"아내의 입이 벌어진 순간 장인은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중략) 아내는 몸을 웅크려 현관 쪽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뒤돌아서서 교자상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들었다. "여, 영혜야." (p.51)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먹으며 살아가는 자식을.. 부모는 어떻게 대해야할까? 가부장적인 아버지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것이다. 비록 어렸을 때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이지만, 자식이 육식을 거부한 채 몸은 말라가는데..어떤 부모가 가만히 있겠는가?..결국 아버지는 영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뺨을 때리며 억지로 탕수육을 입에 쑤셔넣는다. 이제껐 자신의 소리를 내보지 못했던 영혜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자해를 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가정이지만..가족간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또한 가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게 만든다.

영혜는 왜 육식을 거부하는 걸까? 해석에서도 말했듯이 영혜에게 육식은 가부장적인 가정.. 사회에 대한 거부, 저항을 뜻한다. 그녀에게는 자아도 ..말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인간으로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는 영혜뿐만 아니라 현대인들도 자신의 자아가 없이 그저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를 통해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성실은 천성과 같았다. 딸로서, 언니나 누나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가게를 꾸리는 생활인으로서, 하다못해 지하철에서 스치는 행인으로서까지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p.169)

인혜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내의 보통사람이다. 부모님을 돌봐야하고 자식들은 키워야 하는..우리 부모님의 모습..나아가 우리들이 걷게 될 미래의 지도이지 않을까? 특히, 인혜에게 연민을 느끼는 독자가 많다. 인혜가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친정 엄마를 생각했다. 가게를 아빠와 꾸려나가야하고 자식들이 오면 삼시세끼를 차려주고 손자손주가 태어나면 돌봐주며 그렇게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친정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고 친정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 "가게도 아빠한테 좀 맡기고 우리들은 신경쓰지 말고 엄마 인생을 좀 찾아" 엄마 왈 " 그러게 말이다..이제껏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가게를 꾸려 나가시고 자식들을 챙기는 엄마의 모습에서 좀 더 엄마에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철이 없는 나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완벽한 환경을 가진 사람은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환경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내면이 상처도 없고 고독도 없다면 그건 신이겠지.

한강은 부조리한 인간의 삶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같다. 내면의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를 어떤 이는 잘 극복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영혜만큼은 아니지만 어떡해든 삶속에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고통과 불안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떤 욕망을 품으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나 또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어떤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해할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혜의 친정아버지를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사회의 성공을 우선시 했던 영혜의 남편..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려 했던 형부..이들 모두 주변 사람보다는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했다. 영혜 또한. 어쩌면 이들은 속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인혜는 이 모든 상황과 가족들을 받아드리고 희생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나 또한 아내로서 언젠간 엄마로서 자식으로서 이 모든걸 받아드리고 희생하며 살 수 있을까? 마음이 다소 무거워지는 책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독자가 읽으면 좋을 책이다. 아직도 삶은 나에게 어려운 존재이고 가족을 이해한다는 것 또한 어렵기만 하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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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소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산*람 | 2016.06.26 | 추천10 | 댓글14 리뷰제목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2016.6.12. sanbaram   웰빙 식품과 다이어트 열풍이 불어 채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더니 2016년 봄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 번 <채식주의자> 열풍이 불고 있다. 앞에 것은 건강하게 잘 살며 보기 좋은 몸매를 가꾸기 위한 열풍이었다면, 뒤에 부는 바람은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과 작가들에 대한 열풍이라 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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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창비/2016.6.12.

sanbaram

 

웰빙 식품과 다이어트 열풍이 불어 채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더니 2016년 봄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 번 채식주의자열풍이 불고 있다. 앞에 것은 건강하게 잘 살며 보기 좋은 몸매를 가꾸기 위한 열풍이었다면, 뒤에 부는 바람은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과 작가들에 대한 열풍이라 할만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동안 과도한 경제논리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던 우리의 정신세계가, 이제 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계기를 맞았기에 더욱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몸에서 불필요한 군살을 빼서 건강한 몸을 만들 듯, 우리들의 삭막하고 계산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을 돌아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정감어린 감성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생각해본다.

 

채식주의자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한국인 최초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평범했던 아내인 영혜가 어느 날 꿈을 꿨다면서 냉장고속의 고기종류를 모두 쓰레기봉지에 담아 버리는 것에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육식을 거절하고 샤워한 남편의 땀구멍 하나하나에서도 고기 냄새가 난다면서 채식만 한다. 억지로 육식을 시키려는 아버지의 폭력에 과도로 손목을 긋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채식주의자 에서는 우리의 사회적 관습과 편견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개에게 물리면 개의 털을 태워 상처에 붙이면 낫는다거나, 개고기는 그을려야 맛있다는 것, 채식만 외곬으로 집착하는 것. 자식들의 사생활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관여하는 대가족제도의 잘못된 관행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은 꿈에서 얻은 영감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데서 문제가 된다.

