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론
매미가 운다.
폭염
마른벼락 치듯
불꽃처럼 확 운다.
울지 못한 어둔 시간 돌려달라고
지독하게 운다.
덩달아 불볕더위 뭐 그리 탓할 일이냐고
악다구리로 운다.
진창에서 나와 노는 것만이라도
매미다움이라고
밑줄 치면서 운다.
밑줄에 매달려 사는 이들
그제사 진정 운다.
목빼며 남루의 껍질도 좋다며 운다.
폭염에도
서로 휘어진 등 기대며 운다.
저기 폭염 길바닥 밑줄 따라
아주 느리게 폐휴지 등에 지고서
울음꽃 뿌리며 죽으라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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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가 보낸 편지*
도반 시 혁명 재미있지요.
큰 세상 만드는 것과 임꺽정처럼 촛불 드는 것
둘 평등이 하나요, 그렇지 않소.
붉은 리스트가 담쟁이 손처럼 녹슨 장벽에
당신의 접시꽃을 피웠다지요.
도반 시 적색 청산 지켜보고 있지요.
당신의 문 안팎에 어둔 그림자 드리워
손톱 밑 후벼파듯 아리오, 그렇지 않소.
교실 속 순수 기개 어디로 갔소.
당신의 심장에서 피던 접시꽃이 시들고 있소.
도반 시 감격통일 눈부신 듯 하지요.
나도 한때 선을 넘어 당신처럼 영웅이었소.
석류의 붉은 알로 혀끝의 전부를 뱉으며
죽창 같은 완장을 차고 으시대었소.
아하 색채의 상생, 다시 처음처럼 깊이 일해보소.
*소설 임꺽정 작가인 벽초 홍명희가 쓴 자필 편지가 108년 만에 그의 고향인 충북 괴산 땅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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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폭포
미인폭포 대면하면 그대 다시 보네요.
멋지네요, 힘차면서도 곱네요.
머리 잘 빗어내리며 가슴에 팍 안기던 그대
천상천하 통틀어 쏟아졌던 그날 그 저돌 이후
맨날 그 줄기 땜에 줄기차게 바다를 꿈꾸네요.
미인폭포 등목하면 그대 사랑 시원하게 느끼네요.
넣어요, 하나 돼요, 절정감이에요.
순간의 물폭탄 타래줄로 서서 나를 맞던 그대
막상막하 다모아 내리꽂던 그날 그 눈빛 이후
허구한 날 그 물길 땜에 오십천 이어 동해를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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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아리랑
하늘재(峙) 알토란 터전
한가위 달 떠오르자 번지는 반가사유상 미소,
자리한 영가, 다들 미소 넉넉하다.
마꼬보살 부부,
공양하는 두 손 모아서 더욱 대보름달 닮다.
사연 실타래 풀어주고 웃고
저마다 파란의 뒤안길 닦아주고 웃으며
다라니 구음에 가을벌레도 불성 입다.
과일 익어 차례성찬
올벼 익어 보름송편
잔 올리는 두 손 지극하여서 무척 환하다.
하늘재 성전에는 떠나서부터 가을부처 되다.
저마다 부처길 시조경을 읽다.
오늘도 더도 덜도 말고서 그냥 놀아
어제도 가물가물 하듯이 그냥 잊어
내일도 마냥 웃다가 공들이며 그냥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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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바람꽃
단절과 통제를 뚫고 너를 만났다.
은행나무 땜에 너의 신음을 들었다.
복수초, 노루귀, 전호 찍고 너의 향내를 맡았다.
풍도바람꽃, 풍도대극 탓에 너를 불러보았다.
고승호* 가라앉은 이후 바다가 처음 울었다.
울음 넋으로 피어난 꽃이름,
이름 달고 역사 바다 한켠 자르면서
물거울로 세상 세상에 다시 퍼져 웃었다.
풍도여, 너의 이름만큼 섬노래를 부르며
배 검문과 감시를 뚫고 너와 함께 피었다.
