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는 우리 정치체제를 미국식 대통령제에 근접시켰다. 미국의 경우에도 여러 군소정당이 있지만, 이런 작은 정당들이 대통령 후보를 내는 것은 고사하고 하원 의석을 차지하는 경우조차도 아주 드문데 반하여, 한국의 군소정당은 제법 캐스팅 보트를 쥐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단순다수대표제로 인한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ing) 경향은 사실상 우리 정당구조를 미국의 공화당-민주당 체제에 흡사한 양당체제로 만들었다. 더구나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을 제외하고 나머지 군소정당들, 예를 들어 유승민의 바른정당,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같은 정당들은 근본적으로 민주당과 보수당의 뿌리에서 정략적으로 갈라진 집단들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였다. 아래는 필자가 이전에 집필한 「지배당한 민주주의」에서 ‘전략적 투표 현상’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 pp.41~42
“대의제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군주제의 어두운 장막 속에서 태어난 공화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민주주의적 한계가 이제 그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간접민주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의제는 단지 공화주의일 뿐이다. 이제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함으로써 공화주의의 한계를 메꾸어야만 한다.”
--- p.103
전자투표 시행을 방해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가 관리자에 의한 조작 가능성인데, 블록체인은 ‘신뢰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신뢰성 있는 서비스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기술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디지털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하였다.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북유럽 국가인 에스토니아(Estonia)는 세계 최초로 2005년 모든 국민의 전자ID 시스템과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했다. 유권자의 대부분이 소유하고 있는 디지털 인증서가 들어있는 ID카드를 바탕으로,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전자투표 시스템 ‘아이보팅’(i-Voting)을 구축하였다. 이 때 두 개의 블록체인을 사용하는데, 하나는 유권자가 등록을 했는지 여부에 관한 블록체인으로, 투표를 안 한 유권자를 확인하기 위한 트랜잭션을 기록하여 이중투표를 방지한다. 또 다른 하나는 투표 내용, 즉 기호 몇 번에 투표를 했는지에 관한 블록체인이다. 이로써 유권자의 익명성이 보장된다.
--- pp.142~143
대중이 진영으로 나뉘고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그 심리적 기저에 바로 ‘영웅주의’와 ‘전체주의’가 있으며, 이것이 민주주의의 세 번째 적(敵)이다.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를 발전시키고 대중들을 평화롭게 하겠다는 정치엘리트의 마키아벨리즘이 영웅주의의 한 축을 차지한다면, 그 정치적 영웅에 대한 대중의 절대적인 숭배가 영웅주의의 또 다른 축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영웅과 대중은 서로를 동일시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적으로 간주하면서 전체주의적 특징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 이르게 되면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들이 바로 민주주의의 적(敵)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끊임없이 영웅에 대해 복종하고 영웅을 숭배하는 노예적 모습은 ‘인민은 과연 자기 통치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영웅주의와 전체주의 문제는 제4부에서 살피기로 한다.
--- p.153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실제로 ‘한나라당’이라는 정치의 주체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대다수의 시민들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된 이유는 바로 대통령제가 정치를 인격화시키기 때문이다. 군주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와 권력을 인격화시키는 체제인 대통령제는 당연히 군주제만큼이나 영웅숭배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엘리트의 기반을 개인에서 정당으로 바꾸어야 하며, 통치구조를 정당중심의 정치체제로 개조해야 한다. 그래야만 군중의 개인숭배 경향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p.181
일반인들은 물론 정치학자들도 민주주의의 시초를 그리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에서 시민이란 ‘판결을 내리고 공직을 맡는’ 데 참여하는 사람이었다(Aristotle, The Politics, 169). 고대 그리스의 관점에서 지금을 따진다면,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만이 시민으로 불릴 수 있어 결국 현대국가에서 시민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에서 민주주의는 경멸적 단어로, ‘가난한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모든 사회적 차이나 기득권을 없애 버리고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전제적 권력형태였다(데이비드 헬드, 74). 최근에 어떤 대선후보가 ‘최저임금제’를 ‘폐지되어야 할 규제’라고 말한 것을 보면, 위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은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존하는 정치적 스탠스로 이어 오고 있다.
--- p.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