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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이 온다

파국이 온다

: 낭떠러지 끝에 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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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88g | 140*205*30mm
ISBN13 9791190413329
ISBN10 119041332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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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모든 논의를 한마디로 ‘낙관적’이라거나 ‘비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편에서 가치비판론은 늘 자본주의의 추락 경향을 예측해왔다. 심지어 파국적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다니엘서 5장 25절)과 같은 ‘파국의 예고’라 할 수 있다. 성서에 나오는 이 신비한 말은 어떤 초자연적인 손이 바빌론 벨사살왕의 궁전 촛대 앞 석회벽에 쓴 것이다.
--- p.24

언젠가 파시즘이 한창 승리의 나팔을 불던 시기에 발터 베냐민이 한 말이 생각난다. “마르크스가 말하길, 혁명은 세계 역사의 기관차라 했다. 하지만 (…) 이제 혁명은 (인류 전체를 상징하는) 그 기차를 탄 승객들이 급브레이크를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연 이 급브레이크는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 데모 같은 것만으론 결코 가능하지 않다. 해가 멀다 하고 돌아오는 선거(투표)나 “소비자의 선택” 같은 걸로는 어림없다.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세상이 바뀔 리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가 근본을 놓치고 있어서다.
--- p.34

상품 사회 속 우리 삶의 토대란 무엇인가? 노동이 자본으로 전화하고 또 자본이 노동으로 전화하는, 일종의 영구운동이다. 즉 자본은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을 고용하여 생산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더 큰 자본을 만들어가고, 인간은 자신의 살아 있는 노동력을 팔아 자본의 몸집을 불려주는 대신 임금을 받아 소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눈앞에서 나날이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의 산 노동living labor을 기술로 대체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이 자본의 생산과정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가치 생산의 토대가 붕괴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p.54

오히려 자본주의는 각종 “예술적” 저항을 얼마든지 자기 이익에 맞게 활용해, (질서가 아니라) 혼란(카오스)까지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통적 가족의 해체, 이른바 “대안” 교육, 확실한 양성 평등, “도덕성” 개념의 소멸 등 이 모든 변화조차 (사회 해방의 방향이 아니라) 일단 상품 형태로 변환되기만 하면 결국 자본주의에 이득을 안겨주게 된다.
--- p.65

오늘날은 삶의 모든 영역이 돈에 의존할 뿐 아니라 더 나쁘게도, 부채(신용)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우리 삶의 실질적 재생산이 완전히 “가상 자본”에만 의존하거나, 또 각종 사업체나 기관, 정부 조직 역시 신용등급에 의해서만 생존이 가능해진다면 금융위기가 올 때마다 증권 시장 참여자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치명타를 입을 것이고, 여기에는 표면적 일상만이 아니라 자기 삶의 가장 고요한 시공간까지 해당한다.
--- p.136

사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두려움을 부른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단지 돈이 너무 없어 탈이라 생각할 뿐 그 이상은 상상하지 못한다. 각 개인들은 자기 돈의 가치가 떨어져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때 자기 존재가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뿐이다(한편으로는 근시안 때문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 때문에 시스템 전반의 구조나 원리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 p.139

이런 맥락에서 “가치”는 결코 사회생활의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칸트적 의미에서 일종의 “선험적 형태”라고 해야 옳다. 달리 말해, 상품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일정량의 가치로 인식됨으로써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만물이 일정량의 화폐로만 보인다. 모든 것을 가치형태로 바꾸는 것, 이것이 인간과 세상 사이에 보편적 매개자인 양 끼어드는 셈이다. 또다시 칸트 식으로 말해, 가치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포괄적 “종합 원리”처럼 되어버렸다.
--- p.167

상품 사회의 맹목적 물신주의 논리는 (“자본가계급”이라는 거대 주체의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의 동력에 의해) 궁극적으로 이런 공간을 소멸로 내몬다. 이런 면에서 가치란 점점 더 커지는 어떤 “실체substance”라기보다 오히려 일종의 “공허nothing”라 할 수 있다. 이 공허는 삶의 구체성을 먹고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 만일 자본이 정말로 ‘모든’ 것을 가치형태(노동, 상품, 화폐 등)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아마도 이 성공은 바로 그 자신의 종말을 뜻할 것이다.
--- p.171

상품 사회에서 비상품 영역이 존재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오로지 종속적이고 불구화한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즉, 비상품 영역은 결코 자유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상품 영역에 의해 경멸을 당하면서도 상품의 화려한 세계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필연성 때문에 존재하는 영역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비상품 영역은 결코 가치의 대항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제다. 그리하여 가치의 영역과 비가치 영역은 함께 가치 사회, 즉 자본주의 상품 사회를 형성한다.
--- p.173

우리의 입장은 이런 사회관계가 지닌 해방적 잠재력이 올바로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 전체가 추상노동과 단호히 단절할 때라고 말한다. 그것은 이 추상노동이 온갖 사회관계를 철저히 물신화하고 결국 제 스스로 독립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이 상품 시스템이나 그 내부의 구성원들이 “감사할 줄 모르고 배은망덕하다”라고 보는 식의 도덕적 차원이 아니다.
--- p.179

언젠가 알랭 카유는 전체주의 체제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쓸모를 기초로 구성되는 사회에서 잉여가 된다는 느낌보다 더 나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노동에 기초한 현재의 상품 전체주의 사회야말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을, 결국에는 인류 전체를 잉여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 p.180

자본주의는 단지 국가, 시장, 법과 질서 등과 동일시되거나 또는 반대로 위법, 탈선 등과만 동일시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이 둘의 변증법적 통일이다.
--- p.209

소비자의 돈을 지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싸움은 얼마나 격렬한가? 그런데 자본주의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 주체들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주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을 모조리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주요 관심사가 자신의 매력을 뽐낸다거나 그 진정한 본질을 숨기는 것이라 믿는다면 오류다.
--- p.209

만일 예술이 물신주의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개인들의 견고함을 진정으로 부수고자 한다면 역설적으로 예술 자체가 좀 더 견고해지고 어려워질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예술이 멋대로 난해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좀 까탈스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이 현재의 (상품 물신주의) 세상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면, 이른바 “대중people”에 영합하기를 멈춰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을 더 쉽게 만든다거나 사회를 더 멋지게 꾸민다거나 더 쓸모 있게 만드는 일, 나아가 대중을 위한 기쁨조 되기 등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 대중과 너무 손쉬운 소통을 하지 않으려 할 때, 그리고 대중에게 참된 자신의 모습보다 더 “위대한” 뭔가를 억지로 보여주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예술은 자신의 본업vocation에 충실해질 수 있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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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비판론자인 안젤름 야페의 열정적 에세이를 엮은 책으로, 그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막대한 기여를 해온 학자다. 확고한 반反자본주의자로서 야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삶의 모든 측면을 시장관계 아래 복속시킴으로써 인간 공동체와 자연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 미카엘 뢰비 (사회학자, 철학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안젤름 야페를 더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의 번역에 나섰다. 지금까지 읽어본 그 어떤 인문학 내지 사회과학 책보다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야페는 묻는다. 과연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도 발전하는가. 자본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인간도 성장하는가. 자본주의의 자유와 더불어 인간의 자유도 확장하는가.”
- 강수돌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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