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시대가 지나고 사회 분위기가 흐트러짐에 따라 그 학문은 ‘빈껍데기 학문’밖에 남지 않았고, 그 행동은 ‘거짓된 행동’뿐이었다. ‘참마음’의 입장에서 보면 그 학문은 빈껍데기이니 개인적인 계산으로 보아 꽉 찬 것이라는 얘기일 뿐이고, ‘참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그 행동은 거짓된 것이니 위선적인 습속으로 보아 꽉 찬 것이라는 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조선 사람들의 참마음과 참행동은 학문 영역 이외에 구차스럽게 간간이 남아 있었을 뿐이며,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은 오직 거짓된 행동과 빈껍데기 학문뿐이었다.
--- p.15
사람이란 예나 이제나 자신과 자기 집안을 중심으로 삼는 이기심에 의해서 부림을 당하는 존재다. 참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해 제지하거나 절제하지 않은 채 오직 ‘남의 말’에만 의지한다면, 그 ‘남의 말’은 언제나 밖에서만 빙빙 맴도는 것이니 참마음을 만만히 보는 그 속에는 이기심이 쉽사리 들어서게 되고 그럴수록 참마음에 대한 경시는 더해지며, 참마음에 비추어 살피지 않은 남의 말이기 때문에 어느덧 이기심의 이용 대상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 p.18
옛사람들의 책을 보면, ‘우리 대명(我大明)’이라고 한 것이 있다. 허어, 대명이 우리 대명이란 말인가.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隋)나라 군대를 섬멸했다고 상국(上國)을 범한 죄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허어, 그대로 두 번 절하고 죽음을 맞이했으면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인가. 어린애는 고사하고 바보천치에게 물어봐도 나와 남, 내 나라와 적을 구별하지 못할 리 없건만, 학문이 본심의 ‘애틋함’에서 떠났으니 본심 아닌 말, 본심 아닌 일을 해도 일시적으로 울리는 ‘본심 아닌 헛소리’를 추종하고 부르짖는 것을 도리어 빛나는 일로 안 것이다.
--- p.42
그러므로 별달리 양지에 대해서 연구할 생각은 하지 말고, 자신이 홀로 자신만 아는 가운데 스스로 속이지 못할 곳이 있다면, 그것이 분명하다면 양지로 생각하라. 이것을 깨달았다고 해도 그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점점 빛이 흐려진다. 속이려는 그‘것’이 근절될수록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본체가 점점 더 뚜렷해진다. 속이려는 ‘것’을 뽑아내고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본체를 완성하는 것을 ‘치지’라고 한다.
--- p.46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그 마음에 온갖 보육의 방법이 샅샅이 미리부터 들어 있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함에 있어서 정신을 집중한다면 이 마음에 한순간의 쉼도 없다. 포대기의 지푸라기 하나라도 혹 껄끄럽지 않을까. 자다가 굴러가 맨바닥에 몸이 닿지 않을까. 우는 소리만 들으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고 병나려는 그 기미도 어머니가 가장 잘 알 때가 많다.
--- p.108
이렇게 말하면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도 있을까? 혹시 있다면 이는 특수한 일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그 사람도 자기의 사사로운 꾀가 단단히 봉하지 않은 어느 곳으로부터 갑자기 외부의 사물을 접할 때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짠한 것이 스스로 당한 것 같은 때가 있을 것이다.
--- p.112
큰 종기를 앓는 사람은 보약을 먹으면 보약이 결국 피고름만 돕는다는 것처럼, 세상에 나오는 것 쳐놓고는 옳은 것이건 그른 것이건 모두 개인적인 속셈을 키우는 것이다. 어떠한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가 반석 같을 것이요, 어떠한 샘이 있다면 그 샘이 장강이나 황하와 같을 것이다. 그렇듯 근원이 깊고 크지 않다면 어찌 저렇듯이 천고를 집어삼킬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이 뿌리를 뽑지 않고 이 샘을 막지 않는다면 이른바 정치와 교화도 없을 것이며 이른바 학문도 없을 것이다.
--- p.122
이제 가까운 예를 들어 보면, 친구가 잘한 것을 들으면 겉으로는 좋은 체하면서도 한 점 질투가 가만히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내가 이렇게 천박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천박함을 스스로 말하는 속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좀 우월해지려 하는 속셈이 있다. 간혹 이것까지 다 말해 조금도 숨김이 없는 듯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까지 말하는 것으로 더 우월하자는 속셈이 또 있다.
--- p.123
양명이 일생 동안 역설한 내용과 그 후학들이 힘껏 주장하고 애써 지킨 내용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가릴 수 없는 선천적인 이 지식에 의해 조금도 유감이 없게 하자는 것뿐이다. 이러한 것은 근본적으로 지적 활동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해도 이 지식은 없으란 법이 없는 것이지만, 또한 아무리 수많은 책을 읽었더라도 이 지식에 의지할 줄을 모른다면 모든 것이 빈껍데기일 뿐이다.
--- pp.211-212
이 지식이란 매우 엄격해서 추호의 구차함도 없으므로, 어떠한 재주나 계교로도 이를 속이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나 혼자만이 아는 것이므로 가장 은미해서 소리와 냄새도 없는 곳이니 마음조차도 비교될 수는 없지만, 나 혼자만은 아는 것이므로 가장 절실해 목숨이 맡겨져 있는 곳이다. 이것을 제쳐 두고 인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표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 p.212
그러므로 누구나 내 본밑 마음의 천부적인 지식을 찾으려면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곳을 조용히 살펴보라.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그곳의 진실한 모습을 찾으려면 민중과 감통하는지 아니면 간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해 보라. 이 밝음은 어디에서든지 찰나 동안이라도 멈추는 일이 없으므로, 뜻 있는 사람들이 한번 깊고 멀리 생각해 보면 결코 대충대충 하고 말 일이 아니다.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