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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구름

붉은 구름

민금애 | 청어 | 2021년 09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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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96g | 153*224*13mm
ISBN13 9791158609689
ISBN10 11586096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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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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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불현듯 아내가 생각난다. 아내는 끈질기게 병진씨의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자나 깨나 아내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속이다. 잊을 수 없고 잊히지도 않는 부분. 팽개칠 수도 없고 몰두하기도 버거운 상태. 모른 체 하자니 가렵고 긁어대자니 아프고. 아주 많이 참기 어려운 가려움증, 사타구니 옆의 습진 같은 존재.
얼굴도 보지 않고 부모의 권함으로 만난 사람이지만 유난히 금실이 좋았다. 다소곳한 아내의 순종과 선함에 언제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매사에 양보하고 앙탈 한 번 부리지 않는 아내다. 나의 어디에 이런 복이 들어있나 하고 감사하고 살았다. 자식도 아들과 딸을 두 명씩 안겨준 아내다. 첫 번째 아들을 낳아 아들에 대한 갈증도 없었다. 비록 작지만 하던 일도 잘돼 돈 걱정도 없었다. 조용한 평화가 주변을 몇 년 맴돌았다. 하지만 복은 언제나 한도가 있었다. 네 남매를 남겨놓고 아내가 갑자기 병이 들었다. 병명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름시름 아내는 삼 년을 앓았다. 백약이 무효. 사랑도 정성도 무효. 아내는 사그라지면서 끈질기게 그에게 다짐했다. 행여 나 죽더라도 재혼하지 마세요. 세상에 미련을 많이 남기고 떠나면서 하는 넋두리라 여겨 주저하지 않고 약속했다. 그것은 마지막 가는 아내의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죽을 줄 알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못하고 버둥대는 아내가 측은했다. 인생에 아홉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을 증명하듯이 아내는 서른아홉에 세상을 버렸다. 죽기 싫다는 아내의 마지막 몸부림이 한순간 그를 괴롭혔다.
재혼하지 마세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아내가 힘겹게 뱉은 말이다. 알았어, 그러니 편히 눈 감아. 무엇이 그리 아내의 숨줄을 잡고 있었는지. 아내는 끝내 눈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가슴이 심히 아려왔다. 이 사람아, 자네 만나서 그래도 행복했네 하고 아내의 눈을 감겨주었다. 눈물 한 방울이 아내의 볼에 흘러내렸다. 그렇게 아내를 보냈다. 가는 사람은 언제나 미련, 생각 없이 훌쩍 떠난다. 남아 잊어야 하는 고통을 떠나는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갖고 가지 못할 바에 미련 버리고 가주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인명은 재천이고 불가항력이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어차피 모든 것을 전부 주지 않았다. 통계수명 80이라고 하느님은 공갈치지 말고 건강보장수명 80을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을. 그는 아내에게 약속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의 요구에 쉽게 응한 것이다. 어떤 새로운 인연이 다가와도 예전같이 기쁘지 못할 것 같다. 소박한 작은 행복에 너무나 감사하고 만족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옛말이 있다. 한 사람이 어디론가 떠나면 그 빈자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메울 수가 있을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고 나이 드신 어머니 대신 살림을 맡아줄 안주인이 필요하다. 죽은 사람은 어차피 잊힌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내는 조금씩 잊히기 시작했다. 아내의 삼년상을 지내고 재혼을 결심했다. 성실하게 살아왔기에 재혼은 주위 사람들에 의해 쉽게 성사되었다. 초혼에 실패한 후덕한 여자다. 말이 적은 것이 조금 불만이지만 모든 것에 감사할 상대다. 건강하고 오로지 살림해 줄 사람을 구했다. 늙은 어머니와 아이들을 돌봐주고 자기의 일상을 챙겨줄 사람을 고른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바랠 만큼 그는 뻔뻔하지 못했다. 그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았다.
간단한 예식을 올리고 새 아내를 맞이했다. 며칠 동안 흉몽에 시달렸다. 죽은 아내가 원망의 눈으로 나타난 것이다. 때론 눈물로, 원망으로 자신을 옥죄인다. 그러나 생각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죽은 사람은 잊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고 주위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아내 자체도 잊히기 시작했고. 전 장모도 그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권한 것이다. 홀아비 혼자 외손자들을 키우는 것을 보는 것이 더 괴롭다는 게 너무나 타당한 이유다. 그것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간 자식을 둔 부모의 간절한 속죄였다. 첫날 밤 술에 취해 깜빡 잠이 들었는데, 소복을 한 아내가 나타나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비록 소복을 했지만, 아내는 예쁘게 단장한 모습이다. 아내는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섬뜩했다. 새 아내와의 합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죽을 사람과의 약속은 파기할 수 없다. 아차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뿌리칠 수가 없었다. 생전의 어진 모습이 아니고 대단히 화가 난 모습이다. 여보, 이러지 마. 아내를 달랬으나 요지부동이다. 그날 밤 내내 아내에게 시달렸다. 온몸이 땀에 젖고 신음이 나왔다. 놀라 눈을 뜨니 새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저녁에 오한에 시달리던 새 아내에게 물수건을 얹어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설핏 잠이 들었다 악몽에 시달린 것이다. 미안함이 생겼으나 그 이상의 어떤 행위는 할 수 없었다. 죽은 아내의 원망 눈빛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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