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섯 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재난과 치유≫는 코로나19 발생과 확산을 둘러싼 징후와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징후와 증상〉에서 작가들은 팬데믹의 사회적, 개인적 현상들을 기록하고 재해석한 작품을 통해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존, 재난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린다. 〈집콕, 홀로 같이 살기〉는 팬데믹 시대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된 ‘집콕’이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를 만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각자의 불가피한 고립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격리가 불가능한 삶을 사는 사회 취약층의 현실은 재난 속의 불평등을 인식하게 한다. 〈숫자와 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된 ‘수’와 ‘거리’를 재해석한다. 숫자는 현재를 투영하는 기준이 되거나 통계, 데이터와 함수관계 속에서 정보 이상의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 〈여기의 밖, 그곳의 안〉은 문명이 질주를 잠시 멈춘 시간 속에서 삶의 공간들을 다시 바라보도록 한다.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는 인류가 겪어온 재난에 대한 사유와 인간과 이외의 생명종(生命種)이 공존하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식체계의 전환을 제안한다.
--- p. 11 「기획의 글: 전염의 시대, 예술이라는 언어_양옥금(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중에서
따라서 감염병이 인류에게 끼친 진정한 영향은, 재앙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현실 극복의 드라마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이런 드라마를 통해, 단순히 진화(적응)의 원리를 따를 뿐만 아니라 진화 시스템 자체를 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에서 카뮈를 통해 제시한 마지막 두 가지 원칙은 그러한 드라마의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는 인간적 대응들이다.
--- p. 231 「감염병 속에서 진화하는 인류_정명교(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에서
상이한 통치 규범 하에 놓인 두 도시를 떠올려 본다면, 서울과 파리의 모습은 대조적으로 연상이 될 것이다. 이는 도시경관뿐만 아니라 이를 통치하는 기술 기반의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일찍이 멀티미디어, 디지털기기, CCTV 등 도시 통제 기술이 안전한 도시 모델을 구현하는 데 있어 주요 인프라스트럭처로서 자리를 잡아 왔다. 기술 기반의 방역 시스템은 사실상 사회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디지털 기술을 적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방역 초기에 감염자 동선 공개 등이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되었고, 데이터 인권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뒤늦게 일어나기도 하였다.
--- p. 243 「도시를 잠시 봉쇄합니다_심소미(독립큐레이터, 문화/과학 편집위원)」 중에서
생물 다양성 분야의 국제기구나 회의에 모이는 사람들은 기후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기후 변화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기후 변화 관련 국제기구나 회의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기후 변화 이슈에만 천착할 뿐 그로 인해 벌어질 생물 다양성 감소 문제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 감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 있다.
--- p. 259 「황금두꺼비를 떠나 보내며: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_최재천(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중에서
‘포스트휴먼’은 이러한 인간 능력의 확장이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됨을 의미한다. 포스트휴먼은 타고난 한계를 과학기술의 힘으로 초월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존재와는 완전히 달라진, 다시 말해 특이점을 넘어간 새로운 인간이다. 이 미래의 인간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은 상상의 영역이다. 유전자공학 같은 최첨단 생명과학의 힘으로 영원히 20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고, 신체 기관을 부품 갈아 끼우듯 더 기능 좋고 튼튼한 인공 부속으로 교체한 사이보그일 수도 있다. 아이언맨처럼 신체 기능을 강화하는 특수 장비의 힘을 빌릴 수도 있고, 〈트랜센던스〉에서처럼 아예 뇌를 컴퓨터에 업로딩하여 옷을 바꿔입듯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신체로 바꿔가며 영생을 누리고 자유로이 우주를 누비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포스트휴먼의 꿈은 결함 많고 거추장스러운 몸의 굴레를 벗어나 노화와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말한 ‘호모 데우스’, 신이 된 인간이다.
--- p. 271 「포스트휴먼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법_송은주(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원 연구교수)」 중에서
첫 기획 회의에서 로비와 1전시실 등 일정 공간을 열어 두고, 안전한 안내를 통해 일부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였으나, 제도적으로 이는 불가능한 일로 확인 되었다. 정부의 방역지침은 청정 지표나 소독 여부가 아니라, ‘현관문’이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특정 방역 단계가 되면 관람객의 신체가 문을 통과해서는 안 되었다. (3) 즉,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과 양쪽의 유리벽은 정말 “유리 천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 이곳은 미술관의 안과 밖을 분리하는 곳이며, 관람객들의 통로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멈춤’의 기간을 대비하여 이 곳은 공존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해석되었다.
--- p. 285 「코로나19와 전시 기획 방법론: 미술관이 다시 멈추더라도_강수정(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 2과 과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