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하지만 아르센 뤼팽이라면? 아르센 뤼팽 앞에서 과연 대문짝이든 도개교든 벽이든 존재하기나 할까? 아르센 뤼팽이 한번 목표를 정했다면, 제아무리 기발한 장애물도 물샐틈없는 조심성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127쪽)
“한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소, 가니마르. 난 그녀를 사랑했지.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당신은 알고 있소? 다른 건 내게 전혀 중요치 않았소. 맹세하오. 그래서 지금 내가 이곳에 와 있는 거요.” (1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152쪽)
“보드뤼든 다른 누구든 되어본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오. 개성을 마치 셔츠를 갈아입듯 바꾸고, 외모와 목소리, 눈빛, 필체 따위를 맘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 말이오! 하지만 문득 그 모든 모습 가운데서 진짜 자기 자신을 못 알아볼 때가 있어요. 그땐 몹시 서글퍼진다오. 지금도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요.” (1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186쪽)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네! 한시도 위험의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지! 심지어 나는 보통 사람들이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위험을 호흡한다네. 시시각각 자신을 에워싸며 소리를 지르고 미행을 하며 때로는 와락 다가드는 위험의 징조를 간파해내지. 그러니 폭풍 한가운데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쉬우니까. 이에 비견될 수 있는 감정이라면, 뭐랄까……. 자동차 레이스를 하고 있는 운전사의 심정이랄까? 하지만 그것도 길어야 한나절이면 끝나지만, 나의 레이스는 평생을 이어지지.” (1권, 『뤼팽 대 홈스의 대결』, 466쪽)
빅투아르 : 네 머릿속에서 도둑질 생각을 말끔히 씻어줄 묘안이 하나 있긴 해……. 바로 사랑……! 사랑이 너를 변화시킬 거야. 나는 확신하고 있어. 사랑이 너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게 할 거라고……! 너는 결혼을 해야 해!
뤼팽 : (생각에 잠겨) 그래요…… 어쩌면…… 그게 나를 완전히 다른 남자로 만들지도 모르죠. 당신 말이 맞아요…….
빅투아르 : (표정이 환해지며) 정말? 너도 같은 생각이야?
뤼팽 : 네.
빅투아르 : 좋았어! 괜한 허세는 이제 그만이다! 하룻저녁 파티에나 어울릴 아가씨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진짜 여자…… 평생을 같이할 여자를 말하는 거야!
뤼팽 : 알겠어요.
빅투아르 : (뿌듯한 표정으로) 어머, 얘 좀 봐…… 제법 진지하구나! 너 사랑하는 사람 있지?
뤼팽 : 네. 진정한 사랑요.
(중략)
빅투아르 : (활짝 웃으며) 아, 사랑스러운 녀석 같으니! 정말 대견하구나……! 그래, 하는 일은 뭐라더냐?
뤼팽 : 아, 그거요…… 도둑이에요! (1권, 「아르센 뤼팽, 4막극」, 841-842쪽)
2권
“이보시오, 젊은 친구. 지금 문제는 어떤 표현을 고르느냐가 아니오.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 확고한 사실이 어떠냐이지요. 바로 이런 것 말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내겐 당신만 한 위력을 가진 상대가 없었소. 가니마르와도 셜록 홈스와도 나는 마치 어린애를 데리고 놀듯 놀았을 뿐이오. 한데 당신에 대해서는 나 자신을 방어하고, 심지어 뒤로 물러설 필요성까지 느끼고 있단 말이오. 좋소이다. 지금 당신과 나의 관계에서 내가 패배자로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소. 이지도르 보트를레가 아르센 뤼팽을 이겼다는 게 세간의 생각이니까요. 한데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던 내 계획이 지금 완전히 뒤엎어진 상태요. 그냥 얌전히 어둠 속에 남겨두려던 것을 당신이 자꾸만 들춰냈기 때문이오. 당신은 그렇게 늘 나를 귀찮게 하고,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소.” (2권, 『기암성』, 130쪽)
“이젠 그녀도 죽었어. 그러니 피에르는 다시 나한테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 셈이지. 당연히 내가 정해준 대로 주느비에브와 결혼할 거고! 그러고 나서 그는 대공령을 접수해 통치하게 될 거야! 결국 주인은 나지만 말이야! 아, 유럽……. 유럽이 내 손안에 들어오는 거라고!”
