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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

[ 양장 ] 애지시선-103이동
김지연 | 애지 | 2021년 11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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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0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34쪽 | 248g | 127*193*12mm
ISBN13 9791191719031
ISBN10 1191719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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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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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풀리는 사물들
쓰러진 뿌리 곁에서 새어나오는 첫숨들
질곡에서 빠져나온 연둣빛 잎들의
팽창을 듣는다
발효균처럼 포근해진 흙으로부터
누적된 육신들의 표정을 읽고
내 육신의 미래도 조심스레 읽어본다

어떤 암흑은 장작더미처럼
때로 마마꽃처럼 뜨겁게
창궐하였다 산다는 건
간단히 타오르다 그쳐버리는 것
사지를 얼기설기 꼬아 불꽃 일으키는
한 시절의 분출이 그리 낯설 것은 없지만
더러는 닿지 못한 구석 자리도
그리워하게 될 게 분명하다

다만
필연적으로 타오를 것
필연의 불꽃 뒤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 것
--- 「해빙」 중에서


퉁퉁 분 물살 위로
떠다니는 찌꺼기 한 점이 삶이라고
믿지 않겠다
휘두르면 손톱 끝에 찍혀나오는 가벼운 윤리와
치부 위에서 환하게 여문 신파적 꽃씨들
교과서처럼 짓눌린 표정으로 꽃씨를 받는
나는 물이다
누워 바라보면 제거하기엔 너무 깊은 강
가슴께 꼬깃꼬깃 소외의 키를 잡는 시간과
시간에 얹힌 구름들
온몸 새겨온 손톱자국을 다시 한번 강에 뿌리며
도저히 어찌 못할 욕망은 프리미엄인 게라고 마음 고쳐먹기까지
강은 도도했고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
말씀 한 줄로
일어서는 날개를 내려치진 못했다

폭우―
물살 잠잠한 강심으로
난데없이 내리꽂힌
한낮의 정사
--- 「폭우, 난데없이?전문


갈림길에서 걸어 나온 하늘을
우연히 만났네
삶의 흙과 삶의 바다
삶의 바위에 부대껴 흐르던 햇살 부스러기들은
얼룩을 털며 날아올랐네
넘어지는 꽃들이
꽃가루를 일으켜 세우려 애를 썼다네
한 방향으로만 부는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
견고한 줄 믿었던 나의 뿌리가
아주 낯설게 흔들,
흔들거렸네
--- 「파문」 중에서


폭풍 쪽으로만 귀 여는 습성은
버려야겠지
혼자 날아와 생각에 잠긴 생애의 한 끝을
망망한 깃대에 매어두고
슬며시 낯선 가지에 머물러 있다
스치는 바람들이 화사한 햇빛 몰고 지나갔지만
언제나 내 것이 아니었다
한 발짝 건너편에서
햇빛 머금은 꽃잎은 나비를 아삭아삭
씹어 먹기도 했다 진심으론
부러웠다 꽃잎

휘청거리는 자리만 골라 앉은 추억들 잘라내며
폭풍을 예감한다
이제 나는 갈증에 젖어
폭풍의 언저리 벗어나도 무방한가

비루한 줄기 한 올이라도 일으켜 세워
착한 나비 꼬옥 끌어안고
하룻밤
해로하고 싶다
--- 「마른 햇빛 속으로」 중에서


어둠 속에서도
미등이 지워지지 않는다

홍조 띤 가슴께 잔잔히 펴지는 방죽
연통한 꽃숭어리들 흐드러진 띠살무늬 벽에서
사방 막힌 슬픔이 뚜욱뚝 진다

전원 끊긴 뒤
어떤 명치 끝 당신이 밟고 섰던 빈자리에
오프 모드로 켜지는 꽃잎을
나는 왜
단죄할 수 없는가
--- 「겨울단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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