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열려진 음악이다. 하늘과 땅이 마주하고 햇살과 그림자가 깃들며 들숨과 날숨, 자연의 오달진 생명, 장인의 혼과 진한 땀방울로 집 한 채, 밥 한 그릇 만들었다. 자연이 사람과 만나니 우주가 되고, 날줄과 씨줄이 만나니 삶과 문화가 되어 새새틈틈 스미고 물든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별처럼 달처럼 물처럼 숲처럼 그렇게 풍경이 깃든다.
인생은 겪는 것이다. 기쁜 일도 겪고 슬픈 일도 겪는다.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난다. 눈이 오고 비바람 몰아치는데 겪으면서, 만나면서 운명이 되고 지혜가 되며 존재의 이유가 된다. 장독대엔 장이 익어가고 굴뚝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밥 짓는 구순한 내음 끼쳐오고 마당에는 서리태 까부는 소리 장작 패는 소리 마뜩하다. 돌담 옆 붉게 쏟아지는 홍시를 보며 나그네 발걸음 머뭇거린다.
석탄처럼 묻혀있던 꿈을 들어 올렸다. 겹겹이 쌓여있는 어둠을 하나씩 걷으니 윤기가 흘렀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고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만든다. 이곳은 천년의 숨결, 시공을 뛰어넘는 사유의 공간이다. 깊고 느림의 미학, 오래된 미래다.
--- p. 18, 「사랑으로 빚은 집」 중에서
누구는 이를 두고 비움의 미학, 텅 빈 충만이라고 했다. 우리집도 그랬다.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마당은 텅 비어 있지만 여백과 풍요의 경계를 넘나드는 묘미가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마을 풍경과 산과 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마당은 비움과 채움이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이었으며 놀이와 풍류, 그리고 공동체가 무르익는 곳이었다. 부모님 결혼식도 마당에서 했고 할머니 환갑잔치도 마당에서 했다. 당신의 저승길 가는 꽃상여도 마당에서 시작했다. 가을날 벼를 쌓아 올렸던 곳도, 서리태를 까분 곳도,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평상을 깔고 부채질하며 밤하늘의 별을 세던 곳도 마당이었다.
--- p. 34, 「마당 깊은 집」 중에서
살다보면 두뇌의 잣대로 세상의 이치를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가슴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고 싶고, 그 무위한 삶이 기진한 내 삶을 어루만져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마천루 빌딩에서 즐기는 행복보다 자연과 옛 추억을 통해 얻는 행복이 더 크고 아름답지 않던가.
풍류초정이 그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운 것은 농촌에 있다고 했다. 그날의 낡은 풍경이 무디어진 내 삶의 촉수를 깨운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의 삶에 향기가 끼치면 더욱 좋겠다.
--- p.84, 「초정약수와 풍류」 중에서
50년도 더 된 고향집을 두 번이나 뜯어고쳤으니 옛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뚜막이 있는 온돌방이 불편하다며 보일러로 교체하면서 집을 뜯어고쳤다. 그다음에는 천장에 비가 새고 쥐들이 판을 치면서 대대적인 수리를 단행했다. 위치만 그대로일 뿐 형태는 꽤 많이 변형되었다. 아버지는 세상 떠나신 지 오래고, 어머니는 5년째 병원에 계신다. 형도 누이도 제 다 고향을 등지고 고향엔 찬바람만 나부꼈다.
그래도 궁금해서 천장을 뚫었다. 어둠 속에서 대들보가 붉게 빛나고 있었고, 그 사이로 서까래가 촘촘하게 이어져 있었다. 대들보는 한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뿐만 아니라 그 집의 품격을 보여준다. 아, 살아있었다. 날줄과 씨줄의 작은 우주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많은 세월 우리집안의 기쁨과 영광을, 아픔과 슬픔을 제 다 품고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구나. 뚫린 천장 구멍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50여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p.92, 「대들보」 중에서
나는 이곳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고 싶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어주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더불어 함께 사유의 공간을 가꾸고 싶다. 책과 함께 하룻밤의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 다양한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곳, 책과 예술이 가득한 정원에서 삶의 향기 깃들도록 하고 싶다. 시인의 마음으로, 시인이 되어, 하나의 풍경이 되고 싶다.
--- p.92, 「시인의 집」 중에서
고향집 리모델링 핵심가치는 보존과 활용이다. 아버지가 지은 집, 어머니의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는 집을 살리면서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가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물과 공간의 내밀함을 살펴보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 살아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율이 필요하다. 조율은 시간과 공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다.
--- p.101, 「누구 일할 사람 없나요?」 중에서
고향집은 남향이다. 아버지는 집을 지을 때 탕마당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저 멀리 백두대간 한남금북정맥 구녀산과 상당산성이 보인다. 그 사이로 저곡리와 우산리가 있고 가르마 같은 논과 밭이 있다. 아버지는 안방과 윗방, 그리고 사랑방을 잇는 긴 마루를 냈다. 그 사이에 대청마루가 있었다. 마루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봄 꽃 피고 여름 녹음 우거지며 가을 들녘과 단풍이 아름다웠다. 겨울엔 하얀 눈이 푹푹 내리는 설경을 바라보며 찐고구마를 먹지 않았던가. 밤하늘의 별과 달을 바라보며 문학소년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가 지은 집 아들이 고치면서 창문을 어떻게 낼까 고심했다. 마을의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창문을 내고 싶었다. 별을 바라보고 달과 함께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창문 말이다. 햇살은 저만치서 소꿉놀이하고 유순한 바람이 들숨과 날숨을 이어가는 곳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큰 통창을 냈다. 마루 대신 문밖 서까래를 더 길게 냈다. 벗님이 오시면 이곳에서 잠시 두리번거리며 삶의 향기 깃들도록 했다. 그러니 어서 오시라, 나의 사랑 나의 벗이여.
--- p.137, 「남으로 창을 내겠소」 중에서
그동안 나는 지역과 전국의 문화현장에서 수많은 일을 도모했지만 이렇게 나를 위해 투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순전히 내가 해야 할 사회적 책무 앞에서 미친 듯이 일만 했을 뿐이다. 그때 배우고 익힌 것들을, 그때 다짐하고 결의한 맹세를 지금 실천에 옮긴 것이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건축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삶에 의해 완성된다. 공간은 또다시 우리를 만든다. 그리운 것은 모두 고향에 있다. 그러니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고 풍경을 담으며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리자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버지의 땅을 딛고, 엄마의 가슴을 치며 다시 태어났다. 책으로 가득한 풍경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예술의 향기가 솔솔 피어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삶의 여백을 찾고 즐기는 곳으로 가꾸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작지만 소소한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물결칠 것이다.
--- pp.212-213, 「집 들어갑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