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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사랑

그 남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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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50쪽 | 388g | 152*225*12mm
ISBN13 9791197177125
ISBN10 119717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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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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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결에 패딩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언제 사서 넣어 두었는지 뜯지 않은 껌 한 통이 있었다. 껌이 이토록 반가울지 몰랐다. 얼른 하나를 꺼내 씹었다. 저기 둑까지만 걸어 보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막상 도착하니 둑 경사가 삼십 도는 되는 것 같았다. 비틀거리면서 올라갔다. 정상에 서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여기에 바다가 있을지 몰랐다. 비록 물이 다 빠져 갯벌만 보였지만 저 멀리 바닷물이 보이는 곳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배가 네 척이나 있었다. 그 앞 복판에 작은 바위가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저기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있어서 눈과 진흙이 뒤섞인 위를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가뿐히 도착해서 씹던 껌을 종이에 싸고 손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 연기를 내뱉는 족족 바닷바람에 실려 금방 서 있던 둑 쪽으로 사라졌다. 이 넓은 바다에 혼자 있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혼자 사는 건 자신 있었다. 그런데 가슴 한편은 말로 표현키 어려운 외로움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 p.57

습관적으로 그 애가 그리워지면 컴퓨터를 켜고 폴더 하나를 클릭한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봤다. 톡에서는 전부 지웠지만 그 애와 주고받았던 내용 중에 몇 개만 저장해 두었다. 집착이라고 해도 좋고 궁상이라고 해도 좋다. 누가 뭐라 한들 내 인생 내가 살지 누가 대신해 줄 순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이 위안이자 행복이다. 그 애에게 보낸 내용 중에 하나다.
‘어젠 잘 들어갔니? 늦은 시간까지 답답해하는 나에게 이런저런 희망의 메시지를 주어서 감사해. 어제 나눈 대화는 마음이 편했고 행복했어. 항상 나를 염려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은 거듭 전하고 싶네. 무거운 심적 공황상태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맘 존경해. 남자인 내가 그 맘을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나에게 용기를 준 것처럼 나도 용기를 주고 싶어. 암튼 기운내고 나도 담대함을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 p.88

“그래서 사랑은 철학적 요소가 개입된다고 말씀하셨군요. 칸트가 행복하게 살래 착하게 살래 말한 것처럼.”
“빙고! 철학의 질문 중에 가장 큰 화두가 인간 이야기이잖아요.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지요. 혹시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란 그림 본 적 있으세요?”
“오른쪽에 어린아이와 여인이, 중간에 젊은 사람이 왼쪽에 죽음을 앞둔 여인이 그려진 것 말이죠?”
“보셨군요? 맞아요. 이 그림은 철학적,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거든요. 고갱이 딸의 죽음과 자신의 질병으로 엄청 고생하다가 자살하려고 하다가 그린 그림이에요. 이 그림 때문에 살았다고 할 수 있고요.”
자살 이야기가 나온다. 심장이 불안하게 뛴다. 자살 이야기는 멈춰 달라 하고 싶다. 하지만 너무나 진지한 표정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냥 들어야 하나.
--- p.127

바깥 세상은 더 짙은 회색이었다. 아직도 하늘 창고엔 내릴 눈이 많이 남았나 보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자연은 참 아름다워요……. 근데 왜 저런 아름다움 뒤에 고통이나 아픔 등의 그림자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그래서 독일 작가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잖아요. 사랑에 고통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저 하얀 눈처럼 기쁘고 즐겁고 행복만 하다면 참 좋겠지만……. 사랑은 양면성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 같아요.”
“명언이네요. 괴테는 사랑을 해봤을까요? 그러니 그런 명언을 역사에 남겼겠지요?”
“그는 독일이 낳은 천재시인이라고 알려졌지만 흠이 한 가지 있었대요. 엄청난 바람둥이였대요. 좋게 말하면 영웅은 호색가라고 하니. 자그마치 공개된 여성이 열댓 명이라고 하는데 실제 얼마나 될지 모르죠 뭐.”
--- p.160

그의 얼굴을 봤다. 좀 전보다 더 붉게 변해 있었다. 아마도 그녀와의 추억으로 가슴이 타고 있다는 증거다. 그가 너무 부러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지난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이 시간, 아무에게나 있을 수 없는 귀한 시간이고 삶이다.
차츰 죽어가는 나의 인생, 그런 길에 사랑했던 사람과의 앨범이 없다는 것도 불행이다. 돈과 재산이 많다는 것도, 명예와 권세를 가진 것도 눈에 보이는 가치와는 비견될 수 없다.
창조주는 세상을 창조하면서 절대적인 사랑을 우리 인간에게 맹목적으로 주셨다.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인간은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 그의 가르침을 어겼고 인간은 고난과 고통의 길로 들어선다.
한없는 절대적인 사랑만을 받을 수 있었던 우리 인간은 스스로 진 죄로 사랑을 주고받는 그 사이에도 여러 갈래의 아픔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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