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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삐딱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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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가 아주 조금 기울어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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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90쪽 | 258g | 128*188*10mm
ISBN13 9791197592102
ISBN10 119759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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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라는, 가령 ‘사과는 과일이다’ 같은 단순한 명제를 들었을 때 구석에서 조용히 눈알을 굴린다면 고개가 조금 기울어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들은 자칫 미친 자처럼 보일까 싶어 쉽게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저 사과가 실재하는 것일까?’, ‘사과가 과일이란 것은 애초에 누가 정의한 것일까?’ 같이 세상 사는 데 별 쓸모 없는 질문들에 홀로 둘러싸이곤 한다
--- p.7

그는 예의 바르고 겸손했다. 아니, 그는 쑥스러운 척 연기하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당당하고 확고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아니, 그는 옹졸하면서도 고압적인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인사이트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아니, 그는 그릇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합의를 부정하는 반항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 p.23

그래서 나는 종종 우리의 관계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던 무수히 많은 그 시점들에, 엄마는 내게 사랑을 주지 못했던 그래서 미안했던 그 시점들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겪어 낸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어떤 결핍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결핍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결핍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 p.114

사람은 어쩌면 원을 그리며 살아가고, 죽어 가고 있다. 젊은 날의 우리는 원을 크게 만들고자 안간힘을 쓸 것이고, 늙은 날의 우리는 시작점을 향해 되돌아간다. 어떤 사람은 그 원을 너무나도 크게 그린 탓에 죽는 날까지 원을 여미지 못하고 죽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 원을 지나치게 작게 그린 탓에 자신이 그려 둔 원을 두 바퀴, 세 바퀴 맴돌 것이다. 나는 적당한 크기의 원을 그리고 살아간 뒤 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아버지는 원의 시작점을 향해 되돌아가고 있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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