다시금 자신감을 회복해 쾌활해진 그는 열에 들뜬 채, 승리를 구가하며 세상을 호령하는 상상의 지휘검(指揮劍)을 뽑아 들고 이리저리 요란하게 휘두르면서 길을 걸어갔다.
“뤼팽, 너는 왕이 될 거야! 왕이 될 거라고, 아르센 뤼팽!” (2권, 『813』, 854쪽)
뤼팽 어차피 정식으로 자네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나로서도 별로 켕길 것 없겠지. 부당하게 얻은 재산은 별 가치가 없다는 것, 앞으로 명심하게나…… 물론 내 경우에는 다르지만 말이야! (2권,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 910쪽)
“이보게, 뤼팽. 이번 사건에 자네가 개입해서 논증해준 내용 말일세. 솔직히 나는 그 편지에 그리 놀라진 않았었네.”
“아하, 그런가? 이유는?”
그는 차분하게 반문했다.
“이유야 그와 유사한 사건이 70~80년 전에 이미 일어났었기 때문이지. 그걸 가지고 에드거 앨런 포도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한 편의 주제를 삼지 않았던가! 사정이 그러하니 이번 수수께끼의 해답이 쉬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2권, 「암염소 가죽옷을 입은 사나이』, 932-933쪽)
3권
“매사에 가장 힘든 점은, 목표를 달성하는 게 아니라 일에 착수하는 것 자체이지. 아, 이번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어느 길을 골라 가야만 하는가?” (3권, 『수정마개』, 43쪽)
“맙소사! 양은 얼마 안 되지만 꽤 쓸 만은 한걸그래! 국민의 대리인께서 취향이 제법이시군. 오뷔송산(産) 안락의자가 네 개에다……. 그리고 이건, 단언하건대, 페르시에?퐁텐의 서명이 분명한 책상이고……. 구티에르의 벽걸이용 등잔 받침 두 점에다……. 프라고나르 진품 한 점하고, 미국 억만장자라면 생각도 않고 눈독을 들일 만한 가짜 나티에 한 점……. 한마디로 대단한 재산이로군! 세상엔 여차하면 진품 타령만 해대는 까다로운 인간도 많지만, 전부 나처럼만 노력하라고 해! 나처럼 열심히 찾아다니라고 하란 말이야!” (3권, 『수정마개』, 20-21쪽)
때는, 이미 유명해진 뤼팽이 아직은 그의 가장 끔찍한 격전을 치르기 전, 그러니까 ‘기암성’이랄지 ‘813’ 같은 엄청난 모험에 뛰어들기 전이었다. 아직은 프랑스 제왕(諸王)의 수 세기에 걸친 보물을 제 것으로 삼는다거나, 독일 카이저(皇帝)의 바로 코앞에서 유럽을 도둑질할 생각일랑은 꿈도 꿔보지 못한 채, 좀 더 소박하고 이해할 만한 잔재주를 부리는 데 만족하던 시절이라고나 할까? 천성적으로도 그렇지만, 그저 취미 삼아 그때그때 선행과 악행을 경쾌하게 뿌리고 다니면서 일상에 울고 웃는 돈키호테의 나날……. (3권, 『아르센 뤼팽의 고백』, 362쪽)
미망인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날카롭게 웃어젖혔다.
“오호호호호, 어때 이만하면 된통 한 방 먹은 거 아닌가? 천하에 둘도 없는 뤼팽께서, 왕초 중에 왕초께서 말이야! 감히 범접할 수도 없고, 신출귀몰 포착할 수도 없는 귀신같은 존재가 이렇게 한낱 아녀자와 풋내기가 쳐놓은 함정에 걸려들고 말다니! 그것도 아주 고스란히 꼼짝 못하게 말이야! 손발이 꽁꽁 묶이고 보니 허약해도 이렇게 허약해빠진 친구가 없군그래.” (3권, 『아르센 뤼팽의 고백』, 480-481쪽)
4권
“오늘 밤이오! 오늘 밤! 오늘 밤 터질 거란 말입니다. 두고 보세요. 이빨 자국이……. 아, 무서워라! 아, 고통스러워요! 제발 살려주세요! 독(毒)입니다, 독! 날 좀 살려주세요!”
그는 점점 잦아드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연신 무슨 악몽 속에서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빨…… 희디흰 이빨들…… 이빨을 악물어요!”