 

몽고반점에서 인혜의 남편은, 아내로부터 처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흥분한다. 처제의 몸에 도라지꽃을 그리고 작품을 찍고 싶어졌다.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 후배를 꼬여 남자의 몸에도 꽃을 그리고 남녀가 교합하는 장면을 찍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예술가적인 욕망에 이끌려 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날 밤 옛날 애인을 찾아가 몸에 꽃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는 것이나, 처제와 교합하는 장면을 밤새 찍는다는 것은 행위예술 이라고 봐주기엔 도가 지나치다.

어렸을 때만 나타나는 몽고반점을 늦게까지 갖고 있다는 희귀성에서 맑고 순수한 영혼을 본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인혜 남편의 행위에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고 오직 욕망을 실현하는 성폭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통념상 이혼을 할 수밖에 없으며, 영혜는 정신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몽고반점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술과 현실의 괴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무불꽃은 비용 때문에 동생을 경기도 축성산 기슭의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찾아다니는 언니의 이야기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실종되었던 영혜는 밤늦게 나무숲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온 몸이 비에 녹아서 땅 속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는 것이다. 그 후 영혜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너무 말라서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으니 서울의 일반 병원에 입원시키라는 연락을 받는다. 영혜는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는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고 하는 등 이해 못할 말만 간신히 한다.

결국 서울 병원으로 이송하며 지나가는 길옆 나무들이 푸른 불꽃을 내며 타는 환영을 본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나무와 동일시하는 동생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큰 괴리감을 느끼면서, 언니 또한 나무들이 불꽃을 내며 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녀가 살았으면 하고 그는 바랐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는 의문했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버리려 했던 순간은 인생의 코너 같은 거였을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한 남편이나 형제자매까지도-철저한 타인, 혹은 적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다시 깨어난다 한들 그 상황이 변해 있을 리는 없다.(p.82)”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옆 사람과 말을 나누는 대신 스마트폰의 화면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땅 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p.156)”무엇인가 생산하고 싶은 욕망을 이렇게 표현한 것인가? 끊임없이 변화해야 살아가는 현실이 힘들어서, 나무처럼 단단히 뿌리를 박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 껍데기 같은 육체 너머, 영혜의 영혼은 어떤 시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걸까. 그녀는 꼿꼿하게 물구나무 서 있던 영혜의 모습을 떠올린다. 영혜는 그곳이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라 숲 어디쯤이라고 생각했을까. 영혜의 몸에서 검질긴 줄기가 돋고, 흰 뿌리가 손에서 뻗어나와 검은 흙을 움켜쥐었을까. 다리는 허공으로, 손은 땅속의 핵으로 뻗어나갔을까. 팽팽히 늘어난 허리가 온 힘으로 그 양쪽의 힘을 버텼을까.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영혜의 몸을 통과해 내려갈 때, 땅에서 솟아나온 물은 거꾸로 헤엄쳐 올라와 영혜의 샅에서 꽃으로 피어났을까. 영혜가 거꾸로 서서 온 몸을 활짝 펼쳤을 때, 그애의 영혼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p.206)”언니의 생각은 동생의 육체를 넘어 영혼이 부유하는 곳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언저리만 맴돌 뿐 돌아보면 자신의 주변만 맴돌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3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채식주의자는 급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적 방황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과,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 고민하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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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170. 채식주의자...자기파괴를 통한 죄의식 탈피 몸부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서*당 | 2016.06.19 | 추천12 | 댓글10 리뷰제목
채식주의자...자기파괴를 통한 죄의식 탈피 몸부림?   50평생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특별한 거부감없이 타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저 순응하면서, 때로는 분위기를 맞춰가며 배려?라는 차원에서 혹은 왕따? 당하기 싫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대세를 따르며 그렇게 보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산다는 게 얼마나 허;
리뷰제목

채식주의자...자기파괴를 통한 죄의식 탈피 몸부림?

 

50평생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특별한 거부감없이 타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저 순응하면서, 때로는 분위기를 맞춰가며 배려?라는 차원에서 혹은 왕따? 당하기 싫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대세를 따르며 그렇게 보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산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 삶인지 깨닫는다. 내 몸이 시키는 바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알게된다. 제도적 굴레와 관습, 정형화된 생활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영혜의 몸부림과 이를 지키려는 인혜의 처절한 삶, 그리고 또다른 영혜 남편의 쳇바퀴 삶을 유지할려는 의지와 자신의 삶을 뒤늦게나마 발견하고 몸부림치며 벗어나려는 인혜 남편. 이들 4명의 삶을 돌아보는 채식주의자는 쉽게 다가와서 무겁게 막을 내린다.

