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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는 오래되었지만

우리의 관계는 오래되었지만

시인동네 시인선-16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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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76g | 125*204*8mm
ISBN13 9791158965327
ISBN10 11589653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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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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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유리 창문 앞에 아기 새가 죽어있다 겹벚꽃 흩날리는 찬란한 봄날 아침

모르는 새가 죽었을 뿐 죽은 새는 가벼웠다
--- 「모르는 새」 중에서


둥근 달을 그렸는데
달의 정원에는
꽃들이 노랗게 피어 있었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사람의 것이었다

꽃들은 피어 있고
꽃 아닌 꽃도 피어 있고
장미꽃 봉오리는 여섯 장의 꽃잎으로
겹겹이 달의 울타리를 치겠다고 서 있었다

사랑을 하기엔
나는 이미 늦은 사람

앞사람의 그림자를 한 잎씩 떼어내며
여름의 바깥에 서서 바라만 보는 사람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노란 꽃의 정원사가 쳐놓은 금 밖에는
하나의 달이 떠 있다
너무 늦게 뜬 달이
--- 「달그림자」 중에서


산까치가 내려와
딸기를 쪼았다

장마가 잠시 멈춘 다 젖은 수풀 사이

당신이 몰래 다녀가고
딸기는 더 빨개졌다
--- 「산딸기」 중에서


우리의 관계는 끝난 지 오래지만
너는 죽음으로 나를 호출했다
빈소에 너의 얼굴은 화환 속에 담겨 있다

너에게 들어야 할 어떤 말이 있었는데
이 생애 계산을 다 끝낸 사람처럼
어느새 너의 세계는 차갑고 고요했다

남긴 말이 없음을 그곳에서 알았다
후회와 혼돈은 내 몫으로 남겨둔 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른 채 또 헤어졌다
--- 「너의 장례식」 중에서


남자들이 널 보면 지루해할 거야
오래전 친구한테 이런 말을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서 그때가 떠올랐다

방학이 끝날 무렵
살구나무 아래였다

살구를 가르면서 나는 곰곰 생각했다
이렇게 둥근 것들의 영원성에 대하여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바람은 불어왔고
커다란 살구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노랗게 익은 살구는 바닥에서 뒹굴었다

세상에 없는 것처럼
친구는 떠나갔고

나는 가끔 지루해져
친구를 생각했다

살구가 살구나무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 「살구」 중에서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새벽 세 시 아니면 두 시, 총알같이 날아갑니다 웃지 않아도 되는 밤입니다 어둠 속의 발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군요 오래전 어떤 당신도 알아볼 수 없겠습니다 이제 립스틱 색깔은 더 이상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모르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모르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모르는 사람이 되어 끝맺음을 야기하고

우리의 흐느낌은 의외로 단순한데

총알이 날아옵니다 생존은 각자도생이라 했나요 자신의 날개로 끝내 날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이제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진으로 오래도록 어떤 가슴에 걸려 있겠습니다 늙고 싶어도 늙을 수 없는 어떤 사람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벗으면 무섭다고 합니다 얼굴은 보여줄 수 없습니다 벌써 당신은 도망가고 있군요 그래도 살아 남자는 고객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되도록 멀리서 서로를 자극합니다
--- 「배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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