목소리는 이내 시들시들해지면서 퍼렇게 질린 입술 사이로 맥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입술은 마치 끊임없이 새김질이나 하고 있는 늙은이의 말라비틀어진 입처럼 속절없이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개가 천천히 가슴 위로 숙여지면서, 두세 번 크게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한 차례 심한 경련을 일으킨 다음 그대로 축 늘어졌다. (4권, 『호랑이 이빨』, 22쪽)
제발 부탁입니다. 그 여자를 구해주세요. 당신에겐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네, 당신은 전능한 사람이에요. 그동안 티격태격하면서 당신이란 존재에 대해 많이 깨달았습니다. 내 공격을 막아낸 건 당신 자신의 재능만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기적 같은 행운이 당신을 집요하게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보통 남자들과 다릅니다. (4권, 『호랑이 이빨』, 297쪽)
아직은 시간이 있다, 뤼팽. 전투에서 손을 떼어라. 그렇지 않으면 자네도 죽을 거야. 자네가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나를 향해 감히 공세를 취하든지, 승리의 함성을 지르려고 입을 여는 바로 그 순간, 자네 발밑에서 엄청난 심연이 아가리를 쩍 벌릴 것이네. 자네가 죽어야 할 곳은 이미 정해진 상태야. 그럴듯한 함정이 준비되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네, 뤼팽. (4권, 『호랑이 이빨』, 409쪽)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란 항상 지나친 확신 때문에 실족(失足)을 하는 모양입니다그려. 그들은 때로 자신들의 적수가 자기들이 지니지 못한 특별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당신도 마찬가지지요.” (4권, 『호랑이 이빨』, 551쪽)
“일단락되었다는 얘기인지요?”
“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르센 뤼팽에게 모험이란 삶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살아 있는 한, 그는 온갖 파란만장한 활극의 중심과 종착점에 서 있을 겁니다. 언젠가 그도 말했지요. ‘내 무덤 위에 이렇게 새겨주길 바라네. 협객, 아르센 뤼팽 이곳에 잠들다.’ 그저 통 큰 소리 같지만 엄연한 진실입니다. 그는 정녕 모험의 대가라고 할 만하지요.” (4권, 『호랑이 이빨』, 581쪽)
“지금처럼 침울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 부분인데, 바로 멋진 웃음 말입니다!” (4권, 『호랑이 이빨』, 582쪽)
5권
“폴, 늘 그렇게 잊지 마세요. 죄는 반드시 벌을 받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 인생이 증오로 얼룩진 기억 속에서 억눌려 있는 건 원치 않아요. 이제 우린 둘이잖아요! 서로 사랑하고 있고요. 미래를 바라보세요.” (5권, 『포탄 파편』, 34쪽)
베르나르 당드빌은 다소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요, 폴. 벌써부터 난 정신이 하나도 없는걸요! 그야말로 예언력과 투시력을 죄다 겸비하신 것 같아요! 두말 않고 곧장 파 들어가야 할 곳을 지목하지를 않나,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술술 털어놓지를 않나……. 당최 모르는 것 하나 없이, 죄다 훤하게 내다보잖아요! 정말 그 정도이신 줄은 몰랐어요! 혹시 아르센 뤼팽을 사사(師事)라도 한 거 아니에요?”
폴은 순간 멈칫하며 되물었다.
“왜 하필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건가?”
“뭐요, 뤼팽 말이에요?”
“그래.”
“맙소사, 그냥 해본 소리예요. 혹시나 무슨 관계라도 있나 해서…….” (5권, 『포탄 파편』, 235쪽)
“네……. 당연하지요. 이 전쟁에서 불구가 된 용사들은 결코 스스로를 소외됐다거나 박복하고 추한 미물로 생각하지 않고, 너무나도 당당한 정상인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정상인 말입니다! 다리 하나가 없는 거요?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머리가 모자라거나 가슴이 뜨겁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전쟁이 내게서 다리 하나와 팔 한 짝을, 아니 두 팔과 다리 모두를 앗아갔기로서니, 내가 과연 매몰찬 거부와 쓸쓸한 동정심이 무서워 누구를 사랑할 권리를 아예 포기할 것 같습니까?” (5권, 『황금삼각형』, 395쪽)
정말이지 끔찍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옛날 다른 두 사람이 겪었던 시련마저도 사실은 자신들이 치른 것이며, 그때 이미 한 차례 죽은 다음, 지금 다시 똑같은 악조건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시련의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가면서 말이다. 자신들의 운명과 부모들의 운명이 어찌나 닮았는지, 고통은 배가될 수밖에 없고, 이제 그 두 번째 시련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절망감이 처절하게 몰아쳤다. (5권, 『황금삼각형』, 585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