 

우선, 주인공 영혜를 중심축에 두고 주변 환경을 돌아보는 순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3편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데, 그중 ‘채식주의자’는 전체 그림을 제공하면서 또한 영혜를 둘러싼 영혜 남편의 입장에서 ‘나’란 일인칭 관점으로,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과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행태를 다룬다.

 

소시민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원하는 나는 대다수가 원하는 아주 일반적인 삶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저 조용하고 평탄한 삶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아내의 브래지어를 답답해하는 행동이나 채식주의가 한 점의 불안 요소다. 도화선이 된, 부부동반 회사 모임에서 아내의 돌출 행동은 그의 삶에 오점?을 남긴 이벤트였다. 물론 그 역시 일상을 벗어날 기회?로 아내보다 여성스럽고 다정다감한 처형에 대한 감정을 품었으나 그뿐이었다. 결국 아내의 손목 자해와 함께 그의 일상은 무너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그만의 길을 간다. 타인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틀을 지켜내기 위해 사랑과 희생, 봉사 같은 윤리의식은 던져버리고 ‘이혼’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가 원하던 평범한 삶인지는 모르겠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취향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삶의 형태이기에. 정답은 없어도 그가 원하던 제도적 굴레 속에서 지켜낸 것이 무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언급된 건 없으나 그의 삶 역시 더 이상 안정위주의 평온한 삶은 이상향에 그친 게 아닐까 싶다.

 

‘몽고반점’이란 목차로 다뤄진 인혜 남편이야기는 극적이다. 아내의 뒷바라지? 덕분에 일반적인 예술가들의 삶처럼 찌든 생활고를 겪거나 아내와의 불화로 위태위태한 삶 대신, 하고 싶은 것 다해가며 살아가는 비디오아트 작가이자 화가로 명맥을 유지한다. 그 역시 평범한 일상에서 무미건조한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던 중 처제의 돌발적인 자해와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가면서 그의 일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아무런 미동없이 무심하게 보낸 세월 속에서 아내가 던진 ‘20살까지 영혜가 몽고반점을 간직하고 있다’는 기억이 새롭게 예술가적 본능을 깨우고, 갈등의 골 역시 깊어진다. 예술이냐 불륜이냐를 두고 심각한 내면의 고민 끝에 본능과 예술 둘을 거머쥐기 위해 몰입한다. 처제를 향한 적극적인 구애와 의외로 영혜는 그런 형부의 접근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남편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열정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의 본능 또한 그동안 육식으로 인해 몸에 켜켜히 쌓인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식물로 탄생?하는 과정을 경험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자 열정이 샘솟아 자연스럽게 형부에게 온몸을 맡긴다. 이미 그녀에겐 제도의 속박 같은 건 문제되지 않았다.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고, 책임질 아이도 없었으며, 아니 제도권에 안주하려는 모순덩어리?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으니 믿음 같은 건 저버린 지 오래였다는 표현이 맞다. 꽃을 통해 고스란히 부활을 꿈꾼 그녀에겐 몸뚱이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기존 질서(형부와의 불륜)에 반하는 윤리의식 따윈 개나 줘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결국 남은 껍데기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기 보다는 철저히 제도권의 모순에 대항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인 몸을 통해 저항하고 있다. 어떻든 화가는 삶의 평화가 한순간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본능에 충실해 마음이 내키는 바를 따르고 결과적으로 처참한? 삶의 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제도를 벗어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또한 그가 원한 삶 이었는 지 의문스럽다. 지극히 평범하게 비록 무심한 세월을 보내온 그였지만 강렬한 열정이 고개를 쳐든 순간 모든 걸 거부할 수 밖에 없었고, 아내보단 처제와의 코드가 맞았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이란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아들 지우를 보고싶다는 울부짖음은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게 만들지만 한 번의 열정은 하나의 작품이자 그의 삶 자체로 귀결된다.

 

