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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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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70g | 118*188*8mm
ISBN13 9791196798796
ISBN10 119679879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시빌은 열여덟 살이 되면 사촌과 결혼해야 한답니다. 그애들이 어릴 때부터 저와 제 동생이 약속했거든요. 지금 제 아들은 저와 함께 있어요. 나는 앞으로 몇 달간 그애들이 함께 지냈으면 하고요. 그러니 처음 계획보다 시빌이 빨리 여기로 와야 할 것 같아요. 그애가 그곳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빨리 올 수 있도록 준비해주세요. 하지만 아직은 이런 얘길 시빌이 몰랐으면 해요. 결혼 이야기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p.9

뭐 저런 무례한 녀석이 다 있어?
나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까짓것, 새 장식품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겠어. 나는 곧바로 최대한 신경 써서 단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는 발이 예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작은 슬리퍼 한쪽은 자연스럽게 드레스 밑단 주름 아래로 드러내고, 팔찌는 레이스와 담홍색 리본 사이에서 반짝일 수 있도록 팔에 찼다. 그리고 그 손에 얼굴을 기대었다. 나는 옆모습이 예쁘고 속눈썹이 기니까 문에서 옆모습이 잘 보이도록 고개를 반쯤 돌린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명은 내 머리카락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곱슬머리를 매만지고 머리끈도 다시 묶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다시 한번 내 모습을 살펴본 뒤 책에 몰두한 척했다. 신사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연신 쿵쿵거렸다.
--- p.23

“내게 꽃다발을 바치는 임무를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넌 취향이 제법 괜찮고 난 야생화를 아주 좋아하니까. 네 노고를 생각해서 저녁식사 때 이 꽃을 달게. 이제 집으로 가. 여긴 아름답지만 싸늘하네. 덮을 거라곤 조막만 한 손수건밖에 없어서.”

그가 승마용 외투를 벗어주었고 나는 외투를 푹 덮어썼다. 모자도 씌워주었다. 그가 말에 올라타자 나는 고삐를 쥐었다. 가이의 단단한 팔에 안겨 재갈을 당기는 힘찬 말을 타고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짜릿했다. 내가 기댄 이 가슴이 곧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행복한 기대감이 밀려왔다.
--- p.39

“그럼 내 얘길 잘 들어. 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어. 우리 어머니는 네 할아버지의 어릴 적 친구였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고아가 되었을 때 네 할아버지는 나를 아들로 입양해 상속자로 삼았다. 그런데 2년 후에 네 아버지가 태어난 거야. 난 너무 어려서 그게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전혀 몰랐어. 네 할아버지는 정말 공정하고 자애로운 분이어서 내가 그런 변화를 느끼지 않도록 애써주셨다. 우리 둘은 형제처럼 자랐어. 둘 다 일찍 결혼했고, 가이가 태어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네가 태어났다. 그때 네 아버지가 그랬어. ‘형의 아들이 내 딸과 결혼을 했으면 해. 그렇게 된다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형에게서 빼앗은 재산이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 평안하게 합쳐지는 거잖아.’ 그렇게 가족 간의 약속이 이루어진 거고, 네 아버지가 죽을 때 우리는 그걸 다시 한번 확인했지. 그런데 지금 그 딸이 약속을 깨는구나. 하지만 시빌…… 난 마흔다섯이다. 넌 아직 열여덟도 안 되었고. 네가 말했었지. 너에게 언제고 다정하게만 대해준다면 나와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겠다고 약속할게. 난 널 사랑하니까. 내 사랑 시빌, 내 아들이 싫다면 나와 결혼해 주겠니?”
--- p.59

잠에서 깨어난 나는 내가 침대에 누워있다는 걸 알고 화들짝 놀랐다. 커튼 사이로 대낮의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아침 일찍 떠나려고 했던 게 떠올라 튕기듯 일어난 나는 한 발짝 떼자마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여긴 내 방이 아니었다! 시선이 닿는 것마다 완전히 낯설었다. 방은 작았고 소박한 가구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굳게 잠겨 있었다. 내 트렁크는 벽에 기대어 있고 옷가지들은 의자에, 그리고 방금 일어난 침대 위에는 모피로 가장자리를 두른 외투 한 벌이 있었다. 삼촌이 종종 어깨에 두르고 다니던 것이었다. 얼이 빠진 채 잠시 두리번거리던 나는 창가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쇠창살이 달려있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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