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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할게요

편지할게요

: 낯선 이름에게 전하는 나의 은밀하고 소란한 편지

김민채 | 그책 | 2021년 11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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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30g | 120*205*13mm
ISBN13 9791188285983
ISBN10 11882859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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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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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편지로 그는 찾아왔다. 문자메시지나 카톡도 아니고 전화도 아니라 그가 직접 찾아와 편지를 남겼기에, 나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기억이 소멸될수록 사랑의 추억은 조금씩 몸집을 줄여갔다. 가슴 아플 것도 없고, 야속하거나 잔인한 일도 아니었다. 추억 상자 안에 무엇을 얼마만큼 담든 그것은 결국 영원할 수 없다. 사라질 것은 결국 사라진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이 편지를 반복해서 펼쳤다 접으며 ‘익숙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곱씹는다. ‘처음’ 대하지 않는 느낌. 20년이 넘도록 나를 각별히 지켜온 A를 더욱 사랑하는 방법, 바로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난 사람 대하듯 좀 더 예의바르게 한 걸음 먼저 다가서기, 그 사람을 궁금해하기,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헤아려보기, 그 사람이 지금 처한 상황을 바쁘게 살피기, 좋으면 좋다고 말하기, 내게 당신이 얼마만큼 소중한 의미인지 이야기해주기, 곁을 지키며 세월을 쌓되 익숙해지지만은 않기,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다시 웃으며 시작하기.


나는 당신이 되어가고 당신은 내가 되어가는 꿈을 꾼다. 그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정말 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 ‘닮음’은 서로를 가장 갈망했던 그때를 증명한다. 달라서 끌렸던, 가장 희구했던 면면을 향해 손을 뻗었던 그때. 나는 당신 쪽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다. 그리고 당신이 고개를 돌려 내 쪽으로 한 걸음 내딛으면, 우리는 가까워진다. 마침내 꿈을 꾸기 시작한다. 진실해진다. 투명해진다.


어리석은 나는 오래된 물건들을 꺼냈다가 거기에서 당신의 행간을 읽는다. 그때는 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이는 마음에 짐짓 놀란다. 아, 그때 이 사람이 나를 참 많이 좋아했구나. 나를 사랑해주었구나. 나 아프지 않고 걱정 없이 보냈던 날들에 나를 지켜주던 당신의 마음이 있었구나. 뒤늦게 고마운 마음에 미소 짓는다.


또 다른 날 쓰인 편지에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연락할게’라는 문장도 적혀 있다. 항상 꿈의 공기를 내뱉고 내쉬었으면 한다는 말도, 진실된 모습을 보고 그걸 이어가라는 말도 촘촘하게 담겨 있다. 이 편지에는 지난날 내게 전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말들과, 우리가 만나지 못할 먼 미래에 내게 하고 싶은 말까지 몽땅 쓰여 있는 것만 같다. 이미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소식이 끊긴 지 벌써 몇 해나 지나서, 다시 만나면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 애가 그립다. 편지를 보낼 주소를 알 수 있다면 딱 한 줄 제목만 적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봐.”


그 애에게 부치지 못했던 무수한 편지들을 보낸 이후의 나를 상상해본다. 들여다보기에도 어려운 아주 미세한 감정의 변화로, 우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찢어서 버린 편지들에 쓰였던 많은 말들은 내가 A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서성거렸는지를 보여줄 테니.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망설였던 그 편지들이. 그 시절 나와 당신이 연결되어 있었노라, 그때 당신이 나를 살게 하고 살아가게 했노라, 한끗 후회도 없이 그 시절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노라 속삭여주겠지.


결혼하며 삶터를 옮기며 엄마로부터 멀리 왔다. 그때 나는 이전까지의 삶을 가뿐하게 털고 멀리 떠나는 것에 설레며 조금 신이 나기까지 했다. 새로운 출발에 마음이 사로잡혀 한 번도 엄마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몇 순간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분명히 엄마는 마음을 표현했었지만 말이다. 너무
멀리 가게 되어서 속상하다고. 더 가까이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느냐고. 분명 아쉬워했다. 매정한 딸은 듣지 못했던 그 목소리, 보지 못한 그 표정. 감사하게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 있다. 엄마의 자리에. 인정머리 없는 딸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엄마를 살피고 헤아릴 줄 모른다. 그저 문득 엄마를 떠올릴 뿐이다. 엄마가 내 곁이 아니더라도 세상 어디에라도 존재해주기를, 이왕이면 맛난 음식도 먹고 좋은 풍경과 마주하는 멋진 하루를 보내길 바라면서.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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