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께서 정력을 쏟아 고증하고 연구하여 이 책을 지은 것은, 본디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세히 검토하여 국가를 세워 운영해갔던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정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적지 않을 터인데,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극히 적어 함부로 버려지게 되니, 실로 애석한 일이다.
---「서해응의 서문」중에서
발해가 망한 지 천 년 만에 다행히 선생을 만나 역사책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감격하게 되었다. 훗날 우리 역사를 보완하려는 자가 이로써 수정하고 보완하게 되면, “우리 역사에서 기록이 누락되어 발해를 상고할 수 없어서 뜻있는 선비들이 탄식하였더니, 유 아무개가 사라진 것을 보충하여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전하게 되었다”고 대서특필할 것이니, 선생에게는 크나큰 영광일 것이다.
---「이규경의 발문」중에서
고려의 문인 학사들이 이를 타인의 강토로 간주하여 5경 13부2의 빛나는 판도로 하여금 다른 나라 땅으로 전락하게 하고, 동남쪽 한 귀퉁이로 쪼그라들어 약소한 나라를 스스로 만들었으니, 이것으로 그 죄가 하나이다.
---「〈황성신문〉 1910년 4월 28일 논설 〈발해고를 읽고〉」중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려 왕씨가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는 것이니, 왕씨가 옛 땅을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계림과 낙랑의 터전이 마침내 모호해지고 스스로 천하와 단절되어 버렸던 것이다.
---「박제가의 서문」중에서
무릇 대씨는 누구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가 소유한 땅은 누구의 땅인가? 바로 고구려 땅으로, 동쪽과 서쪽과 북쪽을 개척하여 이보다 더 넓혔던 것이다. 김씨가 망하고 대씨가 망한 뒤에 왕씨가 이를 통합하여 고려라 하였는데, 그 남쪽으로 김씨의 땅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었지만, 그 북쪽으로는 대씨의 땅을 모두 소유하지 못하여, 그 나머지가 여진족에 들어가기도 하고 거란족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이때에 고려를 위하여 계책을 세우는 사람이 급히 발해사를 써서, 이를 가지고 “왜 우리 발해 땅을 돌려주지 않는가? 발해 땅은 바로 고구려 땅이다”고 여진족을 꾸짖은 뒤에 장군 한 명을 보내서 그 땅을 거두어 오게 하였다면, 토문강 북쪽의 땅을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득공의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