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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혐오

: 감정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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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68g | 120*190*20mm
ISBN13 9791167370365
ISBN10 1167370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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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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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생리적이라면 분노는 사회적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면 분노도 생기기 않는다. 분노는 정의의 관념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혐오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즉 동물적인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 혐오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분노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혐오와 달리 분노는 말이 통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혐오의 입은 ‘입’이 아니라 토해내는 ‘주둥이’에 가깝다. 분노에서 말을 제거하면 혐오가 된다. 혐오에는 ‘왜’나 ‘이유’가 없다. 혐오의 감정이 지배적이면 지배적일수록 언어가 파괴되고 소통이 거부된다.
--- p.10

외국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타자를 향한 혐오의 감정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와 무관한 듯이 보이는 음식 취향은 어떠할까? 혐오와 자주 연결되는 말의 하나가 ‘혐오 식품’이다. 음식에 대한 혐오는 윤리적 감정이 아니라 심미적 감정이다. 우리의 취향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식품이 혐오 식품이다. 우리가 먹기 싫어하는 소극적 반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쳐다보기도 싫다는 적극적 거부의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 식품의 목록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혐오 식품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독약과 같이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이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혐오 식품이었던 음식은 없었다. 혐오 식품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 pp.52-53

혐오 식품과 혐오 범죄는 소수의 희생(타자화)을 통한 다수의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이다. 혐오 식품과 혐오 범죄는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인 현상이다. ‘내’가 “혐오한다”는 단수가 아니라 ‘우리’가 “혐오한다”라는 복수다.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취향이다.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본질은 주체화와 타자화의 변증법에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다. 내가 이상적인 자아가 되기 위해서 그렇지 못한 나를 타자화하는 형태가 자주화의 덕분에 더 이상 가동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정치화되었던 혐오의 탈정치화가 시작된 것이다. 혐오의 탈정치화는 집단적 현상으로서 혐오의 종언을 의미한다.
--- pp.82-83

근친상간이나 부친 살해 등의 범죄가 특히 혐오감을 일으키는 이유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상실과 관계가 있다. 2016년 초에 부천시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폭행해서 숨지게 한 부모가 시신을 유기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의 제목이 “자식 죽이고 밥 넘어가냐”였다. 자식을 죽인 부모라면 당연히 자신도 죽어야 마땅하다. 어떻게 살아남아서 밥을 먹을 수가 있겠는가. 동물도 자기 새끼는 죽이지 않는다. 설혹 음식을 입안에 억지로 밀어넣어도 자식을 죽인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음식을 토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은 아예 밥을 목으로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작가 박완서가 그랬다. 1998년에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그녀는 신에 대한 원망과 절망, 고통에 신음했던 경험을 나중에 《한 말씀만 하소서』에 담아놓았다. 여기에서 그녀는 밥이 목에 넘어가지를 않았다고 토로했다. 자식을 잃고 살고 싶은 의지가 아예 바닥났던 것이다.
--- p.113

무엇이 혐오스러운 행동인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다. 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서 혐오의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인의 취향이 진공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혐오의 대상은 항수가 아니라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변수이다. 동성애가 가장 단적인 예이지 않은가. (……) 2000년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했던 홍석천이 겪어야 했던 온갖 수모와 불이익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영화는 물론이고 TV에도 동성 커플이 등장하는 연속극이 방영될 정도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태도가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이 혐오의 대상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말해주는 진실은 무엇인가? 혐오스러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를 바라보는 혐오의 감정과 태도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과 태도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 pp.120-121

불행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하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약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쏠린다. 이것이 사회적 압력이다. 이러한 압력이 소수의 약자들에게 자살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혐오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아름다우며 또 똑같은 사랑을 받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은 남보다 더 아름답고 더욱 행복하기를 바라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재화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손실로 귀결되기 쉽다. 그러면서 세상은 제한된 재화를 자기가 차지하기 위해 욕망과 욕망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욕망의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재화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경쟁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더욱 더 아름다워지고 추한 사람은 더욱 더 추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결과적으로 추한 사람을 더욱 극단으로 밀어넣는 셈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타인이 희생되는 것이다. 타자의 추는 나의 아름다움, 혐오스런 타자는 사랑받는 나를 의미하게 된다.
--- p.154

화자는 자신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에 대해 분연히 일어서서 정정당당하게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약한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던 그는 어려운 대의명분 대신에 손 쉬운 지름길을 택한다. 남대문에서 뺨을 맞고서 동대문서 화풀이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는 서슬이 시퍼런 왕궁에 뺨을 맞고서 자기보다 힘이 없는 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한다. 그에게 설렁탕집 주인은 그냥 여자 주인이 아니다. “돼지 같은 주인년”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싸다. 화자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남자들처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설렁탕집 주인을 혐오스러운 타자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 pp.158-159

나는 역사적 변화의 지평으로 여성 혐오를 올려놓지 않으면 그러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구조주의적인 접근은, 왜 여성 혐오가 한국사회에서 2015년에 지배적인 정동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왜 가부장적 제도가 공고했던 과거가 아니라 강력한 사회경제적 도전에 직면해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현재에 여성 혐오의 정서가 대두되었는가??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과거에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 혐오가 너무 당연한 자연의 이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러한 구조가 도전에 직면해서 흔들리고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혐오의 감정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차별이 의식의 대상이 된 것이다.
--- p.169

혐오는 상대방을 동물화(動物化)하는 감정이다. 상대를 나와 질적으로 다른 타자, 열등한 타자, 동물적 타자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동정과 연민, 사랑의 시선은 그와 같이 동물화되었던 타자를 재인간화하는 시선이다. [……] 혐오가 그 정치적 기원이 망각되고 심미화된 감정, 그래서 지독하게 보수적인 감정이라면, 분노는 그러한 기원의 폭력에 저항하는 정치적 감정이다. 서두에서 “사람 셋이면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들기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속담을 소개했다. 다수의 폭력이 소수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으로 모자라서 다수는 기회만 생기면 혐오를 표출함으로써 자기의 특권과 권력을 과시하고 확인하며 또 재확인하려는 반복 충동을 지닌다. 이러한 반복의 악순환에 온몸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p.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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