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런 추진력과 유연성은 학문의 깊이와 폭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소설에 나타난 유토피아 연구〉였다. 우리 문학 속에 깃든 화해와 공존을 향한 의지와 그 형상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이어서 『위기의 시대와 문학』, 『문학의 숲과 나무』 등 문학과 시대의식의 관계를 천착한 주목할 만한 평론집을 상재했다. 시골에 사는 내게 책을 꼬박꼬박 보내주는데, 그의 책을 받을 때마다 나는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내가 알기로도 그는 신실한 종교인이면서, 남북이산가족 찾기에 앞장서서 일을 추진하고 또 《문학사상》이나 《문학수첩》 등 몇 개의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도 빈틈없이 해낸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형편이다. 그런데 언제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쓰는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내 추측이 맞다면 남보다 잠을 적게 잔다는 것일게다. 그렇다. 그는 다른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부지런한 사람이다 .
내가 주목하고 또 늘 부러웠던 것은 성과 문학에 관한 본격적인 텍스트인 『문학으로 보는 성』과 북한 사회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북한 문학의 실태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북한 문학의 이해 1, 2』, 최근의 관심사인 『사이버문학의 이해』 등 중요한 쟁점을 엮어낸 그의 감각이다. 앞의 두 가지 주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 편견과 왜곡으로 인해 조화로운 삶을 저해하거나, 민족적인 차원에서 비틀린 삶을 강요했던 문제들이란 점에서 그의 문학적 지향점과 일치한다. 나아가 최근 무섭게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징후들을 정확히 짚어가면서 유토피아를 향한 꿈과 의지를 실현해가고 있다. 『사이버문학의 이해』라는 편저에서 보여지듯, 섬세하고 예리한 촉수로 우리시대의 문화를 진단하는 그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이런 탐색이 특유의 추진력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
존경할 만한 친구와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의 경우 마음까지 의지할 수 있으니 복도 많은 셈이다. 한편, 그의 부지런함과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흠모하면서도 시기하고 있다는 것 또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pp.115-116
모든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읽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모든 독서는 오독(誤讀)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비평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라고도 한다. 이때의 오독이 단순히 텍스트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평면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의(語義)를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작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사유의 광맥을 찾아낼 때 새로운 창의력이 발양될 수 있다. ‘창조적 오독’이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말한다.
『존재와 무』를 쓴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포스트모던 시대의 자크 데리다에이르기까지 서구의 사상가들이, 하이데거의 대표적인 저서 『존재와 시간』을 오독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적인 사상과 철학을 키운 사례가 예증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입체적 사고와 사상의 풍요가 작자의 본의를 무시할 수 있는 무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오독이 갖는 창조적 성격의 자유로움 또는 즐거움이, 자칫 원본의 의미를 훼파하고 넘어서 독선적 결론에 이를 가능성을 경계해야 옳다.
이 양자 간의 영역에 걸쳐져 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독서, 곧 오독의 역사가 있었기에,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었고 거기에 새로운 창조의 정신을 담을 수 있었다. 필자와 같이 일생 문학 비평에 뜻을 두고 독서와 글쓰기를 수행해 온 비평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려하는 바는, 내 비평의 안목이나 기량이 창조적 오독에 이르지 못하고 그야말로 평범한 오독에 그치고 말지나 않을까 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논의에 비추어 볼 때, 이 산문집은 이를테면 내 문학에 있어서 오독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의 화법으로 드러낸 고백록이다. 항차 문학에 국한해서만 그러할까. 지천명(知天命)의 중반을 넘어 이순(耳順)으로 이르는 세월의 고갯마루에서, 그윽이 바라보이는 내 삶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륜의 미흡이 글의 행간 곳곳에 배어 있으니, 글이 곧 그 사람(文如其人)이라는 옛 말에 어김이 없다.
--- pp.214-215
김윤식 선생을 회고하면서 필자의 문학 인생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여러 부면에서 선생과의 접점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평론가로서 지금까지 10권의 평론집을 내고 8개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는 동안, 선생은 두 문학상의 심사위원이었다. 선생은 학문과 비평이 부족한 필자를 두고 항상 한국문학, 북한문학, 해외동포문학에 두루 걸친 연구자요 비평가라는 상찬(賞讚)을 아끼지 않았다 하니 그 또한 지울 수 없는 고마움이요 마음의 빚이다. 필자는 40대 중반부터 해외 한인문학,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여 참 많이도 미주 한인문학, 일본 조선인문학, 중국 조선족문학,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선생은 눈에 보일 때나 안 보일 때나 그 작업이 뜻이 깊다고 격려하고 의욕과 용기를 더하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미주한국문인협회 강연 차 출국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조교 편에 편지를 하나 보내왔다. 봉함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왕유의 오언고시 이별시 「송별(送別)」이 얇은 편지지에 자필로 적혀 있고, 말미에 ‘가는 도중 주막에 들리거든 목이나 축이시오’란 전언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노잣돈’ 100달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선생이 어디 이런 데 세세히 신경을 쓰는 분이던가. 필자는 감격으로 목이 메었고, 돌아오는 길에 선생이 드시지도 않는 양주 한 병을 사 들고 왔다. 참 모자라고 바보 같은 응대가 아닐 수 없었다.
--- pp.303-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