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큰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의 이 말에 조금도 거짓이 들어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진실이 그의 내면에 숨어 있음을 얘기해 주어야만 했다. 그것은 그의 '약함'이었다.
"당신에게 분명히 말해 두지만,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은 세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나의 이 말에 베드로는 펄쩍 뛰었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둘 사이의 그날 밤 대화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누구의 추측이 더 정확한가를 겨루는 내기가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베드로의 진실을 그리고 나 역시 베드로라는 인간의 진실을 숨김없이 이야기한 것이다. 인간의 약함은 수치가 아니다. 바울로는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소란 가운데 고뇌의 입맞춤이 있었고, 유다의 배신에 이어 또 하나의 배신이 싹트고 있었다. 나는 홀로 되어 군인과 경비병 들에 끌려 대제관 안나스에게 갔다. 아무도 나와 함께 결박당하지는 않았다.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던 베드로의 마지막 모습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나를 버리고 달아난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평소의 그의 단순함을 잘 알고 있었고, 어린아이와 같은 즉흥성을 믿고 있었다. 그는 아직 내게서 다 멀리 떨어져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신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베드로가 "여보시오. 무슨 소리를 하고 있소? 나는 그를 모르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 그러나 그의 배신은, 유다의 그것처럼, 좌절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배신 행위를 보상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유다처럼 돌려줄 은돈도 없었고, 대제사장이나 원로들도 없었고, 자기 목숨을 끊을 만한 메마른 강인함도 없었다. 다만 눈물밖에는 아무 가진 것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약한 사람을 사랑한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들을, 나는 지금도 믿지 않는다. 게파, 사랑하는 나의 약함이여, 나는 그에게 천국 열쇠를 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의 위에 내 교회를 세운 것을 무엇보다도 다행으로 여긴다. 나의 교회는 논리 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예산 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 앞에서 자기의 '아무것'도 아님(無)을 발견하고 쩔쩔매며 울고 있는, 그것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울고 있는 베드로의 나약한 어깨 위에 기초한다. 왜냐하면 거기, 인간의 약함에 신은 비로소 임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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