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라 시대 때부터 대대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한다. 누군가 그게 어떤 일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참 곤란한 질문이다.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분명 알고 있는데, 질문을 받는 순간 대답할 수가 없게 된다. 질문의 속성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아직 정확히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킬러 조직에는 반드시 맨손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무기를 휴대하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표적이 요인일 경우 특히 보안이 철저하다. 삼촌은 공항, 병원, 대사관, 경찰서, 피라미드 안에서도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주로 후두부나 척추의 급소에 짧은 순간에 정권을 찔러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면, 콜사인을 정할 수 있다. 어떤 통신수단도 보안이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킬러가 임무 중에 교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누나의 콜사인은 제니다.
나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내 앞에 상자와 뚜껑이 있다. 나는 상자의 뚜껑을 닫아서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에게 건넨다.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서 내게 건넨다. 그러면 나는 다시 상자의 뚜껑을 닫아서 돌려준다. 맞은편의 누군가는 다시 상자를 열어서 돌려준다. 우리는 밤새도록 상자를 주고받는다. 나는 이 꿈에 「현대인의 삶 - 나의 삶」이라는 제목과 부제를 붙였다.
할아버지는 독제사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의 독을 먹고 죽었다. 독을 만들 때, 할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이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의 효과나 은밀함 같은 것은 언제나 그다음이다.
“독도 음식이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맛없는 거라면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잖아.”
나는 세상 슬픔을 다 안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우리 아빠다. 아빠는 자살 전문가였다. 어떤 죽음은 자살이라는 형태를 취해야만 남아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원래 자살 전문가의 임무는 표적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 것이다. 아빠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자살 전문가였다. 자살로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표적이 진짜로 자살하게 만들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하는데, 한 사람의 킬러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협력해야 한다. 살인은 매우 극단적인 행위라서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스스로 납득하지 않으면 절대로 킬러가 될 수 없다. 나는 별로 킬러가 되고 싶지 않고, 특히 근접 살인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이 세상에 킬러가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학생들이 합기도를 배우는 이유는, 그들의 부모가 잘못 번역된 문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원래 원문은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가 한 말인데, 정확히 번역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가 된다. 풍자니까 당연히,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힘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이 썩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곳곳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형은 미래가 암울한 이 나라의 검사다. 예로부터 킬러들은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 의뢰를 받는 경우도 많았고, 직접 관직에 나가서 이용하기도 했다. 국가에 대한 정의는 관점마다 다르겠지만, 킬러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란 사람을 죽이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와 권한을 집대성해놓은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 잔혹한 복수를 했더니 오히려 공허하더라고 고백하는 사람, 그들은 신화 속의 존재이거나 비범한 영웅이다.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원수를 용서하지 않고, 복수를 하고 나면 그제야 단잠을 잔다. 킬러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그의 죽음으로 아직 살아 있는 채무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의 처우는 조금 더 나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만, 잠깐의 휴식 정도는 주어졌다. 누군가 죽어야만 쉴 수 있는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킬러가 필요하다.
그를 죽인 것은 누구일까? 어쩌면 프랜차이즈 카페의 대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카드회사의 대주주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훌륭한 킬러다. 정말 아무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한 명씩 사람을 죽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