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삼평의 넓은 초지로 들어선다. 가슴이 뻥 뚫린다. 거대한 설산과 삼나무 숲이 뿜어내는 청정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산은 구름에 싸여 신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넓은 초지 위에는 말들이 흩어져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위룽 설산은 사시사철 하얗다. 정상부는 눈이 덮여 하얗고, 그 아래로는 석회석이 덮여 희끗희끗하다. 설명을 듣지 않고 보면 온 산이 백색의 눈으로 덮인 것만 같다. 게다가 구름마저 하얘서 서로 다른 백색들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 p.69, 「동방의 베니스 ‘리장’과 나시족의 ‘목부」
리장 고성은 ‘동방의 베니스’로 불린다. 고성 안에 미로처럼 퍼져 있는 수많은 도로와 골목은 수로와 함께 이어진다. 굽지 않은 흙벽돌로 지은 나시족의 회색 전통 가옥 앞에도 수로가 지난다. 그러나 리장 고성의 수로는 베니스처럼 커다란 물길을 이뤄 그 위에 배가 떠다니지는 못한다. 물은 돌다리 아래로 얌전하게 흐르며 골목마다 생기를 불어 넣는다. 물길이 실핏줄처럼 퍼져 흐르니 다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큰 길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고, 집집마다 대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작은 전용 다리도 있다. 대부분 돌다리인데 이 다리야말로 리장 고성을 가장 리장 고성답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 p. 81, 「동방의 베니스 ‘리장’과 나시족의 ‘목부」
모쒀족의 혼인 제도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정말 이상한 나라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남자들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식을 자식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조카들만 부양한다? 이들의 언어에는 아예 ‘아버지’란 단어가 없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그런데 어찌 생각해보면 차라리 남자들에게 참 편리한 제도 같기도 하다. 아버지, 남편,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감은 훨씬 덜 할 것 같다.
--- p. 112, 「못다 이룬 사랑의 눈물 ‘루구호’와 모쒀족」
바티하이에는 재미있는 볼거리도 있다. 봄날, 바람이 불면 활짝 핀 두견화 꽃잎이 호수 위로 떨어진다. 이때 물고기가 떠다니는 두견화 꽃잎을 먹고 독성 때문에 잠시 기절한다. 물고기는 흰 배를 드러내고 물 위에 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헤엄쳐 사라진다. 이른바 ‘두견취어’ 현상 때문이다. 또 이 호수에는 세 개의 입술을 가진 ‘신어’라는 특이한 물고기가 사는데, 이것은 빙하기 때부터 있던 어종이라고 한다.
--- p. 215, 「윈난성, 디칭주, 샹그릴라 그리고 장족」
지금 초원은 가을이 깊어가지만 아직 여기저기 야생화들이 보인다. 누렇게 변한 초원의 풀들은 초록의 생기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정겹게 다가온다. 목장 주위로 5천~6천 미터급 설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초원은 더욱 아늑하고 편안하다. 샹그릴라 같은 이상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런 지형이 아닐까? 위용을 자랑하는 설산들이 신비감을 풍기면서 사방을 둘러싸고 그 아래로는 아늑한 초원이 펼쳐져 있어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 호수와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흘러들어 초원을 어루만지듯 적셔주는 곳, 야딩의 삼신산 지역에서 샹바라의 전설을 떠올리고 샹그릴라의 원형을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 p. 271, 「‘절대 자연’에 나를 맡기다」
우유해는 우윳빛이 아닌 옥빛이다. 강렬한 푸른색이 아닌 은은한 푸른색이다. 바로 앞의 양마이용 신산에서 우유해로 물이 흘러들고 있다. 눈이 녹은 물일까, 신산의 저 밑바닥에서 솟아난 물일까? 물은 맑고 차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이처럼 넒은 평원이, 호수가 있다는 게 신비감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동행한 사람들의 웅성거림만 아니면 우유해는 고요하고 차분한 별천지다. 거대한 설산 아래 박혀 있는 한 알의 수정이다. 지금은 옥빛 수정이지만 봄이 되어 야생화가 만발할 때쯤이면 우윳빛으로 반짝거릴 것이다.
--- p. 277, 「‘절대 자연’에 나를 맡기다」
하늘호수! 삼신산에 둘러싸인 우유해와 오색해를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하늘호수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하늘 빛깔을 닮은 호수는 주위의 설산이 빚어내는 신비스런 분위기로 인해 지상이 아닌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호수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절대 순수의 세계를 표상하듯 맑고도 투명한 옥빛의 ‘하늘호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동안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샹그릴라 여행의 정점에 도달했다. 필설로 표현하기 힘든 절대 경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고단하지만 커다란 기쁨과 엄청난 감동으로 가슴 벅차게 떨고 있다. 인간사회의 현실계에 샹그릴라는 없겠지만,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계의 샹그릴라는 있다고 감히 말한다. 바로 이곳, 삼신산과 하늘호수와 초원으로 이루어진 야딩의 저 높고도 깊은 곳에서 샹그릴라를 보았다고, 샹바라 왕국의 전설이 살아 있다고!
--- p. 281, 「‘절대 자연’에 나를 맡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