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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시인동네 시인선-15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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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90g | 125*203*9mm
ISBN13 9791158965228
ISBN10 115896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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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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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년에 한번 누구나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

검사 순서 따라 피 뽑고 엑스선 촬영, 몸이 잠들길 기다린 내시경은 위와 장 지났다

일주일 뒤 결과 알려준다고 날짜 위 붉은 동그라미 그린다

내 마음 묻는 의사는 없다

병원에서 얻은 쿠폰으로 죽 한 그릇 비우고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 찾아간 지리산 산동마을

산자락 휘감고 피어난 산수유꽃, 지나는 사람 머리 위로 노란 고깔 씌우느라 분주하다

그늘 아래 항아리처럼 쭈그려 앉은 내게 꽃이 가지 길게 늘어트리며 묻는다

마음은 어떠냐고 힘들지 않느냐고

아무런 대답 못하고 눈시울만 뜨거워졌다
--- 「산동마을 건강검진」 중에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백 일간 여섯 분 돌아가셨다

스스로 목숨 끊었다

아흔 살 넘은 노인 잠든 손자 두고 자신 지탱하던 보행기 밟고 뛰어내렸다

아픈 손자도 할아버지께서 사라진 어둠 속으로 아슬아슬한 삶 맡겼다

밥 먹을 때라도 패지 말라며 울부짖던 장애인, 아버지가 음주 폭력으로 경찰에게 잡혀가자 집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파트 복도 울음소리 멈췄다

가계 빚 쪼들리던 아주머니는 희망보다 절망이 익숙하고 죽음은 삶보다 두렵지 않았다

여섯 분 돌아가신 뒤 자리가 빈 영구임대아파트 들어갈 수 있느냐 문의 이어졌다

당장 들어가시기는 힘들고 신청자 많아 일 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답 드렸다
---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중에서


저녁달이 굶주린 배처럼 푹 꺼졌다
한잔할까
주월주꾸미, 거문도횟집, 삼순이전집
술집 늘어선 사무실 부근
거리 불빛이 옷깃 끌어당긴다
뱃속은 이미 탁자 위에 놓인 빈 소주잔
갑자기 나오라 말할 이 마땅치 않고
홀로 마시자니 처량한 노릇
그러고 보니 자꾸 할까만 는다
물어볼 말 있어도 놓치고
그리운 이 떠올라도 연락 미룬다
만날까 먼저 말한 친구와 약속 잊고
태안화력에서 일하다 숨진
스무 살 청년의 빈소라도 가야지
생각하다 분향도 못한다
집으로 말짱하게 돌아오니
아내보다 키 큰 두 딸이
연예인 보는지 공부를 하는지
노트북 앞에 앉아 바쁘다
치우지 않은 그릇 씻고
일 마치고 한밤중 돌아와
화장 지우는 아내에게 묻는다
할까?
--- 「할까」 중에서


처음 뵌 노인이
다가오라 손짓을 한다

등 밀어줄 젊은이 탕 안에서 고르신 것 같아
말없이 등 뒤 다가가
팔꿈치 안쪽까지 밀어드린다

아버지 밀어드린 지 언제던가
남에게 내 등 맡긴 날도
기억나지 않는다

날 선 말에 찔리고 베인 등

노인이 손끝으로 날 톡톡 치시더니
이제 내 등도 밀어 주시겠단다
손사래 치는 내게
등 두드리시며 괜찮다 하신다

노인께 등 맡긴 뒤 감았던 눈 뜨니
내 등에 고운 단풍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내 등 자꾸 바라봤다
--- 「등에 단풍 들었다」 중에서


넌 모자라다는 말 수화기 건너왔다
힘껏 살아온 날 몰아세웠다

오히려 난 사과했다
그렇다고 술잔 앞에서 악 따위 쓰지 않았다

사람에게 잘 눌리는 나는
질경이와 같은 피가 흘러 발에 밟히고도 곧잘 일어났다

종일 걷다 방파제에 앉아 바라본 바다

해안선이 파도에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초라한 내 모습 잊으려 해도 물결 위로 자꾸 튀어 올랐다

“참지 마! 비난을 견딜 나이란 없어!
인정받기 위해 언제까지 속 태울 거야?
빈틈없으려는 강박이 문제야!”

누군가 바다 속에서 걸어 나와 소리쳐 주길 바랐다
바다 향해 소리 질러도 묵음이 돌아왔다

곱으로 갚아줄 궁리하다가 올레길 다시 걸었다
--- 「곱으로 갚아줄 궁리하다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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