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여가는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산물로 탄생했다. 이는 노동력 회복이라는 최소한의 생체리듬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통사회의 유한계급의 여가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며, 노동시간의 극한적 연장에 따른 반대급부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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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현상인 상업적인 광고술의 발달은, 소비의 세계로 인간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생산과 소비를 튼튼한 순환고리로 연결한다. 각종 인위적인 상징적 욕구가 조장되어 사회적으로 강요된 소비가 일어나고, 이것은 소비를 위한 소비, 생산을 위한 생산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조장된 강요된 소비는 노동의 세계로 환류(feedback)하여 더욱더 인간을 자본주의적 노동의 세계로 몰아넣는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상품 개발과 새로운 욕구조장으로 일반 대중을 지속적으로 물질적 필연의 영역 속에 묶어둠으로써, 더욱 안전하고 원활하게 자본의 운동 논리를 관철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의 생존 및 생활상의 필수 욕구에서 자본이 운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안전하게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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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상징적 세계는 상품과 서비스 이상의 것을 판매한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까지도 판매하는 것이다. 개인들은 준거가 되는 자신의 공동체를 재정립하고, 또한 상품세계의 상징적 성격을 둘러싼 차이를 정의한다. (…) 소비자본주의라는 꿈 제조기는 끊임없이 접속을 강요하며, 지속적으로 꿈의 원료를 제공한다. 소비문화의 상징적 세계는 일상의 탈출과 자기실현을 약속하는 메시지로 개인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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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되는 여가 선택지의 홍수 앞에서, 개인은 계속해서 즐거움과 흥분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느낀다. 개인들이 고르는 각각의 여가 선택사항은 가능한 여가 선택지 중에서 임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목적에 대한 추구는 궁극적으로 실현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시장이 제공하는 상품을 무한정 소유할 수는 없고, 소비의 대상들은 끊임없이 예측할 수 없는 변동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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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가의 문제가 대중적인 관심사로 등장하게 된 것은 산업사회 이후의 일이다. 예전에는 계절적인 순환리듬에 따라 일상생활이 구성되었고,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기계적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회제도적 차원에서 여가의 문제가 대두한 것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 노동시간이 극한적으로 연장됨에 따라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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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경제성장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에 대한 욕구를 증대시킨다. 사회의 평균치적인 생활을 영위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제품과 여가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외적 강제가 주어지고, 여기서 벗어나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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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의 영역도 노동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결핍과 모순을 가져온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오락도덕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라는 강제 윤리가 여가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가활용 방식은 신분을 상징하는 효과가 있다. 여가에서 경쟁적으로 자기를 과시하고, 계층적 차별성을 보증받으라는 광고와 마케팅은 끊임없는 소비 기호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다. 여기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제시된 표준화된 삶의 양식, 즉 이렇게 사는 것이 즐겁게 사는 것이고 가족들이 행복한 것이라는 프로그램화된 여가소비의 기호가 강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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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가 식량기근에 시달렸다면, 현대사회는 시간기근(time-famine)에 허덕인다. 소유되고 소비되는 하나하나의 사물에서와 같이, 자유시간의 일 분 일 분 속에서도 각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하거나 아니면 만족시켰다고 믿고 있다. 이른바 시간강박증이 현대인의 삶을 지배한다. 시간강박증은 지속적으로 변하는 자극의 공격에 포위된 우리 감각의 반응이다. 우리는 진정한 탈출과 만족을 찾기 위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그러나 탈출과 만족에 대한 감정이 충만하기도 전에 새로운 자극이 출현하고, 변화된 사회적 환경은 새로운 억압기제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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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상품을 소비하면서도 일상에서의 탈출에 대한 갈망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과 흥분을 향해 끊임없는 환상을 좇아 정처 없이 항해한다. 흡족한 기분 전환은 경험하기 어렵고, 여가는 종종 단순히 시간을 죽이는 방편이 된다. 여가에서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기 어렵고, 가속적으로 변하는 사회 환경 앞에 무력한 접속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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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는 새로운 삶의 근본이다. 특히 자기계발과 확장의 기능을 지닌 여가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여가는 우리의 삶이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우리에게 열려 있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갈 것인지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가사회의 지평이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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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스포츠의 결합은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운동 경기에 대한 열정이 예전에는 지역 단위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국가라는 단위로 이루어지면서 애국심으로 관전하는 시대를 개막한다. 이에 따라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는 나름대로 합당한 제도적 장치를 구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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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전일적으로 통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일반 민중의 변증법적 삶의 구성 능력이 완전히 상실되는 것도 아니다. 여가의 영역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종되고 통제되는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주체의 성숙과 개체성의 개화는 끊임없는 삶의 에너지로 솟아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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