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론과 관념론은 물질, 생명, 정신으로 이루어진 인간과 우주의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마르크스의 물질론적 변증법에 따르면 사회의 하부구조인 물질적 생산력이 발달하면 생산관계가 변화하고 생산관계가 변화하면 상부구조인 인간의 의식과 정신, 관계와 제도도 변화하고 발전해간다. 물질적 생산력의 발달은 기존의 생산관계 및 상부구조와 모순 대립하게 되고 결국 생산관계와 상부구조의 변화와 발달을 가져온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고 교묘하게 설명을 해도 물질론적 변증법에 의한 변화와 발전은 물질론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아무리 변화하고 발전해도 물질의 변화와 발전은 생명과 정신의 질적 초월적 변화를 위한 조건과 환경, 계기와 발판은 될 수 있어도 물질의 변화와 발전 자체가 생명과 정신의 질적 초월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도 관념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비물질적인 관념과 정신의 변증법적 변화는 물질적 현실과 몸을 가진 생명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든 관념론은 구체적이고 특별하고 다양한 생명의 주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드러내지도 못한다. 관념론은 물질에 이르지 못하고 물질론은 관념에 이르지 못한다. 물질론과 관념론은 인식주체인 이성과 인식대상인 물질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편향적이고 일방적인 설명체계일 뿐이다.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하여 의식과 정신에 이른 것이고, 인간의 생명은 의식과 정신을 넘어서 얼과 뜻, 영혼과 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한 생명은 시공간적 제약과 구체성을 가지면서도 시공간적 제약과 속박을 초월하여 자신을 형성하고 심화 발전시켜가는 존재다. 생의 주체성, 전체성, 창조성은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하는 것이며, 시공간적 현실성과 구체성 속에서 시공간적 제약과 속박을 넘어서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고 완성해간다. 생명체는 몸과 의식이 통일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존재다. 인간은 몸, 맘, 얼이 통일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주체적인 존재다. 인간과 우주의 세계는 물질과 생명과 영(정신, 얼)의 세 겹과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과 생명, 인간과 우주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관계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물질과 생명과 인간과 우주의 존재를 그 자체로부터 그리고 그것들의 상호주체적 관계와 변화발전의 역사적 과정에 비추어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 물질론과 관념론은 물질과 생명, 인간과 우주의 통합적 존재와 관계, 주체적 변화과정과 지향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전혀 적합하지 않다.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이 아닌 의식과 정신에 이른 생명은 물질과 의식을 통합한 것이다. 생명은 스스로 하는 주체이며 물질과 의식을 통합한 통일적 전체다. 생명은 주체와 전체의 통일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 발전해가는 것이다. 물질론과 관념론은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그것들은 물질과 생명과 정신과 신의 관계와 변화, 의미와 가치, 목적과 방향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1장_ 이성의 철학에서 생명철학으로」중에서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잃자 도산은 1906년 말에 미국에서 ‘대한신민회취지서’(大韓新民會趣旨書)를 쓰고 한국에 돌아와서 신민회를 조직하고 민을 깨워 일으키는 교육독립운동을 벌이고 새로운 나라를 이루기 위한 혁신운동을 시작했다. ‘대한신민회취지서’를 보면 도산의 기본적인 사상과 철학이 이미 확립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민족의 독립과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실천적인 구상과 방안이 마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산은 신민회의 목적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신민회의 목적은 “대한의 부패한 사상과 관습을 혁신하여 국민을 유신케 하며 쇠퇴한 교육과 산업을 개량하여 사업을 유신케 하며 유신한 국민이 통일 연합하여 유신한 자유문명국을 성립케 함”이다.
그 방법은 “… 신문 잡지 및 서적을 간행하여 인민의 지식을 계발케 할 일, 정미(精美)한 학교를 건설하여 인재를 양성할 일, … 합자로 실업장을 설립하여 실업계의 모범을 만들 일…”이다. 한국의 부패한 사상과 관습을 혁신하여 국민을 새롭게 하고 새롭게 한 국민이 통일 연합하여 새로운 자유문명국을 이루는 것이 도산의 사상과 실천을 관통하는 기본 내용이었다.
이 글에서 도산은 먼저 나라를 잃고 망하게 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진단하였다. 한국 사회가 낡은 습관에 매어 있으며 거짓말과 허위로 가득 차 있고 공론공담과 당파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도산은 한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한국 사회는 약자를 압제하고 강자에게 의뢰하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사회라고 보았다. 한국 사회는 약자에게는 거만하고 강자에게는 굽실거리는 노예성질과 사대주의로 오염된 사회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자유 문명국이 되려면 정치사회문화 교육도덕의 모든 분야를 쇄신해야 한다. 민의 새 정신을 일깨워 새 단체를 만들고 나아가 새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유신(維新)이다. 유신은 “심장을 토하고 피를 말려서 실행할 일”이다. 하늘의 도가 새로워지고 인간의 일을 새롭게 하는 유신의 시작과 끝은 민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도산은 ‘나-민’(我 民)이라는 말을 거듭 되풀이하면서 ‘나 민’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나 민이 새롭지 않으면 누가 나의 대한을 사랑하고 나 민이 새롭지 않으면 누가 나의 대한을 보호하겠는가.” 도산이 ‘나-민’(我 民)이라는 말을 쓴 것은 민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만 보지 않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체적인 ‘나’의 관점과 자리에서 본 것을 의미한다. 그는 국민, 민중을 ‘나’(我)로 보았다. 그는 ‘나-민’을 새롭게 하고 민족사회의 온갖 낡은 습관과 버릇을 고치고 정신문화와 제도, 사상과 의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심장을 토하고 피를 말려가면서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가시밭길 험한 길에도 나아갈 뿐 물러섬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에게 민의 ‘나’는 나의 심장을 토하고 피를 말려서 새롭게 해야 할 나 자신이다.
