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민주주의는, 적어도 현재까지 인류사회에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고 있는 민주주의 그 자체로서 결코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다. 참여는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핵심으로서 처음부터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참여로부 터 비롯되어 참여와 더불어 발전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와 근대민주주의는 그 제도적 차이에도 불구 하고 참여를 공통의 본질로 한다. 선거제도만 하더라도 제한 또는 차별 선거에서 보통선거로 발전하여왔는데, 이는 곧 참여의 확 대 및 평등화의 과정이다. 그러나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듯, 선거에 대한 참여만으로 참여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이 지적했듯이 몇년 만에 한번씩 치르는 선거만으로는 참여거 매우 불충분하며 따 라서 민주주의도 확보될 수 없다(Essays on Politics and Culture, ed. G. Himmelfarb, New York: Doubleday, 1963, 229 면). 공직자를 선출하여 그들에게 사실상 모든 것을 위임하는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보완 혹은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더욱 폭넓게 일상적으로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차원의 기술적 조정뿐만 아니 라 정치사회적 차원에서의 더욱 광범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의 원리에 좀더 충실한, 넓은 의미의 정치체 제로서 참여민주주의를 새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근래 대내외적 상황변화로 인해 참여민주주의는 현실적 절박성을 띠게 되었다. 70년대 중반 이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균열에 따른 이른바 신보수주의의 창궐은 민주주의의 원리가 시장논리에 침식당하는 현실을 낳고 있다. 단기적이고 협의의 효율 성을 우선시하는 시대`분위기`는 참여 아닌 `시장참여`로 참여를 희석시키고, 엘리뜨주의를 부추기는 `시장경쟁`으로 참여민주주 의를 뒷전으로 몰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60년대 구미에서 큰 목소리와 활기찬 몸짓을 보였던 참여민주주의론이 활력을 잃기 시작 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이다. 게다가 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이러한 추세에 더욱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 몇몇 국가에서 이에 대한 반성이 표출되고는 있으나 참여민주주의로의 근본적인 회귀 없는 기술적인 조정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이 현실적 절박성은 더욱 강화된다. 적어도 60년대 이래 충전했던 민주화의 시대정신이 이른바 문민 정권의 `독식`에 넋을 잃은 듯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 극히 최근의 일이다. "문민정부 수립으로 민주화의 과업은 완수되었다 "고 주장하는 이 기고만장한 권위주의 정권은 국민들을 박수부대로 간주하여 참여를 사실상 철저히 배제하였다. 제한적인 민주화나마 이룩하기 위해 헌신한 사회세력을 애써 외면하고 오로지 박수만을 국민들에게 바라왔다. 열렬한 박수를 보내던 국민 들이 그들 권위의 붕괴에 때맞춰 이제는 야유를 퍼붓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분명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게다가 뒤늦게 배운 바람 이 무섭다고 하였던가? 최소한의 참여와 복지마저 결여된 우리 사회에 맹목적으로 불어닥치고 있는 의제(擬制) 신보수주의의 바 람은, 어이없는 보수경쟁 속에서의 권력게임과 수세적 `세계화` 슬로건하에서의 사회경제적 혼돈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말, 다시 민주화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부터의 운동은 더욱 광범한 참여에 의한 참여민주주의의 쟁취 를 목표로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실천적 관점에서 우리는 이 책의 주안점을 크게 두 가지로 설정하였다. 그 하나는 참여민주주의론에 대한 이론 적 정리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여 그 제도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을 두 부로 나누어 제1부에서는 참여 민주주의에 관련된 이론을, 제2부에서는 한국에서의 참여민주주의의 제도적 방안을 다루기로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의도에서 비롯 된 것이다. 그러나 제2부의 글들도 해당 제도와 관련된 이론적인 논의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므로, 이론과 제도방안이 공간적으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제1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정은 많은 필자가 참여한 이와같은 책의 편집상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두 주안점을 책 전체를 통해 살릴 수밖에 없는 주제의 성 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