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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소묘(素描)

동창회 소묘(素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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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448g | 140*210*17mm
ISBN13 9791190526494
ISBN10 1190526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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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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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먼 정애가 먼저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정애를 먼저 보내고나서 근처 슈퍼로 갔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영주의 얼굴을 반드시 보고 가리라. 영주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
그녀는 슈퍼에서 수박을 한 통 사들었다. 굽높은 구두가 돌뿌리에 걸려 진수렁에 자빠질 위험을 수차례 겪으면서 봉고차가 정차하는 약국 앞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뜸하던 빗줄기가 더 굵어지더니 빗살처럼 진창에 마구 내려꽂히고 있었다.---「동창회 소묘素描」 중에서

어머니의 전화는 할미꽃 할머니가 고개 위에서 눈물로 외치던 부르짖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집 저집을 모면할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내 힘으로 아파트를 사 드리자. 어머니를 자식들로부터 독립시키자. 그녀의 결심은 어머니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더욱 굳어졌다. 어머니의 할미꽃 삶을 청산하는 길은 어머니 명의로 된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깊은 겨울 눈발이 흩날리는 산등성이에서 딸을 부르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상이 너무도 닮아 있었다.---「효도비」 중에서

아! 나 외로워. 친구할 사람 소개해줘. 이런 말은 그녀의 지성과 빛나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오뚝 선 콧날과 나이를 먹어서도 변치 않는 부리부리한 안광에서 쉽게 드러났다. 외로움으로 피부 세포가 툭툭 터져 나가고, 양 옆구리로 동지섣달 찬바람이 휙,휙, 지나간다 해도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이는 일이란 유일무이한 단짝 친구 호정을 제외하면 없다. 이것은 차라리 그녀의 드높은 자존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녀 편에서 마음을 터놓고 믿음으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전무하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듯싶다. ---「여보를 구합니다」 중에서

수진이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수진의 울음소리를 듣고 군화를 신은 시체가 벌떡 일어서서, 그들 모녀의 다리를 냅다 걷어찰 것만 같았다. 머리통만 나뒹구는 시체가 데굴데굴 그들에게로 굴러오고, 두 팔과 가슴 부분이 노출된 시체가 훠이훠이 팔을 휘두르며 덮쳐올 것 같아, 옴짝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수진의 작은 몸을 품어 준다. 수진의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어머니의 심장도 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누에 껍질처럼 폭삭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소름이 쭉 돋았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혼미하던 정신이 차츰 개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집 한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집은 어쨌든 피난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 몇이라도 남아 있음직한 낌새는 엿보였다.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녀는 그 집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집의 형체를 어설프게나마 유지하고 폐허를 지키고 있는 것이 기이했다. ---「어머니의 특별한 여름」 중에서

선재 동자가 마지막 구도행에서 보현보살을 만나듯, 그녀의 오랜 미망과 방황은 비로소 멈추었다. 인간의 삶이 일회성 단막극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후손을 통해서 영원히 영생할 수 있음을 그녀는 문학예술로 증명할 수 있었다.
문학도, 학업도 그녀에게는 평생을 쌓아가도 모자람이 없는 수행의 한 유파, 한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유파 중에 두 항목을 선택했다는 게 특이했다면 특이했다. 그것 또한 그녀 자신의 전생 카르마와 연결된다고 보았다.
---「영혼 사진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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