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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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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명사/연예인 에세이 89위 | 국내도서 top2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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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6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534g | 140*205*30mm
ISBN13 9791190065672
ISBN10 1190065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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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집안의 막내딸이라서 ‘막례’라는 이름을 받았다. 동네에서는 그래도 있는 집 자식이었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도 없이 집안일만 했다. 그러다 남자 잘못 만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50년을 더 죽어라 일만 했다. 70세가 되던 해에 막례는 인생을 포기해버렸다. 그냥 관 뚜껑 덮을 때까지 일하다 갈 팔자려니 했다. 그런데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했던가. 71세가 되던 해, 박막례 인생이 달라졌다. 아니, 완전히 뒤집어져버렸다.
--- p..10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걸 봐도 할머니는 껍질 색깔이 어떻고, 꼭지가 어떻고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사소하게 여기고 눈여겨보지 않은 것들을 할머니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수없이 먹어본 파스타지만 할머니는 먹을 때마다 맛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세심하게 잡아냈다. 나이가 많으니 세상에 무뎌졌을 거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손끝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할머니의 감각은 초롱초롱 빛났다. 모든 것에 반응하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할머니보다 훨씬 적게 살았으면서 나는 뭐가 그리 익숙했을까. 뭘 다 안다는 듯이 살았을까. 할머니 덕에 나도 ‘처음’이 주는 설렘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초면이 된다.
--- p.74~75

할머니도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할머니 말로는 할아부지를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단다. 할아부지가 하도 ‘나쁜 놈’이어서 집을 나갔고 할머니 혼자 삼남매를 키워야 했다. 어릴 때부터 엿장사, 떡장사, 안 해본 게 없었다. 그러면서 성격도 바뀌었다.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나 혼자 자식새끼 셋을 키울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여행이 거듭될수록 할머니는 잊고 살던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으로 가득 찼던,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그 시절의 자신을.
--- p.157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사고 발생. 피르스트에 올라 마운틴카트를 탄 게 화근이었다. (중략) “야, 다친 것도 추억이여. 이런 건 영광의 상처다. 내가 도전하려고 했다가 생긴 상처라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할머니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직접 타봤으니까 계모임 친구들에게 이게 왜 X 같은지, 왜 타지 말아야 하는지 설명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해봤으니 그걸로 만족이라고 했다. “만약 안 탔다면 나는 밑에서 저 카트가 무서운지도 모르고 부러워만 했을 거 아녀. 저거 X 같은지도 모르고!” 그러고는 탈탈 털고 일어나 할머니는 먼저 길을 나섰다. 박막례 대단해! 나는 박막례의 손녀이자 그녀의 팬이다. 그녀가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유튜브를 시작한 70대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당차고 씩씩하게 자신만의 ‘마이 웨이’를 가는 매력 때문 아닐까.
--- p.197~198

한번은 할머니가 밥 먹으러 온 에버랜드 직원한테 “삼촌, 나도 에버랜드 구경 한번 시켜주면 안 돼?”라고 하니까 정말 구경을 시켜줬다. 그런데 들어가면 뭐하나, 아무것도 안 태워주는데. 박막례답게 ‘나도 더럽고 치사해서 안 탄다’고 웃어넘기고 집으로 왔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할머니에게 너무 박했던 것 같다. 본인 나이를 자각할 시간도 없이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살다가 이제 좀 여유가 생겨 돈 내고 놀이기구 좀 타볼랬더니 늦게 왔다고 뒤통수 맞은 거다. 인생, 진짜 뭘까?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아쉬운 게 없는 거야? 열심히 살아야 해서 열심히 살았는데도 그게 꼭 잘 산 게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너무 쉽게 벌어진다.
--- p.225~227

나는 여행을 가면 건물보다 사람들하고 사진을 많이 찍는다. 돌아오면 그 사람들을 보면서 추억한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귀해진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은 하나둘 죽어가고 새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래서 노인은 외로운가 봐.
--- p.263

할머니는 이렇게 살 수 있으면 결혼 안 해도 된단다. 할머니는 항상 ‘남편 만나서 내 인생 조졌다’고 하신다. 이런 세상이 조금만 일찍 왔으면 결혼 안 하고 기계들이랑 살았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 능력을 높이 쳐주시기 때문에 너 할 거 다하고 결혼 늦게 해야 한다고, 결혼하면 애 봐야 하니까 일 계속 하고 싶으면 애도 낳지 말라고 하신다. 돈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나서 결혼하는 건 상관없는데 얼떨결에 홀려서 결혼해버리면 나중에 자기 일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오래간다고 자주 말한다.
할머니가 무슨 마음으로 그러시는지 잘 알고 있다. 그토록 하고 싶은 공부도 못 했으니까.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우리 할머니는 못하는 게 많아서 슬픈 사람이다. 자전거를 못 타서인지 자전거만 보면 달려가서 사진을 찍고, 영어를 못하고 배운 게 없다고 서러워한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있기에 할머니는 지금 연세에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 p.276

내 인생 가장 큰 즐거움은 성취감이다. 목표를 하나 세우면 그걸 깨가는 과정을 마치 게임을 하듯 살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를 하면서 손녀의 입장에서는 할머니의 행복이 내 목표이지만, PD로서의 목표는 이 채널의 가치를 인정받고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2018년 5월, 구글 I/O 행사를 갔을 때 수잔을 찾는 컨셉의 영상은 사실 CEO 수잔 워치츠키(Susan Wojcicki)를 정말 만나고 싶어서였다. 우리가 2년 전 실버버튼을 받았을 때 유튜브 CEO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고, 수잔에 대해 검색을 해봤었다. 업계에선 그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다섯 아이를 둔 멋진 워킹맘이었다. 단숨에 수잔의 팬이 되어버렸다. (중략)

촬영 날, 나는 혼자 카메라 세 대를 돌리며 초긴장 상태였다. 수잔이 돌아가고 카페에서 영상을 옮기며 이게 꿈인지 뭔지, 그동안 유튜브를 즐겨주는 할머니가 고맙고 대견(?)했는데 이날은 나도 꽤 대견하게 느껴졌다. 수잔이 할머니를 찾은 이유는 모든 여성에게 귀감이 될 만한 멋진 삶을 살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 수잔은 우리 할머니를 알아봐줄 줄 알았어! 게다가 이 모든 게 유튜브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었으니 수잔도 그 이야기를 전 세계에 나누고 싶지 않았을까? 또한 수잔이 내가 제작한 구글 I/O 영상 「수잔을 찾아서」를 유튜브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보여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PD로서 내 인생 최고의 날.

수잔과의 만남은 모두에게 감동을 줬고 우리에게도 큰 경험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할머니 인생이 바뀌었지만, 내 인생도 그에 못지않게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 p.313~315

순다르 피차이 (Sundar Pichai) 가 나한테 그 말을 하더라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자기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영감을 준다고. 구글 사장님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 새로운 결심을 한 거야. 인생 얼마 안 남은 거 알지만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늙은이가 재밌게 사는 모습 보고 세계 대기업 CEO가 영감을 받는다는디 내가 더 즐겁게 살아줘야지 않겄어? 느그들 좋은 기술 많이많이 만들라고 내가 더 열심히 즐기고 살아볼게!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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