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서유기』 이야기는 무려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627년 당나라의 승려 현장이 당시 출국금지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오로지 불심 하나로 척박한 중앙아시아를 넘어서 인도까지 다녀온 이야기는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아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처럼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에도 그들 나름의 미디어는 존재했다. 『서유기』가 소설의 형태로만 존재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서유기』는 저잣거리의 이야기꾼과 포교하는 승려들의 단골 소재로 활용되었고, 연극의 형태로도 무대에 올려졌으며,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 서유기』는 중국의 멀티유즈 콘텐츠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유기』 이야기가 비단 중국에서만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고려 시대에 소설 『서유기』가 들어와 읽혔다는 기록이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보이고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이미 유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도 오래전부터 유행했던 것을 보면 『서유기』 이야기는 고대의 동양 세계를 매료시킨 보물 같은 자산이었다.
『서유기』를 처음 읽을 때에는 내용이 다소 거칠고 속되어서 B급 이야기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유기』를 탐독하다 보면 그 안에서 모자란 주인공들이 요마들과 싸워 이기고 고난을 극복해나가며 자아를 완성해가는 감동의 성장 서사를 만나게 된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기상천외한 요마들, 현란한 법술과 신기한 무기들은 서구의 판타지를 대표하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와는 다른 독특한 동양적인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중략)
『서유기』는 이야기 자체로도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그것이 문화콘텐츠와 연결되었을 때의 잠재력과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중국은 21세기에 들어서서 자국의 전통문화를 콘텐츠로 개발하여 국가의 대표적인 소프트 파워로 육성시킬 다양한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2017년 1월에 중국 정부는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전승,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시함에 관한 의견(關于實施中華優秀傳統文化傳承發展工程的意見)」을 발표하여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화의 전통문화를 개발하고 소설, 출판,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선전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이라는 지정학적인 공간에서 전통문화는 단순히 전통의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그것이 중국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고 선전과 교육의 도구가 될 때 전통문화는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세련된 정치적인 무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소설 『서유기』를 통하여 고전 서사의 문화콘텐츠로의 변용의 가능성을 모색함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전통문화가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만날 때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시각의 단초를 열어주고자 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명대 소설 『서유기』에는 사실 두 개의 이야기 갈래가 존재한다. 우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용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거룩한 취경 이야기가 있다. 천축으로의 험난한 수행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은 취경의 목적을 완수할 뿐 아니라 득도의 이상 또한 실현한다. 그런데 이 상식적인 이야기 말고 『서유기』에는 이면의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우선 삼장법사의 몸을 먹음으로써 영생을 획득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요괴들의 불사를 위한 숙명적인 투쟁의 이야기가 있다. 『서유기』에서 요괴들은 제거되어야 할 방해물로만 보이지만 사실 삼장 일행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하고 중요한 존재들이다. 또 한 가지 『서유기』에 감춰진 이면의 이야기는 신, 신선, 왕과 같은 신성한 존재들의 어린아이 고기에 대한 집착에 관한 것이다. 요괴들과 신성한 존재들의 인육에 대한 욕망은 『서유기』 전편에 걸쳐 강렬하게 때로는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서유기』 속 식인의 주체와 대상물에 대해 살펴보고, 나아가 『서유기』 에 나타난 식인을 신화, 종교, 문화의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함으로써 내재된 함의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 pp.49-50
『서유기』는 중국의 명대(明代)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오늘날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서구에서도 중요한 콘텐츠로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대중문화에서 『서유기』에 대한 현대적인 각색은 1960년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고, 최근에 와서는 『서유기』의 본산지인 중국에서도 TV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활발하게 각색되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은 최근 문화산업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차별적인, 작품성과 영상기술에 있어서도 뛰어난 『서유기』와 관련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 p.211
대중에게 고전의 지혜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지점에서 재미를 느끼는가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현대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읽힐 수 있는 고전을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원형으로서 『서유기』의 특징을 재고하고 콘텐츠로서의 가치와 활용 방법을 연구하는 작업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서유기』는 중국의 신화적인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고, 기성의 질서를 전복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반항정신을 표현한다. 또한 인간의 식, 색, 영생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하여 오늘날에도 중국뿐 아니라 세계인의 보편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