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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

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

상상인 시선-02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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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12g | 128*205*9mm
ISBN13 9791191085327
ISBN10 1191085325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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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

그리고 이상한 가을이 찾아와
초소처럼 서 있던 생선가게에 불이 꺼지고
선착장을 날던 드론들도 사라져
만년 시계*인 양 긴 불면에 드는 모래둔덕
가문 좋은 금속들만 시간의 페달을 유유히 달리는
이상한 밤이 찾아와
철 늦은 소금장미 들창에 피어나고
러시아풍 선술집에서 젖은 럼향기 풍겨올 때
나, 베라를 생각하네
내다 팔지도 않을 호박을 심고
잡아먹지도 않을 닭들을 키우던 눈물 많던 베라
애인 잃은 친구를 찾아가 제 것인 양 3년을 울던 베라
더 이상 크리넥스 집어 주기 싫다며 너도 나도 등 돌렸던
아더스 버트란드 얀의 ‘휴먼’
페이지 178쯤에서 만날 것만 같은 흰 얼굴과 빨간 볼
그녀가 러시아로 돌아간다던 밤을 생각하네
큰일이 났다고,
캄캄한 베링 해협같이 꿈틀대는 전화기 속에서
베라가 울지도 않던 밤을


* 텍사스 서부 산속에 설치되고 있는 이 시계는 초침이 일 년에 한 번 째깍거리고, 분침은 백 년마다 움직이며 천 년에 한 번 뻐꾸기가 소리를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 본문 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임혜신에게 있어서 시는, 삶의 고단한 행로가 배태한 ‘녹슨 총구’를 닦아 숲의 상상력처럼 빛나는 ‘흰 눈꽃’의 이미지를 발양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마침내 시인은 그 모든 삶의 실상들을 먼저 보아버린 ‘견자見者’의 눈으로 다시 ‘숲의 블라인드’를 올리는 것이다. 이때의 시는 삶의 내포적 진실을 반사하는 거울과 같은 것이며,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여로의 모래밭에서 사금沙金을 걷어 올리듯 소중한 실과實果를 수확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가장 빈한한 신분의 사내가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를 만들어 내듯이(「가장 아름다운 십자가」). 박학다식과 박람강기의 시적 언술 및 묘사로 활달한 언어의 성찬盛饌을 펼쳐 보인 임혜신의 앞날에, 더 풍성한 시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 김종회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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