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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르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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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37쪽 | 388g | 116*184*28mm
ISBN13 9791191262636
ISBN10 119126263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가끔 우리 동네에서 아직 괜찮은 꿈을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꿈은 두 가지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꿈이다. 나는 바딤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에 대한 책을 쓸 것이다. 벌써 책의 제목도 지어 놓았다. “똑똑한 맏딸의 말을 들었다면 아직 살아 있을 멍청한 빨간 머리 여자 이야기.” --- p.8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거다. 엄마는 항상 말했다. 사람은 사람을 보고, 듣고, 체취를 느껴야 한다고.
--- p.94

“너를 꼭 안아 주고 싶구나. 하지만 내 팔이 그만큼 길지 않아.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가 말한다.
“당신이 오늘 저를 구해 주었어요.” 내가 말한다.
“뭐라고?”
“당신의 이름이 나를 구해 주었어요.". --- p.294

“내가 왜 우는지 아세요? 듣기만 하세요. 그러니까요, 내가 그들을 구하지 못했어요. 엄마도 하리도. 하지만 구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면 말이에요. 내가 팔짱을 끼고 짜증 난 표정으로 그저 문에 서 있기만 하지 않았다면요. 내가 앞으로 걸어 나갔어야 했어요.” 내가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네가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 통화를 하고 있을 수도 없어.” 폴커가 말한다.
“난 구할 수 있었을 거예요.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나는 무서운 게 없었어요. 오늘 저녁까지. 지금은 다시 겁이 나요. 그리고 더 많은 두려움에 대해 겁이 나요.” --- p.295

당신을 사랑해요. 이 말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다. --- pp.296~297

사샤는 기다리지 않는다.
아니, 사샤는 기다린다.
나는 기다리는 내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에게 엽서를 쓰지 않는 그 작자도 미워한다. 내가 정확히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폴커와 펠릭스가 한 사람으로 합쳐진다. 지금 그는 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면서 손가락 사이로 하얀 모래를 흘리고, 코코넛을 깨뜨리고 있다. 알게 뭐람, 아무튼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특히, 내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거다. --- p.320

내 뒤로 검붉은 들장미가 활짝 피어 있다. 내가 이처럼 비참하게 지내고 있는데 들장미는 이렇게 아름답게 피다니,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 p.321

나는 기억 속에서 수많은 모자이크 조각처럼 폴커의 얼굴을 하나씩 짜 맞춘다. 하지만 곧 흩어진다. 그의 모습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다. 내가 절망적으로 짜 맞추려 할수록 더 많은 부분이 사라진다. --- p.336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 우리만 이겼어.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못 이겼어.” 알리사가 신이 나서 흥얼거리며 다시 올렉의 무릎으로 기어오른다.
“그만 가 볼게요.” 내가 말하고 체스의 말을 흰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아 올렉에게 밀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지금부터 모든 것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시인하기가 어렵다. --- p.382

나는 돌을 하나 손에 쥔다. 돌이 무척 무겁다. 손가락에 놓고 무게를 재 본다. 이런 돌로 바딤의 머리통을 갈겼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더없이 좋았을 것을. 두개골이 날달걀처럼 깨졌겠지.
너무 늦었다.
나는 돌을 휙 던진다. 하지만 돌은 창문까지 닿지 못한다. 던지기 연습을 너무 안 했다.
체육은 성적이 좋지 않은 유일한 과목이다.
나는 좀 더 작은 돌을 집는다. 이번에는 탁 맞힌다.
나는 매혹되어 꼼짝 않는다.
유리창이 반짝이는 조각으로 자잘하게 부서진다. 유리 조각들은 한순간 공중에 커다란 무중력의 예술 작품으로 머물렀다가 아스팔트로 떨어지면서 더욱 자잘한 파편으로 부서진다. --- pp.401~402

그는 크게 세 걸음을 걸어 내 옆에 선다. 나는 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 이불로 머리를 완전히 뒤집어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나는 앉은 채로 있다.
사샤는 숨지 않는다.
그는 두 손을 내 위팔에 얹고 몸을 숙여 뺨에 조심스럽게 키스한다. 부서질 듯 아주 조심스럽게.
“제가 뭐 유리로 만들어졌나요.” 내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그의 왼손이 내 목덜미를 쓰다듬더니 그 자리에 머문다. 아주 따뜻하고, 아주 무겁다. --- pp.411~412

안녕 엄마, 물론 하리 아저씨도 안녕. 내가 말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지 무척 오래되었네. 내가 엄마 사진을 병원에 가져가지 않았다고 기분 상하지 않았길 바라. 그곳에서 나는 혼자 있었어. 나는 엄마 생각을 거의 안 했어. 딱 한 번, 그때 엄마가 더 이상 모든 걸 볼 수 없다는 게 기뻤어. 아니면 혹시, 볼 수 있나?
그리고 또 생각했지. 엄마와 하리 아저씨 둘이 같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언제나 어디서나. 아마 나는 늘 혼자일 것 같아.
나는 천국을 믿지 않아. 지옥도 믿지 않고.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건 알아. 최근 몇 달 동안 우리가 다시 만날 시간이 아주 아까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어.
--- p.42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러시아계 이주민인 사샤 나이만은 첫머리부터 자신의 꿈 두 가지를 밝힌다. 첫째, 죽은 엄마에 대한 책을 쓸 것이며 둘째, 의붓아버지 바딤을 죽이겠다는 것. 이 충격적인 결의에서 이미 주인공이 겪은 상황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된 주인공 사샤. 사샤는 세상에 대한 냉소와 바딤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며, 낯선 나라에서 청소년 사샤가 맞닥뜨리는 다난한 상황은 다문화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난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느 날, 살인자 바딤을 미화한 기사에 항의하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간 사샤는 그곳에서 우연히 신문사 국장 폴커 트레부어를 만나고, 폴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느끼며 혼돈에 빠진다. 하지만 그 사랑을 미처 입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감옥에 있던 바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사샤는 북받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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