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탕은 날이 갈수록 기운이 없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잠만 잤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내의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걱정만 했다. 그러고 보면 육아는 나름 준비를 했는데, 아내의 산후조리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당연히 산후조리는 조리원이 해주는 걸로 여겼다. 우습게도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면 아내가 멀쩡해질 줄 알았다. (중략)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육아휴직 동안 내가 보살펴야 하는 건 아이만이 아니라는 걸.
--- p.31~32 「미처 아내를 생각하지 못했다」 중에서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기묘해서 한번 발길을 멈추면 다시 길을 내는 게 어려워진다.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언제든 열려 있는 식당조차 마음의 길이 끊기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게 너무 당혹스러워 때론 서글프기도 하지만 별 수 없다. 시절이 가버린 것이다. ‘제철’의 뜻은 알맞은 시절이다. 알맞은 시절에 태어난 과일과 채소, 생선은 그래서 약이 되나 보다.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니 올해는 끊긴 길을 새로이 내고 싶었다. 봄이 우수수 꽃을 떨어뜨리기 전에 나는 아내에게 도다리쑥국을 선물처럼 요리해주고 싶었다.
--- p.73~74 「알맞은 시절」 중에서
무엇보다 하루 세 끼, 하루 세 번의 즐거움을 미역국으로만 채우고 싶진 않았다. 음식 섭취는 즐거워야 하고, 다양하게 먹는 게 산모의 영양에도 좋다. 산모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인 칼슘, 철분, 비타민, 단백질과 섬유소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나는 아내의 산후조리 식단을 짰다. 채소의 경우 뿌리, 줄기, 잎, 열매로 나눠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했다. 단백질은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로 나눠 고기는 즐길 정도로만 먹고 콩, 두부, 견과류로 할 수 있는 요리를 공부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그때의 마음가짐은 겨우 이 정도였다. ‘미역국, 네가 아니어도 우린 잘 먹고 잘 살 거야.’
--- p.82 「미역국, 네가 아니어도 우린 잘 살 거야」 중에서
주변을 둘러봐도 남편이 아내의 몸조리를 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가 아니면 산모는 미역국 끓일 시간조차 나지 않는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산모가 기진맥진한 사이, 남편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마도 일을 하고 있을 거다. 밤새 아이를 안아주다가 아이 분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일을 하고 있을 거다. 회사에서 집에서 고생하는 아빠들을 책망할 마음은 없다. 다만 나는 궁금할 뿐이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왜 아빠들은 일하고 있어야 할까.
--- p.135 「산욕기를 마치는 우리의 자세」 중에서
문득 밤마다 그림을 그리던 맛탕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피곤해도 펜을 놓지 않고, 그만 쉬라고 해도 아내는 꼭 하루에 한 장씩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아내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다. 아마도 아내는 스스로를 지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 애석하게도 나로부터. 6개월 육아휴직은 해도, 경력단절은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기혼 남성인 나로부터 아내는 자신의 경력을 지키고자 혼자 분투했던 것이다. 성평등 한 척하며 살았지만 나는 사회가 주는 혜택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굳이 양보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에게까지 양보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육아휴직을 하며 겨우 깨달았다.
--- p.199~200 「육아휴직과 경력단절」 중에서
아이가 귀해졌다면서 세상은 아이들을 환대한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세상은 마치 아이들이 저절로 크길 원하는 것 같다. 남편도 기업도 사회도 여성의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이 아니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걸 분명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쯤 되면 거의 묵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자 혼자만 참고 조용하면 되니까. 그러면 육아하는 여자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하니까. 진심으로 묻고 싶어졌다. 왜 우리는 육아가 지옥이 될 때까지 내버려둔 걸까.
--- p.222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