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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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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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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50*180mm
ISBN13 9791189688684
ISBN10 1189688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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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정원
오래된 얼룩처럼 소년이 소녀를 만났다
그들의 정원에는 소녀에게 들은 그날의 모상에 관한 이야기와, 허리 잘린 뒷산에서 뽑힌 나무를 함께 옮기던 일, 주검의 턱밑에서 허우적거리던 어린 고양이를 묻은 일, 소녀상, 수면위로 떠오른 배, 개를 죽게 버려둔 노인과 집을 구멍 내던 딱따구리가 등장하거나 혹은, 그곳에 봉인되어 있다.
이런 순간과 왜곡된 기억이(사실 기억은 모두 왜곡된 것이다) 그네 탄 소년과 소녀의 발밑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처럼 떠돈다.
생각과 말과 행위의 겹이 서로 감싸 안고, 상실에 기대고 검은 공기에 밀착되어 불현 듯, 그들의 정원에 묻혀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없다. 완벽한 결별 말고는.
처음 맛본 감동과 허무를 마주하여 가물거리는 빛에 젖어, 꿈에 잠긴 채 꿈쩍도 않는다.
구태여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은 채.


소년, 만나다.
잊고 있었다. 소년이 나고 자란 곳이 섬이었다는 것을... 소년은 이른 아침이면 바다로 향해 난 대문을 열고 근사한 날개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배를 구경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하얀 포말을 가르며 미끄러지는 모습에서 견디기 힘든 그리움과 공포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아주 높고 근사한 다리가 있었지만, 소년은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느낀 현기증과 공포가 있었다.
몇 일간 귓가를 파고드는 바람소리가 이어진다. 끝날지 모르는 소리는 누군가의 탄성으로 바뀌고, 사라져 버리거나, 망각을 불러들인다.
삶에서 끝내 알아내지 못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처로 끝나고 아무는 것이 아니라 가슴 한켠에 순간순간 남아있다. 까맣게 타버린 돌, 몸을 가누기 힘든 거센 바람, 높은 너울과 부서지는 하얀 포말, 비릿한 냄새, 까만 바다의 적막, 그리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과 사람들. 소년은 풍경과 만나고 그림자를 따라갈 뿐이었다.

소년에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일이 있다.
---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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