영혜와 인혜의 뒷이야기를 다룬 ‘나무불꽃’. 우선 채식주의자 및 몽고반점의 결과를 통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영혜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치닫는 그녀의 불꽃인생이자 해탈을 위한 몸부림이다. 모순된 기성 제도권을 향한 죽음불사는 장엄하기 보단 애처롭고 넘을 수 없는 장벽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다는 인상도 받는다. 서서히, 그러나 죽음마져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찌꺼기를 완전하게 도려내지만 거대한 사회의 굴레는 미동조차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제도에 순응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그것이 의사의 책무이든 병원의 존재감이든 간에. 음식을 거부하는 그녀를 향해 흡혈귀처럼 달려들어 강제로 주입시키려 하는 건 흡사 권위적인 아버지가 그녀 입에 강제로 고기를 넣으려다 자해소동의 원인이 된 것을 상기시킨다. 결과적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닌 좀더 빨리 죽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출발은 아주 단순하게, 단지 육식위주의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는 행위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를 둘러싼 기성질서는 채식주의자로 한층 높여 구석으로 몰아가고 전쟁이라도 벌이듯이 강제로 제도의 권위 속으로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쓴다. 심지어 왕따는 기본이고 형제라는, 자식이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행되는 질서유지를 위한 그들의 단합된? 모습은 비열해 보이기까지 하다. 결코 영혜를 위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히려 거부감만 더 키운 결과로 나타나고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들던 가족이란 구성원들이 정작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외면과 이탈의 조짐을 보인다. 이것이 인간 본성이 아닌가 싶다. 하는 척, 도와주는 척, 의무감 내지 상대를 배려하기 보단 자신들의 울타리 지키기의 일환으로 밀어내기 작전에 동원된? 쇼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인혜의 이야기는 고통이란 틀에서 보면, 흔히 당사자가 가장 고통스럽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진실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모두 떠난 자리를 끝까지 함께 하며 이꼴저꼴 다 지켜봐야 했던 인혜의 삶이 과연 평범한 삶인가. 우리 자화상을 돌이켜 본다. 보통 바둥바둥하면서도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그건 차라리 평범함이 아니다. 생활에서 살짝 비껴있는 화가 남편, 채식을 고집하다 자해 및 정신병원, 더 나아가 죽음으로 치닫는 여동생, 그런 동생을 지켜주기 보다는 자신의 길을 가는 제부, 그리고 친정 식구들의 인혜에게 떠맡긴 행동들. 남의 얘기가 아닌 절절하게 다가오는 아픔이 교차된다.

 

올 봄 돌아가신 장인이 치매로 병원을 전전했던 지난 몇 년, 처형과 아내, 그 가운데서도 처형의 역할이 그대로 인혜의 삶 자체다. 맏이라는 이유로 병원비, 병문안, 형제 돌보기, 장모조차 나몰라라 하던 장인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을 외면하지 못하고 때로는 지치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몸(축농증 수술등)조차 돌보지 않으면서 지낸 몇 년, 고스란히 인혜의 삶과 괘를 같이한다.

 

어떻든 인혜의 삶은 결코 평범을 가장했지만 평범할 수 없었다. 생활비 한 푼 주지않는 남편, 내조의 끝은 보이지 않고, 영혜와 남편의 불륜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리고 나무불꽃으로 마지막 삶을 불사르던 영혜를 지켜봐야 했던 인혜의 삶은 어떻게 봐야할까.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 보단 언니로, 아내로, 처형으로, 딸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이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들은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이 한마디로 귀결된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얼마나 많은 담즙을 세계의 이면에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있는가'(P.223).

 

마지막으로 영혜의 삶을 돌이켜보자. 영혜가 채식주의 삶을 시작한 건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 개가 물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죽어간 개가 현몽하고, 무책임하고 무덤덤한 남편의 몰인정과 야수성을 지닌 모든 인간의 잔혹함을 떠올린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죄의식이 발동한다. 이를 벗어나려는 일환으로 채식만의 식단을 꾸미기 시작한다. 냉장고로부터 육식을 퇴출시키고 심지어 육식국물조차도 거부한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동물의 살을 도려내는 행위를 통해 살아있는 화석의 삶을 지향하면서(P.232). 어린아이의 순수함에 가까워지지만 어느새 죽음의 끝에 다다른다. 식탁에서 고기를 치우면서 시작된 제도권에 대한 항변(육식거부)이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초래하고 채식주의자로 낙인찍고 정신병원으로 가두는 등 갖은 횡포 끝에 죽음을 협박?하지만 오히려 죽음을 불사하면서 맞선다.

 

그녀의 외침에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여전히 쳇바퀴를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없이 식탁 혁명을 가져오고 있다. 웰빙, 직거래, 도시농업등을 통해 육식 위주의 삶에서 채식을 곁들인 자연순응 체제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지구온난화 같은 대명제 앞에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다양한 모습도 펼쳐진다.

 

짧은 소설 속에서 긴 서평이 되었지만 자명하다. 우리 삶 속에서 퇴출시켜야 할 찌꺼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수작이다. -주의자로 비록 낙인찍었지만 우리 스스로 -주의자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촉매제가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홍글씨가 각자의 삶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건강한 삶, 회복하는 삶이 되는 극적반전이 펼쳐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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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남는 소설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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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 2021.10.08
구매 평점5점
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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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 | 2021.08.31
구매 평점4점
wkf qh잘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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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 20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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