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얼마나 위대한 분들인지가슴 깊이 새기길 바랍니다
참 긴 세월이다.
權誠遠 교수와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나는 梨花女子大學校에서 함께 봉직하며 이화가족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마다 권 교수는 살뜰히 보살펴주곤 했다. 그렇게 서로 기대고, 도우며 이어온 귀한 인연이다.
권 교수는 여자대학에서 비뇨의학과를 연 장본인이다. 언제나 그의 진료실에는 전국의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듣기로는대·소수술 10,000례 이상 시술했다는데, 타고난 칼잡이 의사가 틀림없다. 그를 알아 오며 가장 신기했던 것이 있다. 분명 언제 어디서든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도 될 만큼 훌륭한 대학교수가 진료실 밖으로 나와 ‘찾아가는 의사’로 변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두메산골만 찾아다니며 배뇨장애로 고생하는 노년들에게 전문적인 진료를 제공한다. 1년, 2년이면 모르겠지만 무려 20년 동안 권 교수는 발품을 팔아가며 두메산골 노년들을 만났다. 5만
km 이상 전국의 오지를 찾아다녔고, 10여만 명에게 인술을 베풀었다.그러나 권 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배뇨장애에 대한 노년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잡지까지 발행한다. 18년째 무료 배포하며, 힘든 발행인 자리를 기꺼이 도맡아 칼럼을 쓰고 편집후기를 쓰고 있다. 전문 칼잡이 의사가, 더군다나 가장 못된 암질환과 싸워온 종양학자가, 글쓰기를 공부한 적도 글 쓸
만한 여유로운 삶을 산 것도 아닌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초짜 글쟁이임에도 수준 높은 글을 쓴다.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맨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독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이유가 분명했다. 권 교수의 글 속에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삶이 있었다.
평생 비뇨기암질환과 전투를 벌이며 환자들과 몇 년씩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하며 함께 투병해온 권 교수다. 그런 그는 환자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고 진득한 인간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환자들의 삶과 가족사 그 속의 모든 희로애락을 권 교수는 살뜰히 들여다본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 시대의 위대한 아버지들이 어느새 권 교수 앞에서는 ‘갑’에서 ‘을’로 격하된다. 권 교수 앞에서 그들은 평생 동안 자식들을 위해 흘린 피와 땀, 눈물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은 지천인데, 목숨 걸고 자식들을 지켜낸 아버지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듯이다. 그런 시대에 권 교수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아버지 마음’에 이어 ‘아버지 눈물’, 아버지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독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문단에서도 권 교수를 눈여겨봤는지, 문인으로 인정했다. 주위에서는 그동안 쌓인 아버지 이야기를 한 권 더 펴내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 완결판이 바로 ‘위대한 아버지’인 것이다. 내가 권 교수의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글솜씨, 내용, 문학성만 따져서가 아님을 고백한다. 환자의 질병을 기술은 물론, 마음으로 치료하고 돌봐온 권 교수의 따뜻한 베풂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그 온기를 더 많은 독자들이 느끼길 바란다.
권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책 예닐곱 권 값이면 백령도, 울릉 도, 땅끝마을… 우리나라 의료 사각지대에서 배뇨장애로 고생하는 노년 한 명을 제대로 진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 ‘아버지 마음’과 ‘아버지 눈물’을 통해 2,000여 명의 노년들에게 인술을 실천했다고 한다. 칼잡이 의사에겐 요긴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뒤숭숭한 세상이다.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은 빠듯하고, 한국전립선관리협회의 봉사사업도 휘청한단다. 권 교수는 ‘책이라도 팔아야 한다’며 또 한 번 팔을 걷었다. 그러면서도 풀죽은 노년들에게 힐링을 선물하고, 자식들에게 효의 본질을 알리고자 한다. 참으로 마음 따뜻한 칼잡이 의사가 아닐 수 없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 시대의 위대한 아버지들의 어깨가 점점 좁아져만 가는 쓸쓸한 시대. 이 땅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어깨를 펴기 바란다. 우리네 자식들, 이 책을 읽고 진정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얼마나 위대한 분들인지 가슴 깊이 새기길 당부한다
- 이어령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