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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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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468g | 152*225*20mm
ISBN13 9791191215199
ISBN10 1191215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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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경제학은 통일 후 북한의 산업입지를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지리경제학은 어떠한 경우 경제활동의 집중이 발생하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으며, 한번 경제적 집중이 발생하면 경로의존성에 의하여 지속되는 경향이 있음도 말하고 있다. 산업입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서 이보다 나은 이론은 아직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주변에서 지식을 권력과 재물의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소위 전문가들을 적잖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책중재미인(冊中在美人) 책중재부귀(冊中在富貴)” 식의 전근대적 학문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옹호자를 자임하다가도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경영권의 편법승계를 정당화하는 경제학 교수나, 노동조합의 경제적 역할을 역설하지만 조직화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조건에는 입을 다무는 경제평론가는 모형에 기반하여 사고하는 훈련된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다. 이 책을 차분히 읽은 독자들이 난무하는 경제논설의 옥석을 구분하는 기준을 얻게 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상식이 통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따르는 건전한 사회를 여는 데 밑받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에서 지리경제학을 정책의 원리로 내세운 대표적인 사례가 참여 정부의 클러스터론이다. 대학, 공장 및 기관을 클러스터로 묶어서 수확체증의 환경을 만들고 그 결과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클러스터 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전국 방방곡곡은 온갖 유형의 클러스터로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산업에 영감을 줄 만한 인재가 모여 있는 대학은 찾기 어려웠고, 수도권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증가한 곳이 드물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론을 도식적으로 적용한 결과는, 안타깝게도 수용된 용지에 만들어진 텅 빈 공단과 풀린 자금으로 발생한 수도권의 주택가격 급등이었다.

지리경제학은 한국의 산업입지 정책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한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산업입지 정책의 근간은 정부에 의한 산업단지의 조성이었다. 하지만 산업단지의 입지 결정 과정을 보면, 과연 왜 그렇게 하였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곳도 적지 않다. 게다가 적지 않은 산업단지들이 유력한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에 의하여 조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한 결정들은 지리경제학이 주장하듯이 경로의존성으로 인하여 경제활동의 분포에 조성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영남지방의 산업 집중은 식민지 시대 일본과의 인접성 내지는 일본의 입장에서, 결국은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분단되고 중국과의 교역이 단절된 해방 이후 한국 전체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바람직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들어선 정권은 이를 확대하도록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수송체계를 심화시킴으로써 경로의존성이 유지되었다. 이는 영남과 호남 간의 과도한 경제활동의 격차로 드러났다. 영남권에 한번 형성된 경제적 집중은 그 이후 호남권에 도로와 철도 등 수송망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는 비단 경제 문제일 뿐 아니라 정치 갈등의 요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 사회에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켜왔다.

지리경제학은 수송망 체계 건설에 있어서 합리적 기준을 제공한다. 최근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대구권과 부산권의 갈등은 수송망 체계의 확보와 그에 따른 수송비 절감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공항 입지의 선택조차 합리적 기준이 없을 경우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공항 건설에 따른 개별 지역 수준의 비용편익 분석만으로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상충을 제대로 조정하기 어렵다. 이보다는 국민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이러한 수송망의 건설이 경제활동의 분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그 결과 초래될 경제활동의 집중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크루그먼은 전통적 국제경제학이 공간을 무시함으로써 분석 대상인 국가를 무차원의 점으로 간주한다고 비판한다. 국제경제학이 공간을 무시하는 일은 통상적으로 규모에 대한 수확불변과 그에 따른 완전경쟁 시장을 가정하는 것과 관련이 깊으며, 이를 벗어나려면 공간 간의 차별성을 전제로 한 수확체증과 그에 따른 불완전경쟁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경제활동의 분포(지리)에서 드러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특정 지역에 경제활동이 집중되는 것인데, 이는 그만큼 그 지역에 수확체증이 만연한 데 따른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은 유럽연합의 출범에 즈음하여 유럽의 주변부가 맞이한 냉정한 현실을 설명하고 장기적 전개와 발전에 대하여 전망한다. 2017년은 흔히 유럽연합의 모태라고 부르는 로마조약이 1957년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영국의 이탈로 분열 위기를 맞은 유럽연합의 현실을 20여 년 전에 예견한 크루그먼의 예리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경제활동의 지리학(geography of economic activity)에서 가장 현저한 특징은 무엇인가? 간략히 말하면 집중이다. 미국을 생각해보자. 이 방대하고 비옥한 땅에서 대부분 인구는 대서양 해안과 오대호 유역에 살고 있다. 이러한 벨트 안에서 사람들은 한 줌에 불과한 상대적으로 조밀하게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이 도시 지역은 고도로 특화되어 있으며 그 결과 다수 산업의 생산은 공간적으로 현저하게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생산의 지리적 집중은 일종의 수확체증의 영향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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