*청일전쟁 때 청군 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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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춘화
길
길 속에 꺼벙이 김홍도 그림을 그리다 배 위에서 터지는 음수전놀이 남한강 절벽에서 줄줄 쏟아지는 줄불놀이 배 위에서 홍매 백매 끼고 그리다 내 발길 내딛을 자리에는 홍합 천지다 홍매 살결 향에 눈이 녹고 백매 눈살에 시린 웃음 녹다 산꽃들이 옷을 자꾸 걸며 그림 젖집으로 오다 사타구니 송이 송송 솟고 애기똥풀 속 조개 수줍게 피다 뜨거운 피 들킬까봐 조마조마 붓질하는 김홍도.
몸
나팔문신 김홍도 손끝에 그림 꽃잎 눈부시다 몸과 몸 열쇠와 자물쇠 내는 소리 그리다 그림 자리에서 나는 그냥 숨이 막힌 짐승 적삼을 벗기다 쿵쿵거리는 소리 파랑새 꾀꼬리 놀다 갑자기 지나가는 우렛소리 몸이 뒤집히다 내 볼기도 소리를 내다 응응 울음인가 접문 감탄사인가 무릉의 깊은 길 도원의 미친 물자락 구분없이 김홍도의 슬슬 손놀림에 창녀 기생 한량 건달 뜨겁게 살다.
살
그림도적 김홍도가 나를 환생시키다 하늘 냄새 나다 성전 치르는 자리 초대 자체가 기쁘고 새삼 나의 뿌리를 잊은 채 살춤을 추다 살의 잔치 눈뜨다 내 뜨거운 진동 드디어 생기로 적셔져서 살도끼에 생목 벗기고 벗긴 나무 불로 활활 다시 물로 살살 씻겨 흙의 생기되다 땅의 진품 내가 되어 처절하게 살기둥 베이고 베다 옥순봉 배 위 사인암 나귀 위에서 미치도록 나는 알춤을 추다.
감
아저씨 부르는 그대, 놀리는 재미 쏠쏠하다.
단풍숲에 감 주렁주렁 깔깔 따라 웃는다.
가만있어 보라며 단풍길, 단풍집에서 싸우자
아저씨, 색칠할 끝판까지 가보지 뭐라고 들이댄다.
안개비에 젖은 단풍잎들, 신부 면사포 발아래
홍감빛 배달부 아저씨 설렁설렁 쓸고 있다.
배달부 빨간 가방에 꽉 찬 붉은 가을편지
하나님 이름표로 늦겨울로 배달될 거라고 우긴다.
하나님 아저씨, 그대가 흔들자 가을잎 우수수
가을감 덩달아 툭툭 겨울눈을 부른다고 대든다.
나는 잠시 그대 아저씨 품에서 웃음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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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또 서시(序詩)
가만히 마음을 모아 기울이면,
시시때때로 오는 바람 놀이시를 담으리라.
마음 깊숙한 곳까지 와닿는 게 보이면,
나무숲이 주는 다르마 별시를 만나리라.
하늘과 땅, 사람을 겹쳐 사노라면,
어루만지고 보듬고 다리듯
마음챙김의 여기,
시샘(詩泉)이 앞다투어서 보이리라.
또 거기, 인문 꽃시가 마음껏 피리라.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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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미치도록 안달한다. 사는 과정에서 너무 슬퍼서 눈물도 마른다. 살아내려면 그리움의 신기루에 모든 걸 던질 때도 있다. 삶의 길에서 만난 시 한 편에 데인 자국이 아문다. 이처럼 살다 보면 서정적으로 운다, 논다, 빠진다, 웃는다, 살핀다. 때론 서정적 자아로도 결기를 다지기 일쑤다. 이러다가 정서적 교감의 극치와 절정이 입말을 걸기 시작하면 시품이 보인다. 오래된 지혜의 시작이다.
---「작가 시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