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얼기설기 대충 설명되었던 사상의학의 생리와 병리를 현대과학처럼 분명하고 선명하게 해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마의 설명은 매우 간략하면서도 중요한 것만 언급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그래서 임상은 가능하지만 자세한 생리와 병리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필자는 사상의학의 생리와 병리를 분명하게 나누어 선명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비록 과학의 인과론과는 다르겠지만 병의 원인부터 초증(初證), 중증(中證), 말증(末證)으로 변화하는 병리를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싶었다. 소음인, 소양인, 태음인, 태양인의 생리와 병리가 따로따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논리구조로,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설명하고 싶었다. 병의 변화에 따라 예후를 예측하고 이를 환자에게 미리 말해줄 수 있는 그런 기전이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하고 싶었다.
이런 것들은 기존 한의학에서는 일부에만 있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는 같은 논리구조를 가지고 병의 기전을 설명하고 병을 초증(初證), 중증(中證), 말증(末證)으로 구분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현재 질병 상태의 전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과학의 세균, 바이러스 같은 실체로써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음양승강’의 논리구조는 정합성을 가지고 있어서 과학적 설명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제마는 소음인 울광병, 망양병에 대해서만 초증, 중증, 말증으로 나누었지만 이를 기초로 각 체질의 모든 병증도 초, 중, 말증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그럼으로써 태음인의 병증을 새롭게 세울 수 있고, 태음인의 병증이 세워지면 이 논리를 따라 태양인의 병리를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생리·병리는 ‘음양승강’이라는 전제 조건을 가지고 해석할 때 가능하다.
이런 일관된 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동의수세보원』을 쓴 이제마는 19세기의 과학기술을 보았다. 과학기술만 보았을까? 서양 근대의 합리적인 설명방식을 접한 것은 아닐까? 근대의 합리적 설명방식을 토대로 그 위에 유학의 세계관을 입힌 의학을 내세운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니 어쩌면 조선후기에 탄탄한 논리싸움을 한 성리학 논쟁(사단칠정논쟁, 인성물성논쟁 등)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 논쟁은 상대방의 작은 허점을 찾아내어 공격하고 조그만 나의 허점마저도 보완하려는 논리 싸움이 치열하였다. 이제마의 논리적인 4원구조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것이 현재까지는 더 타당한 설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이제마의 생리와 병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할수록 서양근대의 과학기술, 그중에서도 증기기관차의 열 전달방식이 떠오른다. 가로축이 앞뒤로 움직이면 그에 따라 위아래로 승강운동하는 기계의 운동방식이 보인다.
이 책은 이제마의 사유구조를 해석하고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생리·병리를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동의수세보원』의 조문을 하나씩 해설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각 조문을 해체하고 다시 하나로 합쳐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 소음인, 소양인 등 각 편에 흩어져있던 내용을 재조립하여 소음인과 소양인 생리와 병리기전을 만들고 소음인과 소양인의 대변, 소변, 땀, 소화의 변화를 기반으로 태음인과 태양인의 대변, 소변, 땀, 소화의 병적 변화를 확인하고 이에 맞게 두 체질의 생리·병리를 재구성하였다. 그러면서도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의 내용이 생리와 병리에 충분히 스며들도록 노력하였다. 이제마의 생리와 병리는 모두 성정(性情)으로 시작하여 성정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한의학의 최종 목표는 사람과 자연의 정상적인 감응이었다. 사람과 자연은 기로 만들어지고 기로 운동하는 하나이므로 자연의 흐름, 기의 흐름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건강의 기본이었다. 이제마는 자연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사람을 이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건강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바로 감정의 절제를 통한 도덕적 삶이다. 선한 마음을 유지하고 드러난 감정을 수신(修身)함으로써 거친 동물의 감정에서 도덕화된 사람의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한 몸을 만드는 방법으로 삼았다. 성정(性情)의 온전함, 절제된 감정은 몸의 가로 순환운동의 추동력이 되고 가로 순환운동에 의하여 위아래에 있는 장(臟)과 장(臟), 부(腑)와 부(腑) 사이의 승강작용이 이루어진다. 이런 이제마가 천착한 사유방법으로 생리와 병리를 재구성하면서 의학 속에 그의 철학이 배어들도록 하였다. 이런 내용은 2장부터 5장에 담겨 있으며 이것이 이 책의 씨줄이다.
생리와 병리의 재구성을 위하여 사용한 도구가 바로 대변, 소변, 땀, 소화라는 4대지표이다. 이 4가지는 근대의학 이전부터 보이지 않는 사람의 속 모습을 겉으로 보여주는 생리현상들이었다. 이제마는 이 4가지를 각 체질의 건강을 측정하고 또한 폐비간신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로 삼았다. 이 지표들은 병의 변화에 따라 같이 변화하기 때문에 병증을 분류하고 진단하고 처방을 할 때 기본적인 근거가 된다. 그리고 4대지표의 변화는 음양승강에 의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때로는 『동의수세보원』에서 언급하지 않은 병증의 증상을 추론해낼 수가 있다. 1장에서는 음양승강의 개념을 실어 이 책의 방법론을 제시하였고 6장에서는 체질에 따라, 체질의 병증에 따라 변화하는 대변, 소변, 땀, 소화 상태를 음양승강 운동으로 설명하였다. 이것이 이 책의 날줄이다. 7장에서는 필자가 많은 선배로부터 배웠던 체질감별 방법을 소개하였다.
---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