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를 떠나 여행 63일째 키예프로
2009년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자루비노 항구로 입항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지나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거쳐 여행 63일째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도착했다. 표준거리 7,293km를 10,000km도 넘게 돌고돌아서 천천히 온 것이다.
비행기 한두 번 갈아타면 아프리카든 남미든 지구의 끝자락도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세상인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돌아돌아 왔을까?
토요일에 도착한 키예프에는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확성기를 높이 쳐들고 현 대통령과 여당은 미국과 EU로, 크림반도를 중심으로는 러시아로 반반씩 갈려 정치적으로 꽤나 시끌벅적했다.
옛 소련 국가 중 2003년에 맨 처음으로 캅카스의 조지아 장미혁명에 이어 2004년에 두 번째 발생한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의 흔적이 키예프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오렌지혁명 10년이 지난 2014년에도 반러시아 친서방을 외치며 정권 교체가 목적이었던 마이단혁명이 또 일어났고, 2019년 4월 1일 우크라이나 대선을 치르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스터리 혁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우크라이나다.
이러한 혁명은 2005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벨벳혁명으로 이어졌지만, 조지아의 장미혁명이든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이든 키르기스스탄의 벨벳혁명이든 2021년 현재까지도 미완성의 시간들로 남아 있다.
민주화 혁명은 비단 옛 소련 국가들뿐만 아니다.
2010년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은 아랍과 아프리카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고, 2011년 이집트의 반독재 시위는 아랍의 봄으로, 그리고 모로코, 알제리, 리비아, 요르단, 시리아, 예멘, 바레인 등 아랍 전역에서 독재자들을 향해 울부짖는 민중들의 소리로 들끓었다.
2014년 홍콩의 노란우산 민주화 혁명은 2020년 홍콩 정부가 추진한 범죄인 인도 법안 사태와 관련해 지금까지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2018년 기름값 문제로 촉발된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그리고 대한민국도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촛불시위로 무척 혼란스러웠다.
드네프르 강가를 중심으로 길게 뻗은 공원은 키예프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토요일 오후에는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들이 공원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있다.
거리에는 다양한 바(Bar)들이 눈에 많이 띈다. 키예프의 거리는 정치적 상황만큼이나 어수선한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키예프에서 당분간 머물기로 했다.
여행 64일째 키예프 기차역
우크라이나 키예프 기차역에서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로 가는 열차가 있고 러시아 극동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열차도 있다.
2014년 3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가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라, 모스크바와 키예프의 항공 노선도 중간에 갈아타야 하고, 러시아 각 지역으로 가는 열차가 운행되는지는 다시 확인을 해 봐야 한다.
아제르바이잔 바쿠까지 가는 열차도 운행되는데, 크림반도 분쟁 이전인데도 외국인한테는 국경선을 개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바쿠까지 운행하는 열차는 국경선이 열려 있으나 러시아의 북캅카스 지역과 캅카스 3국과의 관계가 워낙 변화무쌍하여 하루하루가 다르다.
예전에는 지구의 1/6을 차지하는 거대한 한 나라였으니 이상할 리가 없지만, 대한민국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그 넓디넓은 옛 소련 지역 방방곡곡으로 기차가 연결된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키예프 기차역 넓은 홀 안에는 옛 소련 각 지역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나는 정치와는 무관하게 그저 열차를 타고 옛 소련 구석구석으로 달려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하철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박물관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옛 소련의 핵폭탄 방공호 역할을 했던 만큼 깊이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빠르고, 특히 아르세날나 지하철역에서는 자그마치 5분 20초나 타고 내려간다.
키예프 시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지하철은 빨강, 녹색, 보라색 3개의 노선이 X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키예프에서 10일 머무는 동안 지하철은 나의 발이 되어 주었다.
여행 65일째 오랜만의 휴식
오늘은 숙소에서 밀린 빨래도 하고
침대에서 뒹굴며 낮잠 자고
책 보고
보드카 한잔 하고
늘어지게 휴식을 취했다.
여행 66일째 별 2개짜리 호텔에서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은 골로시브스비스키라는 지역 이름을 딴 별 2개짜리로, 녹색 노선 2호선의 마지막 지하철역인 루비드스카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더 가야 하는 외곽에 있다. 닛산과 리젠트 자동차 매장, 그리고 EKO 마트가 있는 주로 공장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다.
한 층에 약 20개의 룸이 9층까지 있는 제법 큰 호텔이지만 숙박비가 저렴하여 외부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 그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드카를 한잔 하면서 밤늦게 또는 새벽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미 넘치는 호텔이다.
서울이나 키예프나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다.
키예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마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운전사에게 직접 버스비를 한 번도 내지 못하고 거스름돈도 승객들을 통해 주고받았다.
키예프뿐만 아니라 옛 소련 열다섯 공화국의 대도시에서 버스를 타면 안내양이 있어도 사람이 많으면 승객한테 버스비를 전달하고 잔돈을 주고받곤 했는데, 이 풍경도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
버스비뿐만 아니라 정류장도 정해진 곳이 없어서 내릴 때쯤 고함치듯 큰 소리를 지른다거나 앞 승객에게 전달해서 내리곤 한다.
우리나라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으면 버스 안내양이 짐짝 구겨 넣듯 하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를 상징하던 그 버스 안내양은 1982년 시민 자율 버스가 등장하고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버스 개혁이 시작되면서 말 그대로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나간 것은 모두 추억이 되니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내가 머무는 호텔은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이지만 커다란 창문이 달린 시원한 싱글 룸으로 하루에 24달러 207흐리브나 31,660원이다. 호텔과 구시가지를 지하철과 버스로 오가며 키예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며 즐기는데 싸고 편하긴 하다.
5일째 되는 날 버스 타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숙소를 옮기려고 구시가지에 있는 야로슬라브 유스 호스텔을 찾았다. 2009년까지는 키예프 구시가지 주변에 호스텔이 드물었는데, 음식을 맘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주방과 썰렁할 정도로 넓고 시원한 4인실 침대 하나를 15달러 130흐리브냐 19,900원에 얻었다. 4~5일 머물 거라며 하루 방값을 미리 지불하고 내일 오겠다고 하자, 주인장은 이제 막 문을 열었으니 홍보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