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군대와 법 제도로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 제국. 기독교를 품으며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번영을 구가하던 로마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자연 환경의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바이러스와 기후가 로마를 서서히 무너뜨려간 역사를 추적한다. - 손민규 역사 MD
자연은 어둠을 틈타 기습하는 군대처럼 인간 사회를 붕괴시키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장치를 가동했다. 그것은 바로 감염병이었다. 로마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생물학적 변화가 물리적 기후 변화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물론 기후 변화와 감염병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연관되어 서로 겹쳐서 일어나지만 동일한 현상은 아니다. 다만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탐구할 수 세기 동안, 기후 변화와 질병은 서로 어우러져 로마 제국의 운명을 결정했다. --- p.37
로마 제국은 서기 160년대에 신종 감염병의 진화와 마주쳤다.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이었으나,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다. 역병은 성장이 과도할 경우에 예측할 수 있는 역효과는 아니다. 그러나 전염병의 발생이 순전한 우연도 아니었다. 제국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서식자에게 적합한 환경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밀집된 도시 거주지, 지형의 끊임없는 변화, 제국 내부와 외부로 강력하게 연결된 교역망, 그 모든 것이 특정한 미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생태계 형성에 기여했다 --- p.131
갈레노스는 “로마에 복속된 많은 나라에 수년 동안 기근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굶주린 도시 거주자들이 시골로 내려가 “그들이 평소처럼 일 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많은 밀을 확보했다.” 그로 인해 밭은 초토화되어, 시골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나뭇가지와 풀로 연명했다. 이것은 고대 로마 제국이라는 집단적 경험에서 대규모 기근에 대한 가장 생생한 증언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런 상황이 팬데믹의 여파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 p.219
제국의 운명은 260년대에 저조기를 맞이했다. 인구도 바닥을 쳤다. 복구작업은 훨씬 느려졌다. 키프리아누스 역병과 광범위한 위기로 방향을 잃었다. 평화에 익숙하던 내륙 지역은 잔인하게 침범당했다. 오래 이어져 내려온 사회의 지배계층이 무너졌다. 서로마 제국 전체에서 농촌의 거주지 유형에 균열이 생겼다. 도시는 결코 예전과 같아지지 않았다. 가장 건강했던 고대 후기의 도시들조차 이전보다 규모가 더 작아졌고, 복구된 후에도 전체적으로 주요 도시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병사들을 쉽게 모집할 수 있던 옛날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 p.297
페스트는 극히 이례적이고 상대를 가리지 않는 살해자이다. 천연두, 인플루엔자 또는 필로바이러스와 비교하면,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는 무기를 장착하고 서서히 움직이는 거대한 미생물이다. 일단 한번 추동력을 얻으면, 페스트는 생물학적으로 강력한 세력이 된다. 6세기에 들어서자 미생물 진화의 역사와 인간의 생태계가 어우러져 자연재해를 일으켰다. 그 강도와 지속성으로 볼 때 2세기와 3세기의 역병이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페스트 팬데믹은 바다 위로 위태롭게 돌출된 마을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허리케인과 맞먹을 만한 자연재해다. 자연의 야성과 제국이 건설한 생태계가 모의하여 일으킨 의도치 않은 음모였다. --- p.375
펠루시움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두 갈래로 나뉘어 퍼져나갔다. 하나는 서쪽으로 향하여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렀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팔레스타인으로 향했다. 이집트 변방의 한 도시는 “일곱 명의 남성과 열 살짜리 어린 소년 하나만 남은 채 완전히 소멸되었다.” ‘팔레스타인 전체’를 통틀어 도시와 마을 모두 ‘주민이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페스트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도 퍼졌다. 요한이 소아시아의 중심부를 지나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역병은 그의 일행을 뒤쫓아왔다. “우리는 신음하는 황량한 마을과 땅 위에 널려 있는 시신들을 보았다. 그들을 매장하거나 치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p.415
로마 제국 해체의 마지막 단계는 박테리아의 승리로만 표상되지는 않았다. 페스트의 충격을 기후의 역사에서 분리해서 측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의 몰락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반갑지 않은 새로운 기후 체제인 고대 후기 소빙하기의 도래였다. 페스트와 기후 변화가 다 함께 제국의 힘을 소진시킨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으로 인해 살아남은 이들은 시간 자체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오싹함을 느꼈다. “세계의 종말은 이제 예견된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카일 하퍼는 21세기의 에드워드 기번-『로마제국 쇠망사』 저자-이다. 그는 매우 중요한 이 책에서,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이 우리 시대에 가르쳐주는 위대한 교훈을 제시한다. 인류는 자연을 조종할 수 있으나, 결코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세상의 영화는 이처럼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