---「3장_ 도산철학의 탄생과 형성」중에서
안창호가 말한 인격개조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나의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고정불변의 본성을 논하지 않았으며, 관념적 이성과 이념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을 말하지도 않았다. 안창호에게 중요한 것은 능력 없는 인간이 능력 있는 인간으로 되는 것이었다. 능력 있는 인간이 되어 역사와 사회의 주인과 주체로서 할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안창호는 힘의 성격과 종류를 말했다. 기본적으로 힘은 인간 개인의 구체적이고 주체적 능력이다. 그래서 그는 개인의 인격이 덕과 체와 지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길러야 한다고 보았다. 개인의 인격적 힘에서 시작했지만 고립된 개인의 힘은 약하므로 더 큰 힘에 이르기 위해서 조직되고 단결된 집단과 민족의 통일된 힘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에서 힘이 나온다고 하였다. 그는 개인의 건전한 인격을 기르기 위해서 삼대육(덕력 ? 체력 ? 지력의 양성)과 사대정신(務實 ? 力行 ? 忠義 ? 勇敢)을 강조했다. 그리고 개인의 건전한 인격을 넘어서 조직과 단체의 공고한 단결을 강조하기 위해서 ‘신성단결’을 말했다. 건전한 인격과 공고한 단결은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아직 주관적이고 주체적이다. 이 힘이 사회와 역사에서 큰일을 이루려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힘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6장_ 과학적 합리성과 무실역행의 철학」중에서
생의 주체인 ‘나’가 곧 존재 이유와 목적이고 가치와 의미다. 생의 이유와 목적, 의미와 보람을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다만 물질과 관념에 사로잡힌 ‘나’에서 참된 생명의 ‘나’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물질과 관념에 사로잡힌 나는 타성에 젖은 거짓 나, 게으른 나이며 물질과 관념을 초월한 참된 생의 나는 자유롭고 기쁘고 창조적인 나다. 존재와 활동의 원인과 결과를 밖에 가진 물질세계는 타자에 대하여 닫혀져 있다. 그러나 물질세계를 초월하여 자기 안에 기쁨과 자유, 사랑과 희망을 가진 생의 주체는 타자에 대하여 무한히 열려 있으며 타자를 또 다른 나(주체)로서 그리워한다. 생의 주체는 타자와 서로 주체로서 기쁨과 사랑 속에서 새로워지고, 더 나아지려는 바람과 희망 속에서 사귐을 가지고 협동하려고 한다.
이런 생명의 본질과 특징에 비추어볼 때 통일과 평화의 첫째 철학원리는 ‘나’(주체)의 원리다. 생명의 중심과 주체는 ‘나’다.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은 ‘나’ 주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물질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밖의 타자에게서 오므로 물질적 존재와 활동의 조건은 외부의 타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생명의 세계에서는 생명의 주체인 ‘나’ 안에 존재와 활동의 이유와 목적, 힘과 가치가 있다. 근본적으로 생명은 나에서 시작하여 나에게 돌아간다. 타자에 의존하거나 타자와의 만남과 관계에서 나를 찾거나 발견하고 확립하려는 것은 생명을 물질적 법칙과 환경적 조건에 가두고 그 법칙과 조건 속에서만 생의 주체를 보려는 것이다.
---「7장_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길」중에서
안창호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과 평화에 이르는 길을 열고 그 길로 나아간 사람이었다. 그가 개척하고 걸어갔던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안창호가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의 사상과 실천의 원칙들에 비추어 보면 그가 걸어갔던 평화와 통일의 길이 보다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안창호가 제시한 사상과 실천의 원칙들은 앞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대로 공사병립, 활사개공, 대공정신, 애기애타, 무실역행, 충의용감이다.
앞의 공사병립, 활사개공, 대공정신은 국가의 양면을 이루는 공과 사의 구분과 통합과 실현에 대한 원칙과 방법이다. 이것은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통합 일치시키며 창조적 진화와 초월적 고양을 이루어가는 생명철학적 원칙들이다. 뒤의 애기애타, 무실역행, 충의용감은 공과 사를 통합하고 실현해가는 마음가짐과 지침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해 애기애타, 무실역행, 충의용감은 공사병립, 활사개공, 대공정신을 실천하는 주체적인 원리다. 이 여섯 가지 원칙이 민족의 독립과 통일과 평화를 지향하는 도산의 사상과 실천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틀이다.
---「7장_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