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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정원

미소의 정원

: 쓸쓸한 영혼의 미스테리

정진영 | 청어 | 2021년 08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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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564g | 153*224*16mm
ISBN13 9791158609610
ISBN10 115860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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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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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털터리가 된 채 이혼 당한 시현은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집이 한 채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운전하며 가는 동안 그는 이미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 것을 실감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안개에 잠긴 늪지였고 지나는 사람이나 짐승 한 마리 구경 못했다. 도시에서 두 시간 남짓 거리였는데 딴 세상으로 들어선 것 같았다. 마음의 거리는 더 막막해서 티베트 오지에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안개 자욱한 황야를 헤매었고 황천인 듯 싯누런 강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졌다.
“가끔 도도 닦고 명상을 하자.”
그는 긍정적인 마인드컨트롤을 하기 위해 힘차게 말했다. 그는 무교였지만 여러 종교와 도, 명상, 무속까지 약간은 관심이 있었다.
붓다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적한 장소를 향해 일곱 걸음만 내딛어라, 강가 강 모래알만큼 수많은 겁(怯)동안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보다 이로움이 크다.’
붓다는 그렇게 길 떠나는 수행자를 격려하였다.
그는 치아를 슬쩍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 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공양을 올렸으니, 극락은 예약해 두었다, 이참에 은둔수행자처럼 살아 보자. 농담처럼 결심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가슴이 미어지던 쓸쓸함이 힐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외딴 집, 산골 은둔처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선행이 된다네…….”
그는 멜로디를 붙여 노래 부르듯 흥얼거렸다. 마인드컨트롤은 성공했다. 그 집으로 가서 사는 일이 대단한 선행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는 안개등을 켜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운전했다. 괜히 창을 열었다. 창문을 열었다가 재채기를 했고 문을 닫자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차 안을 금세 가득 채운 안개는 그저 미스트 같은 것이 아니었다. 플라스틱을 태운 것 같은 역한 냄새와 먼지 알갱이가 섞여 있었다.
8인용 승합차에는 대형 캐리어 두 개와 잡다한 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승합차는 비포장의 좁아터진 길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고 구불구불 돌았다. 그는 뱀 같은 길이 구부러질 때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속도를 줄였다. 누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놀이동산 코스 같았다. 작은 마을로 진입하자, 언덕 중턱에 우뚝 선 회색 이층집이 보였다. 시현이 물려받은 집이었다.
조부가 땅 부자였던 시절, 그 집도 별장으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그 후 종손인 큰형은 별장을 관리하며 펜션으로 쓰기도 했지만 적자를 보자 방치해 두었다. 쓸모 있는 땅과 집은 종손 차지였고 시현에게도 황무지와 폐가 한 채가 떨어졌다. 돌아갈 집 한 채가 있는 것이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혼을 하자 그는 집에서 나와야 했고 수중에 남은 돈도 없었다.
캐리어 두 개만 끌고 그는 언덕을 올라갔다. 캐리어 속에는 고가의 캠코더와 카메라가 있어 조심스럽게 취급해야 했다. 바닥이 울퉁불퉁해지면 번쩍 들고 올라갔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고, 대문 앞에 서자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역한 안개를 들이킨 탓인지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지나갔다.
바람 부는 방향이 달라지자 안개가 옅어졌다. 부근 어딘가에 공장이 있는데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안개가 오거나 가는 것 같았다.
조부가 살아계실 때 이 집에 몇 번 놀러왔던 기억이 났다. 어린아이였을 때 이 집은 ‘백조의 성’처럼 하얗고 아름다웠으며 지붕은 붉은 색이었다. 백조 대신 흰 거위가 연못에서 헤엄쳤다. 주황빛 부리와 주황빛 물갈퀴의 뽀얀 거위는 짙은 화장을 한 듯 예뻤고 개보다 더 사나웠다. 낯선 사람이 오면 개처럼 짖으며 쫓아다녔고, 어린 시현을 죽일 듯 부리로 쫀 적도 있었다. 그때 거위 부리에 찍힌 흉터가 그의 짙은 눈썹 속에 비밀스럽게 숨어 있었다.
그는 아련한 감상에 젖은 채 성처럼 높은 담장을 올려다보았다. 담 위에 도둑이 오를 수 없게 뾰족한 창살이 빽빽이 꽂혀 있는데, 창살은 붉은 녹이 두터워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파상풍에 걸릴 것 같았다. 그 흉하게 녹슨 창살을 담쟁이와 넝쿨 장미가 절묘하게 감싼 채 감추고 있었다. 뭔가 소중한 것이 있어 단단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잠자는 숲 속의 절세미녀라도 있나. 미녀가 잔다는 소문이 나면 남자들은 백리 가시밭길이라도 기어서 담을 넘어 올 것이다. 가시 장미 길이 열리는 대신 그는 열쇠로 문을 땄다. 철문은 금속성 굉음을 지르며 활짝 젖혀졌고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서 시원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대저택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아직도 쓸만해 보이는 이층집과 조경사가 와서 가꾼 듯 풍성한 장미 밭과 둥글둥글한 향나무들이 그를 맞았다.
“아, 누가 왔다……. 어서 오세요…….”
순간 소곤거리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환청이겠지, 시현은 실제로 들린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울린 것 같았다.
--- 「유령이 있는 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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