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민족, 민족주의와 네이션, 내셔널리즘에 대하여 심도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많은 예를 들어가며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전개형태를 단락의 예로서 보면 다음과 같다.
민족이라 함으로써 이 말이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예를 하나 들어보자. 김씨는 대학친구들과 오늘날의 세상이야기를 하다가 홍콩, 대만의 중국과의 갈등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김씨는 중국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가 중국을 두둔하는 논리적 근거는 민족자결원칙이었다. 한족(漢族)들이니 한족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의 논리적인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 부분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김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모두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우고 있다. 학습용어사전을 보면 “민족자결주의”라는 항목을 두고 있고, “민족의 문제는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하고 있다.
**********
일본, 중국에 민족, 민족주의라는 말이 사용되면서 곧 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이 말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중국을 통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민족이라는 말이 언론 매체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00년『황성신문』의 기사에서 “백인민족”과 “동방민족”이라는 표현이었으며, 1907년 이후에 널리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성신문 1900년 1월 12일자, 칠우생(漆憂生)의 “서세동점의 기인(起因)”이라는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CERD)가 한국이 한국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단일민족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랜 역사 동안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해코지한 적이 없는 순둥이 국가인 한국이 이런 난데없는 권고까지 받게 된 것은 웬일인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외국 사람들에게는 한국이 혈통적 순수성을 내세우는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민족주의라는 용어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인종차별을 한 적도 없고 민족 내셔널리즘을 표방한 적도 없지만, 단지 이 용어 때문에 이런 것을 표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한민족을 내세우는 단체나 활동이 많이 있다. 이들 단체의 대부분은 한민족의 혈연적 연원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혈연의 한계를 넘어 보다 포괄적인 집단으로서의 우리도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용어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열린 민족주의, 개방적 민족주의를 외치지만 민족이라는 용어로는 열리지 않는다.
**********
우리를 민족이라 함은 대외관계에 좋지 않다. 나라 있는 사람들이 무슨 민족이란 말인가? 이는 일제시대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나라 아닌 종족 집단으로 표현할 때나 적합한 말이다. 일본은 조선민족이라 하였다. 민족이라는 것은 나라사람이 되지 못하는 집단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며, 일본이 나라가 아닌 민족집단을 통치한 것으로 하여 침략의 잘못을 약화시키고 정당화하는 여지까지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사람들이 한국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 취급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윤동주 시인의 생가 입구에는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표석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중국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나 바이두에서는 세종대왕이나 김구와 같은 위인이나 김연아와 같은 한국의 세계적인 명사를 ‘조선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에서 중국의 해당 기관에 항의나 수정요청을 하고 있으나 중국은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 이를 중국이 들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그 중의 한 민족으로서 조선족이 있고 조선족이라고 불러오고 있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이를 달리 뭐라고 부르겠는가? 우리 스스로 민족이라 하지 않는가?
**********
성안의 사람들을 국인이라고 한 것은 부르주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성을 부르(bourg)라 하고, 성안의 사람들을 부르주아(bourgeois)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중산층을 의미하였으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자본가를 지칭하게 되어 무산의 노동자계급인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와 대립되는 계급의 명칭으로 되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는 라틴어 proletarius에서 유래한 말로서 성과는 관계가 없다. 고대 로마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가진 것이라고는 자식밖에 없는 가난한 자유민이었다. 민은 그 위치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의 국인은 중세 유럽의 부르주아와 비슷하지 않다. 국인은 귀족과 같이 나라의 주체세력이지만 부르주아는 제3계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못먹고 못입고 어렵게 살아왔고,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 역사를 이어왔다. 왜 우리는 국가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좋은 사회를 건설하지 못했는가?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여 헐벗고 굶주리며 살지는 않았어야 했지 않았는가? 바깥으로 정복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힘을 결집하여 자기방어는 하는 나라가 되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일찍이 이 땅의 사람들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집단으로서의 우리를 추구했어야 했다. 스스로를 한(恨)의 운명을 타고난 슬픈 민족(民族)이라 하는 대신에 스스로를 축복받은 땅의 강건한 국인(國人)이라 했어야 했다.
**********
국인(國人)은 주인이며, 능동적이며, 합의적이며, 자유의지적이며, 근대적이며, 민주적이며, 공동체 통합적이다. 그래서 국인이 우리에게 더 잘 어울리고, 그래서 더 절실하다. 시인은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 우리에게는 그 존재에 합당한 언어가 필요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