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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까지 걷기

저녁까지 걷기

: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함께한 긴 산책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동
리뷰 총점8.0 리뷰 2건 | 판매지수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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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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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20g | 118*188*10mm
ISBN13 9791161110776
ISBN10 1161110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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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멸 직전이다. 어쩌면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걷고, 걷고, 걷고, 걷고, 걷고, 계속 걷고, 용감하게 계속 걸으며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성큼성큼 걷기를 계속하고, 주춤거리지 않고, 잔유물들의 세계 속에서 쉬지 않고 걷는다. 무의미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고독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예고된 온갖 종말론에도 불구하고 계속 걷는다. 걷기를 멈춘다는 건 곧 죽음을 뜻하므로. 바람과 패배에 맞서 계속 걷는다. 자코메티처럼, 나처럼, 우리처럼.
--- p.18

〈걷는 사람〉은 내 앞에 그대로 있었고, 나는 그걸 쳐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으며,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수도 없었다. 내가 그 작품을 너무도 좋아하고 내 삶과 깊이 결부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우리는 생각하도록 강요당할 때만 생각한다는 들뢰즈의 교훈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더없이 암울한 방식으로(밤이 시작될 때부터 내 기분은 이유 없이 극도로 암울해졌다) 예전에 내가 그 작품에 감탄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 p.85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온전하게 개인적인 의견과 취향을 갖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취향을 판단하는 심판들, 찬사와 비난을 배분하는 자들이 암암리에 강요하는 문화적 질서를 등지는 것이 가능할까?
--- p.87

이제 나는 자코메티가 대담 때 그토록 자주 말했던 그것(무능)을 생각했다. 왜냐하면 작업의 어려움을, 모델 속의 존재를 드러내는 어려움을, (…) 세상 속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느끼는 지독한 고독을 표현하는 어려움을 그보다 더 잘 말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느끼는 불만족을 그보다 더 잘 표현한 사람도 없었다.
--- p.108

예술은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이 시도, 한 송이 꽃의 완벽성에 도달하려는 이 시도, 삶이 지속되는 동안 좇아 달리는 이 시도에 있다는 데 (동의한다). 도달해야 할 불가능을 인식해야 그것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1936년 내전 때 에스파냐의 절대자유주의자들이 취한 태도였다고 나는 자랑스레 혼잣말을 했다.
--- p.113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이 표현은 최종본까지 간직하게 될 것 같아. 그러나 나는 경험상 알고 있었다. 한 문장이 지금은 정확하고 적합해 보여도 다음날 다시 읽어보면 거짓되고 평범하며 과장되거나 엉성해서 물컹한 크림 디저트 플랑처럼 허물어질 수 있다는 걸.
--- p.123

마음으로 다가가 〈걷는 사람〉의 의미 가까이에 다가서는 데도 피카소 미술관에서 보낸 하룻밤이 아니라 여러 밤이, 여러 달이, 어쩌면 여러 해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 p.181

예술의 용도 ─용도라는 말이 딱 들어맞진 않았지만 ─는 우리 안에만 있는 것도 우리 밖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더 명료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아마도 그것은 그 둘 사이에 있을 것이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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