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종식의 요구는 통상적으로 필요와 수요를 구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은 먹을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가난해서 먹을거리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먹을거리 부족, 기아, 기술적 해결책에 대한 서사에서 쉽게 놓치고 있는 모순이 바로 기아를 겪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부라는 사실이다.
--- p.14
“무엇이 우리가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농경학과 먹을거리 생산의 생태학뿐만 아니라 먹을거리의 정치경제학 ― 즉, 전체 먹을거리 체계(농장에서 식탁까지)에서 자원, 가치, 권력이 배분되는 방식 ― 도 다룬다.
--- p.16
어떻게 너무 많은 먹을거리가 기아를 야기할 수 있는가? 이 수수께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생산과정 모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업적 농부들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먹을거리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장에서 판매할 먹을거리를 생산하며, 그들은 시장에서 다른 먹을거리 생산자들과 경쟁한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가장 많은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대부분의 시장 권력 ― 시장을 범람시켜 다른 생산자들을 몰아내는 힘 ― 을 가질 것이다. 세계 먹을거리의 대부분을 실제로 재배하는 소규모 자급 농부들은 파산과 함께 자주 기아에 빠지고 만다.
--- p.20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의 기본 경향 ― 과잉생산, 자본의 집중, 지속적 팽창 ― 은 경쟁의 결과이다. 기업들은 경쟁하면서 생산을 강화하고 단위 비용을 낮춘다. 이것은 가격을 낮추어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경쟁을 끌어내고, 이는 시장이 포화될 때까지 더 많은 생산을 유도한다. 먹을거리 가격 위기로 이어지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먹을거리 가격 하락은 계속되는 먹을거리의 과잉공급을 반영한다.
--- p.32
이것은 상업적 농부들이 직면한 재정 불안정을 ― 그리고 왜 과잉생산과 팽창 경향이 자본주의 농업에서 특히 격심한지를 ― 설명해 준다. 보조금, 작물보험, 상품 선물거래, 수출 인센티브는 농부들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농업의 상품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러한 수단들 ― 그리고 바이오 연료 붐과 같은 이따금의 횡재 ― 이 농부들로 하여금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낮은 가격의 폭풍을 간신히 버텨나가게 한다.
--- p.35
녹색혁명의 사회적·환경적 약점은 그간 널리 증명되어 왔다. 그러한 약점들로는 농촌 소득의 불평등 증가, 토지와 자원의 집중, 해충 문제의 증가, 농업 생물다양성의 상실, 농장 노동자의 대량 중독, 토양염류화, 대수층의 고갈과 오염, 연약한 열대 토양의 침식 등을 들 수 있다.
--- p.38
새로운 유전공학 녹색혁명을 추진하는 것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진술되지 않은 아이러니는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재정적 필요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 p.40
이것은 또한 정부와 산업계로 하여금 세계 기아와 영양부족의 원인을 토지개혁, 농업생태적 경작방식의 장려, 시장개혁, 생활임금 같은 구조적 조치보다는 기술적 해결책에 의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로 재조명하게 함으로써 기아와 영양부족 문제를 탈정치화할 수 있게 해준다.
--- p.45
산업적 농업의 기후-스마트 도구상자 속 어디에서도 고기 산업 ― 농업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염되고 가장 건강에 좋지 않고 가장 많은 탄소를 토해내는 부문 ― 에 대한 그 어떤 대안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모든 부문은 곡물-오일시드-축산 복합체가 초래한 환경 황폐화를 완화하고 조정하기 위해 토양, 물, 생물다양성을 보존할 것을 권고받고 있다. 곡물과 콩을 먹은 고기가 증가해 온 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불가피한 결과로 가정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문을 제기받아야만 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발전이다.
--- pp.81~82
플랜테이션이나 거대한 농장에서 밀집가축사육시설, 계약 경작, 단일경작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그리고 자신들의 경제적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먹을거리 체계를 재구조화하는 관행을 이용하여 이미 높은 산출량을 생산하고 있는 소규모 농업생태적 농장이 우리가 바라는 것인가?
--- p.96
두 번째 편지가 25년 후에 같은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세계 지도자들의 청각장애에 대한 걱정스러운 성찰 그 이상의 것이다. 그 편지는 전례 없는 부에도 불구하고 빈곤과 기아를 종식시킬 수 없고 자신의 엄청난 집합적 권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통제할 수 없는 정치-경제체계에 대한 고발장이다. 자본주의는 지구로 하여금 지구가 지닌 인간 수용 능력 너머로까지 나아가게 하고 있다.
--- p.100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는 서서히 움직이는 재앙이지, 고장 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가 작동하기로 되어 있는 대로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확장하며 소수의 강력한 독점체에 부를 집중시키면서도, 모든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사회에 전가한다. 그러한 비용은 불공평하게도 가장 취약하고 착취당하는 여성, 빈민, 토착민, 유색인종, 노동계급, 농촌 지역사회가 부담한다.
--- p.102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의 문제는 인구과잉이 아니다. 인구 증가는 정체되었다. 문제는 지역사회가 너무나도 가난해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살 수 없다는 유령에 있다. 세계 인구에게 문제는 먹을거리 부족이 아니라,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먹을거리 체계 자체이다. 유한한 세계에서 창조적인 파괴는 항상 위험한 주장이었다. 오늘날의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는 인간의 삶을 지원하는 지구의 능력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무제한적인 성장, 착취, 주기적인 금융위기에 의존하고 있고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 먹을거리 체계는 ‘고칠’ 수 없다. 그것은 변혁되어야만 한다.
--- p.103
농업생태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농업 개발기관들이 농업생태학을 지원하지 않는가? 간단하게 답하면, 그러한 기관들은 산업적 농업을 발전시키고 정교화하고 확산시키고 자본주의의 투자 기회를 확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농업생태학은 자본이 먹을거리 가치사슬의 상류 활동을 전유할 수 있는 길을 좁히기 때문에 자본주의 농업의 목적에 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