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경이 그에게 약간 낡은 초록색 공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새터드웨이트는 찰스 경의 어깨 너머로 그 일기장을 들여다 보았다. 일기장 안에는 그저 끄적거린 것들 뿐이었다. 래덤 영감의 세일. 훌륭한 포트와인. 가야할 것. L에게 새 테이블 매트를 사오라고 할 것. 이젠 다 늙은 것 같다. 곧 은퇴해야 겠다. 주의 - 그 바보 같은 정원사 녀석을 혼내 줘야겠다. 도대체 그 사람은 왜 튤립을 좀 더 빽빽히 심지 않을까? 마지막 장은 사건 바로 전날에 쓰여진 것이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p.88
찰스 경은 잘생긴 중년에다가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낡은 회색 플란넬 바지와 흰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는 반쯤 주먹을 쥔 손을 흔들면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십중팔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대한 해군이 분명해.' 하지만 그를 좀더 면밀히 살펴본 사람들은 경솔하게 이와 같이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 p.7
배빙턴 목사는 안경을 낀 부드러운 눈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칵테일을 조금 마셨다. 새터드웨이트는 그가 아마도 칵테일을 마시는 데 익숙치 못한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칵테일이란 현대적인 것을 상징하는데, 어쩌면 그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배빙턴 목사는 약간 찌푸린 얼굴로 다시 한 모금 들이키면서 말했다.'저기, 저 아가씨 말이죠?..아, 윽-' 그의 손이 목 있는 데로 올라갔다. 에그 리튼 고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올리버 당신은 사기꾼 샤일록이에요....' '물론-' 하고 새터드웨이터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저 젊은이도 유태인일지 모르지.'
--- p.26
'박사님은 어땠었소? 그는 파티에 대해서 뭔가 기대하는 게 있었나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혹시 모르겠소?'
'주인님은 유난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어요, 선생님. 혼자서 가만히 웃어대시기도 했답니다. 무슨 농담거리가 있는 처럼 말이에요. 심지어, 저는 주인님이 엘리스 씨와 농담까지 하시는 걸 보았답니다.- 전에는 베이커 씨와 그런 농담을 하신 적이 없거든요. 그 분은 하인들에게 친절하게는 대해 주셨지만 별로, 하인들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거든요.'
'그가 뭐라고 말했나요?'하고 새터드웨이트가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 p.110
밀레이 양이 쇠지레를 들어올리고는 무엇인가를 꺼내려했다. 그 순간 어떤 손 하나가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포와로의 고양이 같은 초록색 눈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마드무아젤.' 하고 그가 말했다. '당신이 없애려는 건 바로 증거물이니까요.'
--- p.276
''내가 한 가지 생각을 말해 볼까요? 배빙턴 목사는 이 방에 들어선 지 불과 몇 분 뒤에, 그것도 칵테일을 마시자마자 쓰러졌어요. 그런데 그가 칵테일을 마실 때 우연히도 나는 그가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보았지요. 그래서 아마도 그가 칵테일이 익숙치 않아서 그럴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바솔로뮤 경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 배빙턴 목사는 자살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생각으로는 살인보다는 자살 쪽이 더 가능성이 많은 것 같이 느껴지는군요. 그러나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배빙턴 목사가 우리에게 들키지 않고서 몰래 잔에다가 무엇을 집어넣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자, 이 방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손대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그 칵테일 잔들도 원래 있던 자리 그대로 있지요. 이게 바로 배빙턴의 잔입니다. 여기서 그와 이야기하고 있어서 잘 알고 있지요. 그러니 말인데, 바솔로뮤 경이 그 잔의 내용물을 검사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보면 더 이상 아무런 이론이 없을 테니까요.''
--- p.31
그는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배빙턴 목사가 선 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경련이 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모습에 눈을 돌린 건 바로 에그의 날카로운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때는 이미 메어리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뻗쳐서 부축하려 하고 있었다. 바솔로뮤 스트레인지가 황급히 뒤어와서 쓰러진 그를 부축하여 소파 위에 눕혔다. 다른 사람들은 근심어린 얼굴오 주위를 에워쌌다. 2분 뒤, 스트레인지가 굽혔던 허리를 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서 한마디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말했다.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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