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거주하는 연기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빌리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 짐작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수많은 배우가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매기는 생계를 위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패트릭은 목수 일과 막노동을 했다. 부부는 자신들의 집 맞은편에 있는 집을 개조해서 팔아 조금의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빌리는 부모님이 하이랜드에 산 주택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방이 두 개 있는 아늑한 느낌의 1층짜리 주택이었는데, 다소 정신없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야말로 ‘집이다’ 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벽은 가족들이 그린 그림, 사진, 손으로 쓴 메모지들로 빼곡했다. 선반에는 책들이 잔뜩 꽂혀있었고
집안 곳곳에 악기가 굴러다녔다. 피아노는 총 세 대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패트릭이 인터넷을 뒤져 공짜로 얻어온 그랜드 피아노도 한 대 있었다.
--- p.14~15 「제1장 〈하이랜드파크에는 음악이 흐르고〉, ‘네 살 아이가 그려낸 블랙홀」 중에서
오빠와 홈스쿨링을 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단지 남매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단짝 친구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너무나도 끈끈한 관계이기에 고된 작곡 과정, 녹음, 투어 일정을 견뎌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한편 홈스쿨링을 했다고 해서 고립된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 LA에는 홈스쿨링이 유행이었고, 홈스쿨링을 하는 가족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친목을 다지고 서로를 지지했다. 정기 모임도 있었고, 아이들이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부모들은 요리, 바느질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다. 빌리는 엄마가 여는 작곡 수업을 들었다. 매기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작곡 입문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수업이 주를 이뤘다. 빌리는 열한 살 때부터 진지하게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세련된 곡들을 써내며 친구들과 주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 p.22 「제1장 〈하이랜드파크에는 음악이 흐르고〉, ‘홈스쿨링을 함께한 남매의 끈끈한 우정」 중에서
8월에 스포티파이가 공개한 세로 화면의 ‘유 슈드 시 미 인 어 크라운’ 뮤직비디오에서 빌리는 살아있는 거미가 기어 다니는 왕관을 쓰고 있다. 그중에는 타란툴라도 있는데, 손과 얼굴 위를 마구 기어 다닌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하다. 아직 기겁하지 않은 시청자를 위해 이보다 더한 장면들이 남아있다. 2분이 지나 후렴이 나오는 부분에서 빌리가 입을 벌리면 거대한 타란툴라가 그 안에서 기어 나온다. 이건 실제이며 절대 CG가 아니다. 심지어 만족할 만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찍었다고 한다. 빌리는 전혀 언짢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재미있는 촬영이었다고 후에 털어놓았다. “난 뭐가 잘못된 걸까요? 혹시 아는 사람?” 그 연기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자 빌리가 농담 투로 대답했다.
--- p.189~190 「제9장 〈모자를 벗고 왕관을 쓰다〉, ‘타란툴라를 입에 머금고」 중에서
‘배드 가이 bad guy’는 다른 곡들이 나오기 전부터 앨범 첫 트랙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이전 곡들에서 팝 천재의 씨앗을 보여줬다면, ‘배드 가이’는 만개한 꽃이라 할 수 있다. 피니어스의 프로듀싱은 간소하며 샘플링 및 전반적인 소리에 관련해 놀라운 장악력을 보여준다. 빌리의 목소리는 달콤함, 비아냥거림, 위협적인 태도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간단한 비트와 손가락 튕기는 소리로 보강된 워킹 베이스라인은 시작부터 강한 전염성을 풍기며 가사가 없음에도 따라부르기 좋은 후렴구로 이어진다.
‘베리 어 프렌드’의 성공 이후 피니어스는 그런 식으로 노래의 구조를 파괴하는 걸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이 곡에서 보컬이 빠진 후렴구를 넣은 것은 물론, 노래를 40초 남겨놓고 템포, 멜로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구간을 등장시키며 사실상 다른 곡으로 트랙을 마쳤다.
--- p.240 「제12장 〈남매가 준비한 열네 개의 예술작품〉, ‘만개한 꽃, 배드 가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