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번이 이백 년 넘게 에도막부에 대해 가져온 반감은 19세기 서양세력의 등장과 함께 촉발된 존왕양이 사상(천황을 받들고 서양세력을 물리치자)과 융합되어 젊은 사무라이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크게 영향을 준 강력한 지도자가 바로 요시다 쇼인이었다. --- p.18
요시다 쇼인은 20대 초반의 3년 반 동안, 1만 3천 리에 걸쳐 일본 각지를 돌아다녔다. 각 지역의 풍습과 지형 등을 살피고, 다양한 학자들을 만나 함께 책 읽고 토론하며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엄하게 처벌받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일본을 구해야 한다’는 목표만 바라보고 움직인 쇼인의 도전정신과 용기 그리고 행동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고, 일본 곳곳으로 쇼인의 행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 p.50
2018년 현재 일본의 정치지도자인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은 야마구지 현(조슈번) 출신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쇼인의 글을 바탕으로 추모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총리 재선에 성공한 직후인 2013년 8월 13일에는 쇼인의 묘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쇼인 선생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2016년 말 국회에서 쇼인의 ‘이십일회맹사’이야기를 언급하며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도쿄의 헌정기념관에 걸린 역대 총리들의 좌우명이 걸려있는데 아베 신조의 좌우명은 쇼인이 그토록 강조했던 ‘지성’이다.(쇼인의 학생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좌우명도 이와 같았다.) 요시다 쇼인의 목소리는 그의 사후 160여 년이 된 지금까지도 일본 곳곳에서 메아리쳐 울리고 있다. --- p.93
쇼인은 특히 조선을 침략하고 합병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그의 제자인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은 훗날 이 논리를 메이지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총리가 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제국의회’의 첫 회의 자리에서 ‘일본의 이익선은 한반도’라고 주장하며 침략정책을 주도했다. --- p.99
한편으론 일본을 군국주의로 이끈 인물들 중에 여럿이 포함되어있다. 그런데 오늘날 일본에서 ‘교육의 신’ 요시다 쇼인의 침략 사상과 폭력성 등은 잘 논의되지 않는 현실이다. 위대한 교육가, 사상가로 미화되며 그의 모든 주장이 ‘일본을 위하는 것’으로 합리화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침략주의에 의해 비극을 겪은 국가들은 이렇게 쇼인이 미화되는 현실에 대해 거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에 대한 이해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자칫하면 감정적인 판단으로 빠지기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의 성패와 명암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선 예찬과 미화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것,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 --- p.126
물론 쇼카손주쿠에서의 교육으로 모든 학생이 성공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국가지도자인 내각총리대신이 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그리고 메이지 정부의 장관이 된 마에하라 잇세이, 야마다 아키요시, 노무라 야스시, 시나가와 야지로 등을 포함해 30.6%의 학생이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법률, 사회 등 각계에서 지도적인 인물이 된 것은 일본의 어떤 교육기관도 넘보기 힘든 성과였다. --- p.132
일본의 우익사상과 역사 인식을 상징하기도 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원래 이름은 ‘섬뜩하게도’ 조슈신사(長州神社)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쇼카손주쿠 학생들과 조슈에서 태어난 인물들이 주도하여 1869년 8월 도쿄의 지요타 구에 조슈신사를 세우고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키 신사쿠 등의 위패를 가져다 놓았다. --- p.186
일본의 아마존 온라인 서점에서 요시다 쇼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약 1,200여 권의 책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대한민국에는 요시다 쇼인을 주제로 다룬 책이 단 한 권도 없다. 일본의 역사나 사상을 다룬 책에서 잠시 쇼인이 다뤄지거나 역사학자들이 쓴 논문만 몇 편 있을뿐이다. --- p.198
어제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고 내일은 오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본과 건강한 관계를 맺든, 그들의 되바라진 행태에 대비하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선 모든 선입견과 감정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제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오늘을 비춰야 한다. 몰라서 당하는 것은 알고 당한 것보다 더 큰 죄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이제라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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