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금 바라보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단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정치적 해석을 넘어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이 현실을 향한다. 지금 우리는 팬데믹이라는 위기 이후, 새롭게 만나게 되는 국면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다는 변화된 행동 양식을 떠나, 과연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어떤 개념들이 정말 이전에는 없던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사실 위기와 고립 상황에서 우리가 목도하게 된 사회, 경제적 격차의 문제, 혐오와 분리, 제도의 오류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고 언제나 존재하던 것이었다. (…) 문경원과 전준호는 그들의 장기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을 이끌며 “예술은 인간 인식의 변화를 위한 기획”이라 말한 바 있다. 어떠한 제도나 구조에 비해, 예술은 비교적 유연하며 상황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창의적 수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단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마주하는 여러 가지 다른 접근법들을 실험할 수 있고,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달하며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예술은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즉각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 간접적이고 느리지만 끊임없는 사고의 전환을 향해 간다.
--- p.67, 「미지에서 온 소식:자유의 마을」, 박주원(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중에서
문경원: “우리는 작업을 하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을 함부로 작품 소재로 다루지 말자는 태도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자유의 마을은 미묘합니다. 자료를 조사하고 기록을 찾아보더라도, 직접 가거나 겪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장소로 남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반세기 넘게 이어진 냉전시대의 유산이 여전히 우리 몸속에 분명 남아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체득된 불안하고 안정화되지 않은 삶, 세대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유전적 불안함의 초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안정함은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유의 마을을 통해 이것을 들여다보면,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준호: 고립은 삶을 통찰하는 유용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종교에서도 종종 세상과 담을 쌓고, 혼자 있으면서 역설적으로 세계에 대한 답을 찾곤 하지요. 우리는 반세기 넘게 고립된 상황을 겪고 있는 자유의 마을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유효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영상에 나오는 두 인물은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모두 고립된 상황에서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인물입니다. 작품에 부여된 시간적 개념 역시 관객들이 보는 그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두 영상 중 하나는 과거로 보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로 보일 수 있지만, 둘 다 현재입니다. 다시 말해 두 인물 모두 2021년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의미론적 시간을 따르지 끊임없이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개념 속에 작품을 놓지 않습니다.
--- p.70-71, 73-74 「인터뷰: 문경원 & 전준호, 박주원(질의자)」 중에서
큐레이팅을 할 때 나는 장소 특정성─관람을 위한 신체적 플랫폼을 제공하여 작품의 존재감과 개념을 확장하는 방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의 많은 큐레이팅 프로젝트들(개중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왜 이 전시인가? 왜 하필이면 여기서? 지금?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어떤 의미가 이 장소에 존재하는가? 동시에, 나는 내가 다루는 미술 작품들을 살아 있는 것으로서 이해한다. 이 일은 단지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때뿐만이 아니라 기존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식으로도 일어난다. 어떤 경우든 이는 작품이 어디로 갈지 작가가 상상하는 동안 작가에게 귀 기울이며 준비 자세로 대기한다는 뜻이다. 〈미지에서 온 소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 p.117, 「미지에서 온 소식: 시카고 실험실」, 메리 제인 제이컵 (시카고 예술대학, 큐레이터) 중에서
하이케 문더: “두 분은 오랜 시간 공동 창작이란 개념 아래 작업해 왔습니다. ‘공동 창조’라는 용어는 경제 영역에서 대기업들의 새로운 작업 방식으로서, 즉 덜 위계적인 동시에 더욱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방식으로 각광받았지요. 두 분이 여기에 긍정적인 의미를 더할 수 있겠지만, 자칫 신자유주의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수도 있습니다.”
문경원 & 전준호: “현대 미술이 신자유주의와 맺는 관계를 외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역시 덜 위계적인 것과 창의적인 결과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더욱 창의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그 ‘과정’을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무언가 창의적인 결과물을 전시함으로써 우리가 지금껏 던져온 질문에 대한 답이 찾아질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더욱’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맹목적인 결과 추구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대기업의 생존 방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 p.121, 「하이케 문더와의 대화」, (미그로스 현대미술관, 관장) 중에서
테이트 리버풀에서 열린 문경원과 전준호의 전시는 모리스의 작품에 담긴 중심 주제를 현시대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우리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며 우리 미래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전시의 중심에 놓인 필름은 인류가 대대적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에 직면하여 어떻게 대응할지, 현 사회 정치 시스템이 미래에도 유효할지와 같은 이슈를 제기했다. 또 다른 차원에서, 이 전시의 작품들은 어떻게 유토피아적 이상이 어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건드리지 않은 채 지각을 조작할 수도 있는지를 탐색했다.
--- p.126, 「나의 미래가 다른 세상을보여 줄 것이다」, 타마르 헤머스 (테이트 리버풀, 큐레이터) 중에서
이제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대 세계의 우리에게 익숙해진 근대화의 준거 틀을 심각하게 뒤흔들기 시작했다. 유전자 편집과 AI 같은 신기술의 도래는 예술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 그 복잡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블록체인 같은 기술은 사이버 공간에서 지식의 축적을 민주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미지에서 온 소식〉의 포럼에서 공유된 제안들은 전시 미디어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교류될 것이다. 프로젝트가 계속되는 한, 이런 아이디어들은 이 프로젝트의 접근 가능한 플랫폼에 축적될 것이다.
--- p.135,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 비전의 공유를 향해」, 히로미 구로사와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