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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여자

해적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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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99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4662004
ISBN10 897466200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질금은 어찌할지 그게 궁금한 거 아닙니까,미례 아씨?

-그렇지 않아요.

-하기는...

-하기는? 왜요,소솜?

-그 점에 관해서라면 미례 아씨가 염려할 필요 없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미례 아씨가 호수에 빠지던 날의 이질금을 생각하면 ...이질금은 어찌할 지 불을 보듯 명확하니...

-그날...그 사람이 어찌 했는데요?

-음,다른 사람이 만류할 겨를도 없이 물로 뛰어드셨잖습니까.굳이 이질금이 그리 하지 않아도 다른 이가 구하러 갈 수 있었는데.그 새를 못 참을 만큼 다급한 표정이더이다.

그가? 그날 미례가 본 그의 얼굴은 염려한다기보다는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나중에 그녀에게 남긴 말도 다시는 집밖에 나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 p.309pp.1-14
이제껏 그들의 눈길을 참아왔던 미례가 용기를 내어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입을 열자 웃음기 묻어나던 그들의 얼굴색이 변하며 눈이 커졌다. 이내 그들의 시선이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미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장으로 보이는 그 사내는 다만 눈썹을 치켜올렸을 뿐이었다.

'난 노예 신분이 아니에요.'

미례는 그에게 확인시키듯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했다. 그의 눈및에서 미례는 이미 그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 귀족처럼 보이긴 해. 서역 옷을 갖고 있는 걸 보면 가락국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제법 호기가 있는걸, 계집 주제에.'

한바탕의 수군거림이 지나가자 미례는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크고 맑은 눈으로 이질금이라는 사내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난 노예가 아니에요.'

'처음부터 노예였던 사람은 없어. 노예이고 싶은 사람도 없지. 하지만 곧 받아들이게 될 거야.'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가야의 귀족이에요. 내 아버지는 당신들에게 노예상인보다 더 낳은 재물을 주실 수 있어요.'

'호오, 그래? 얼마나?'

'거봐, 저 계집이 가락국 계집을 거라고 했잖아.'

사내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하지만 젊은 사내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내 아버지에게 서신을 보내주세요. 난 곧 신라의 왕족과 혼인하게 될 몸이에요. 당신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날 풀어준다면 말예요.'
--- p.26-27
미례는 당황하며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급하게 물속으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앉아 있던 곳까지 얼음이 깨지더니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감각을 무디게 하는 차가운 물이 그녀의 옷자락으로 스며들며 몸을 가라앉혔다. 마치 밑에서 누군가가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는 듯했다. 순간 아이를 구하겠다는 생각이나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아이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혀졌다.그녀 자신도 발이 닿지 않는 얼음물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현실! 물에 잠긴 몸이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미례는 아이가 했던 것처럼 수면의 얼음판에 손을 댄 채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에 저항하려 애썼다. 물속으로 잠겨드는 옷자락은 순식간에 그녀를 얽어매는 그물이 되어 점점 더 무거운 추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물속으로 가라앉는 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따뜻하고 든든한 누군가의 강인한 손에 의해 물밖으로 끌어내졌다. 사람의 체온이 이처럼 뜨거울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생각하면서 미례는 오들오들 떨며 시선을 들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경휘였다. 안도한 그녀의 시선에 어느새 달여온 몇몇의 사내들과 여인들이 들어왔다.
--- pp.279-280
그는 마음속으로 미례와 사마월을 비교하고 있었다. 사마월은 처음의 당돌한 첫인상을 넘기고 나니 애교 넘치는 귀여운 여인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녀는 미례처럼 대하기 어려운 벽을 만들지 않았고 그에게 냉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관심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다.

그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을 밀어두고 있었다. 고구려에 살아 있다는 어머니,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료허를 지키는 아버지, 화평도방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일, 거기에 미례까지.

화평도의 안주인을 맞는다면, 다른 여자라면 모랄도 사마월은 아마 미례를 곱게 봐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례를 떨구어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는 그녀를 향한 갈망을 접지 못한 상태였다. 1년여가 넘도록 함께 살면서도 그녀에 대한 욕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 p.310
"그건 그런게 아니오. 운제 아씨는 ...... 여인네들 중 어떤 이는 산후에 안으로만 침잠하고 눈물로만 세월을 보내는 병을 얻기도 하오. 그건 운제 아씨만의 잘못은 아니라오. 운제 아씨는 낯선타국에 와서 더 병이 깊었던 것 뿐이오."

"그런 아이를 가진다면 미례도 그럴수 있다는 얘긴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질문을 퉁명스레 물었다. 새타니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내 그토록 미례아씨에게 다정히 대하라 이른게요. 운제 아씨는 전대 이질금이 그리 아꼈어도 눈물로 세월을 보냈는데, 이질금은 힘으로만 미례 아씨를 휘어잡으려 하는 게 못내 걱정스러워서...... 더구나 원해서 이곳에 남은 것도 아니지 않소."
"미례도 그런 병에 걸릴 수 있냐고 물었네."
"그렇진 않을 게요."
"장담할 수 있나?"
그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미례 아씨에게는 정이 있소. 하긴 이질금 하기 나름이지만......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교향을 그리는 마음보다 앞서게 하면 되지 않겠소?"
"나 하기 나름이라고? 아니, 난 내 아버지와 달라. 혹 어머니처럼 물로 뛰어든다 해도 난 아버지처럼 자식을 버린 채 떠나라고는 결정하지 않아. 차라리 내 앞에서 죽는 꼴을 보는게 낫지."
그래, 죽어없어지면 그때는 가슴에 묻기라도 하지. 떠나보내고 어찌 살아가는지 그런 걸 염려하며 살진 않겠어!절대!
"그건 그런게 아니오. 운제 아씨는 ...... 여인네들 중 어떤 이는 산후에 안으로만 침잠하고 눈물로만 세월을 보내는 병을 얻기도 하오. 그건 운제 아씨만의 잘못은 아니라오. 운제 아씨는 낯선타국에 와서 더 병이 깊었던 것 뿐이오."

"그런 아이를 가진다면 미례도 그럴수 있다는 얘긴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질문을 퉁명스레 물었다. 새타니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내 그토록 미례아씨에게 다정히 대하라 이른게요. 운제 아씨는 전대 이질금이 그리 아꼈어도 눈물로 세월을 보냈는데, 이질금은 힘으로만 미례 아씨를 휘어잡으려 하는 게 못내 걱정스러워서...... 더구나 원해서 이곳에 남은 것도 아니지 않소."
"미례도 그런 병에 걸릴 수 있냐고 물었네."
"그렇진 않을 게요."
"장담할 수 있나?"
그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미례 아씨에게는 정이 있소. 하긴 이질금 하기 나름이지만......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교향을 그리는 마음보다 앞서게 하면 되지 않겠소?"
"나 하기 나름이라고? 아니, 난 내 아버지와 달라. 혹 어머니처럼 물로 뛰어든다 해도 난 아버지처럼 자식을 버린 채 떠나라고는 결정하지 않아. 차라리 내 앞에서 죽는 꼴을 보는게 낫지."
그래, 죽어없어지면 그때는 가슴에 묻기라도 하지. 떠나보내고 어찌 살아가는지 그런 걸 염려하며 살진 않겠어!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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