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영국의 부채는 막 1조 파운드(약 1,480조 원)를 넘어섰고 앵커는 나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수치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네, 정말 큰돈이군요……. 자, 다시 스튜디오 나와주세요.’라고 대답할 순 없었다. 최소한 비유를 들어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 우리는 100만(million), 10억 (billion), 1조(trillion)가 서로 크기가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사이에 감춰진 충격적인 차이를 놓칠 때가 있다. 지금부터 100만 초가 지나려면 11일하고 14시간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이 걸린다. 썩 나쁘지 않다.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고작 2주 아닌가. 그러나 10억 초는 31년이 넘는다.
지금부터 1조 초가 흐르면, 무려 서기 33700년 이후이다.
--- p.413, 「서문」 중에서
설계 과정에서 복잡한 계산을 마친 통로는 공중 위에 뜬 채, 가느다란 금속 봉 몇 개로 지탱되고 있었다. …… 그러나 수학의 확실성 덕분에, 엔지니어는 현장에서 볼트 하나 조이기 전에 지지대가 얼마나 안전한지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수학과 인간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두뇌는 훌륭한 계산기이지만, 우리는 개인적인 판단 과정을 거쳐 결과를 예측하도록 진화했다. 우리는 근사치로 계산한다. 그러나 수학은 곧장 정답으로 향할 수 있다. 수학은 옳은 것에서 틀린 것으로, 정확함에서 부정확함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뒤바뀌는 지점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알아낼 수 있다.
--- p.354, 「2장 토목공학의 실수들」 중에서
맥도날드는 명확하게 식사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려 했음에도, [심지어 ‘계승(factorial)’이라는 수학 개념까지 이용했으면서도] 40,312라는 숫자는 정확한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단순히 한 예시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확히 계산하려면, 일부 메뉴의 맛 선택도 포함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16가지 선택의 폭이 생겨 수학으로 계산하면, 총 65,000가지 이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확하다. 2^16=65,536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맥도날드에 걸어 들어가 밀크셰이크 맛 하나를 선택해 주문하고, 이를 한 끼 식사라고 불러야 한다.
--- p.260, 「5장 셀 수 없는 나날들」 중에서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전달된 최초의 이름은 통치자나 전사, 사제가 아니었다……. 바로 회계 담당자였던 것이다. …… 나는 맥주를 마시며 가끔 쿠심이 맥주 창고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니사는 일일이 대조하며 확인했을 테다. 쿠심이 쓰고 기록했던 것들이, 오늘날의 작문과 수학이 되었다. 쿠심과 니사는 그들이 문명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앞서 말했듯이 도시 생활은 인간이 수학에 의존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도시 생활의 어느 부분이 과연 수학 문서에 기록되어 오랫동안 보존되는가? 바로 맥주 양조다. 맥주를 만들려고 인류는 최초의 계산을 했다. 물론, 맥주를 마시고 취해버리면 계산 실수도 반복하게 되겠지만.
--- p.195~192, 「8장 실수는 돈이다」 중에서
콜럼버스는 아랍 마일(1,975.5m)을 이탈리아 마일(1,477.5m)로 잘못 읽었고, 그래서 스페인에서 아시아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착각했다. 단위를 잘못 읽은 데다, 몇 가지 오해가 더해져 콜럼버스의 예상 속에서 영국에서 중국까지의 거리가 오늘날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까지의 거리쯤으로 오판된 것이다. 유럽부터 아시아까지의 거리는 콜럼버스가 횡단하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신대륙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지를 마주쳤다. 물론, 그가 후원자와 선원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착각한 척했다는 추측도 있다.
--- p.126, 「10장 단위, 표기법, 왜 바꿀 수 없을까」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조종사들은 헐렁한 군복을 입었고, 여러 체형의 조종사가 앉을 수 있도록 조종석도 꽤 넓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가 등장하며 많은 것이 변했다. 조종석은 좁아졌고, 군복은 몸에 딱 달라붙었다. 미 공군은 조종사의 신체 치수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했고, 그렇게 전투기와 군복을 몸에 딱 맞게끔 만들려 했다.
미 공군은 신체 치수를 재는 크랙 팀(crack team)을 공군 기지 14곳에 보내 총 4,063명을 측정했다. 각각의 사람은 132군데가 측정됐다. 젖꼭지 높이, 전두부 길이, 머리둘레, 팔꿈치 둘레, 엉덩이에서 무릎까지 길이 등이 포함됐다.
--- p.94, 「11장 원하는 대로 통계를 내다」 중에서
통계학과 학과장 설명에 따르면, 학과 내의 누구도 835km 밖으로는 이메일을 보낼 수 없었다. 그 정도 거리 안쪽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메일을 보낼 때도 안 보내질 때가 있는데, 835km 밖으로 보낼 때는 확실히 전달이 안 됐다. 며칠 동안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은 미리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지질 통계학 교수는 이메일이 전달되고 전달되지 않는 지역을 지도로 만들었다.
--- p.20, 「13장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