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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카프카 그녀

내가 사랑한 카프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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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00g | 130*188*19mm
ISBN13 9791136284822
ISBN10 113628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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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창의적인 배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녀는 이렇게 선언했다.
“네 편지에는 오자 42개, 탈자 14개, 문법적 오류 36군데, 잘못된 단어 선택이 78군데나 있었어.”
그녀가 내 편지를 읽은 시간은 기껏해야 5초나 될까. 그 짧은 시간에 이런 분석이 가능하다니.
후카는 눈앞에서 편지를 찢어버렸다. 종이 쪼가리는 옥상 난간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떠올랐다. 바이바이, 나의 오탈자들아. 부디 땅에 무사히 착륙하렴.
--- p.7

“만약 다리가 다리의 역할을 그만뒀다면….”
갑자기 아까 옥상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남학생이 심각한 분위기로 난간 앞에 서 있었다. 그 장면과 카프카 소설의 결말이 겹쳐 보였다.
다리 위에서 점프한 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다리는 몸을 뒤집는다. 난간에서 몸을 던진 청년. 두 모습이 머릿속에서 겹쳐진다.
볼 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던 광경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진상에 도달한 얼굴이네. 수수께끼를 낸 나는 아직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정답에 도달하다니 이거야말로 부조리네.”
--- p.55

“피는 대량으로 흘리게 되지만 좀처럼 죽지는 않으니까 죄인에게는 꽤 큰 고통이었을 거야. 하지만 이런 고문 기구에 합리성이 있을까? 단순히 괴롭히는 게 목적이라면 묶어놓고 나이프로 조금씩 상처를 주기만 해도 돼. 그럼에도 온갖 고통을 주기 위한 기구를 개발한 이유는 쾌락의 영역에 있지 않았을까.”
“쾌락이라.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람을 상처 주는 건 정신적으로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라 생각해. 그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개발된 게 아닐까. 그리고 정해진 형벌을 줘야 하는 만큼 일정한 벌을 줘야 할 필연성이 있지 않았을까?”
“물론 처음에는 그런 필연성이 있었겠지.”
“처음에는?”
--- p.90

그런데 야요이의 입에서 나온 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언니가 벌레가 됐더라고요.”
“응… 방금 뭐라고 했어?”
너무 뜬금없는 말이 들려올 때 인간의 뇌는 잘못 들었다고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그녀의 말을 정확하게 듣긴 했지만 그럴 리 없다고 뇌가 다시 물어보라 지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야요이는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언니가 벌레가 됐더라고요.”
“역시 그렇게 말한 게 맞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길가로 데려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봐. 언니한테서 무슨 부탁을 받았어?”
--- p.118

“진정해. 넌 나쁜 짓을 한 게 아냐. 하지만 스스로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는 일이 현실에는 존재해. 죄란 때론 자신의 인식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면이 있으니까. 어떤 나라에서는 V자 사인이 경멸의 의미인 경우도 있고, 어떤 나라에선 너구리를 개라고 불러. 각각의 장소마다 각각의 상식이 있어. 네가 살던 간사이 지방에서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던 행동이 이쪽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라면 오해가 생길 수 있지 않겠어?”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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